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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하비의 세계를 보는 눈』

유재건

오늘날 자본주의는 어떻게 굴러가는가?
―데이비드 하비 『데이비드 하비의 세계를 보는 눈』, 창비 2017

 

최근까지 왕성한 저작활동을 펴온 맑스주의 지리학자 데이비드 하비(David Harvey)가 이번엔 좀 색다른 책을 냈다. 『데이비드 하비의 세계를 보는 눈』(The Ways of the World, 최병두 옮김)은 그가 평생 저술한 방대한 저작에서 발췌한 글로 구성된 일종의 선집이다. 게다가 자신이 직접 엄선해 발췌·수정한 열한편의 글마다 짤막한 보론을 달아 애초 서술의 맥락과 함의를 현재 시점에서 점검하는 방식을 취했다. 1971년 발표한 글부터 2010년 출간된 책까지 대략 40년에 걸친 저술들은 노 대가의 지적 여정을 고스란히 보여주는데, 그는 긴 여정의 이 연구가 우리의 현재 세계가 나아갈 길을 비판적으로 이해하는 데 토대를 제공하리라 기대한다.

 

맑스주의와 공간의 이론화

 

하비는 지리적 공간의 차원이 사회적 관계의 중요한 속성임을 강조해온 지리학자이다. 자신의 연구를 “공간의 생산을 맑스의 정치경제학에 통합시키는 것”이라 말하듯(223면), 그는 맑스주의에서 부차적으로 간주되어온 공간 개념을 자본주의 분석에 활용해 지리학과 정치경제학을 통합시키려 해왔다. 이 책에서 그는 공간, 장소, 환경을 자본주의의 역동적 과정에서 이해하고자 함으로써 스스로 역사적-지리적 유물론이라 일컫는 관점에 기반을 둔 자본주의 분석을 다양한 각도에서 보여준다. 무엇보다 오늘날의 지리적·공간적 현상은 자본축적 과정을 빼놓고는 분석될 수도 설명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이자 1970년대 이후 하비의 일관된 문제의식은 자본의 과잉축적 문제가 어떻게 무분별한 도시화와 그에 따른 사회적 고통으로 이어지는가 해명하는 데 있다. 여기서 그가 개념화한 ‘공간적 조정’(fix, 혹은 해결)은 만성적인 위기에 대응하며 존속하는 자본주의를 해명하기 위한 중요한 단서이다. 「서론」과 10장 「금융위기의 도시적 근원」에서 그는 최근 중국에서 엄청난 규모로 진행되는 도시 인프라 구축 과정에 주목하는데, 20세기 100년간 미국의 시멘트 소비량이 44억톤이었던 반면 2011년부터 2013년까지 3년간 중국의 시멘트 소비량은 66억톤이라는 놀라운 사실을 적시한다. 이는 지구적 자본주의의 위기에 대한 대응으로서의 ‘공간적 조정’의 두드러진 사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는 자본의 과잉축적 과정에서 잉여를 흡수하기 위해 지리적 팽창과 공간적 재조직화가 불가결한 선택이 된다는 점에 주목하고 이를 자본축적의 내적 모순에 대한 ‘시공간적 조정’으로 이해한다. 공간적 조정이지만 한편으로 긴 수명을 갖는 물리적·사회적 하부구조에 대한 투자를 동반하기에 시간적 조정과도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이다.(418면, 422면) 근래의 세계 금융위기가 대부분 부동산시장의 혼란을 거쳐 도시의 위기라는 형태로 나타나는 것은 부동산이 얼마나 투기적 금융과 깊이 연관되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중국은 2007~2008년 위기의 충격을 흡수하기 위해 막대한 부채 위에서 도시 인프라를 구축함으로써 잉여가치를 창출함과 동시에 창출된 잉여가치를 재흡수해가고 있다는 것이다.(497~501면) 그는 중국경제가 지구적 자본주의의 논리에 종속되어가는 이 과정이 심각한 환경 문제를 야기하는 등 지속 가능하지 않을 뿐 아니라 나중에 그 부채를 떠안는 것 또한 힘없는 주민들이 되리라 비판적으로 진단한다.

 

탈취(약탈)에 의한 축적

 

자본주의의 전지구적 작동 방식에서 그가 시공간의 조정과 함께 주목하는 것은 ‘탈취에 의한 축적’ 현상이다. 2003년 출간된 『신제국주의』에서 발췌한 9장 「신제국주의: 탈취에 의한 축적」은 1970년대 이후 변화된 세계 자본주의의 새로움을 ‘탈취에 의한 축적’이라는 개념으로 포착하는 글이다. 임금노동력을 창출하는 고전적 확대재생산을 통한 성장이 강력했던 1950~60년대와 달리 1970년대부터 지속적인 과잉축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련의 시공간적 조정과 더불어 ‘탈취에 의한 축적’의 시도가 강화되었다는 것이다.

 

‘탈취에 의한 축적’은 하비가 맑스의 ‘본원적 축적’ 개념을 현대 자본주의로 확장하여 적용한 개념이다.(440면) 그는 맑스가 『자본』에서 묘사한 폭력적인 본원적 축적 과정이 자본주의 초기 역사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역사적 시기와 무관하게 언제나 존재해왔다고 주장한다. 약탈과 폭력에 바탕을 둔 자본축적은 자본주의사에서 다양한 방식으로이긴 하지만 그 존속에 불가결한 일부였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지리적 역사를 통해 본원적 축적의 연속성을 보는 그는 로자 룩셈부르크를 따라 전체 자본주의의 작동이 끊임없는 본원적 축적과 확대재생산을 통한 축적 사이의 역동적 관계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왔다고 파악한다.(437~38면) 하지만 확대재생산에서 과잉축적 위기가 발생할 때 탈취에 의한 축적이 더 강해지고, 실제로 오늘날엔 “탈취에 의한 축적과 확대재생산 간의 균형은 이미 전자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443, 458면)

 

맑스는 16세기부터 본격화된 본원적 축적을 일반 소생산자 내지 자영농 계층의 민중이 폭력적으로 예속상태에 들어가는 과정으로 이해했고 이와 함께 유럽의 지리적 팽창을 통한 약탈 과정을 또 하나의 계기로 보았다. 이 과정에서 “자본주의 체제가 요구하였던 것은 민중의 예속상태, 민중의 피고용자로의 전화, 그리고 민중의 노동수단을 자본으로 전화시키는 것이었다.”(『자본』 Ⅰ-2, 강신준 옮김, 길 2008, 970면) 하비는 탈취에 의한 축적을 맑스의 본원적 축적과 구별하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그 공통점을 강조하는 편이다. 다만, 현재 진행 중인 과정이라는 점에서 ‘본원적’이라는 표현이 어색하기에 ‘탈취에 의한 축적’이라는 용어로 대체한다는 것이다. 맑스의 본원적 축적에서 주로 노동자와 생산수단의 폭력적 분리를 보는 맑스주의자들과 달리 하비는 그것을 아주 폭넓은 과정으로 이해하고 이 양상들이 현재까지 자본주의의 역사적 지리 안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고 본다. 그것은 “토지의 상품화와 사유화 및 소농인구의 강제적 배제, 여러 형태의 소유권들을 배타적 사적 소유권으로 전환하는 것, (…) 자연자원을 포함한 자산의 전유를 위한 식민적·신식민적·제국적 과정, 교환과 조세 특히 토지세의 화폐화, 노예무역, 고리대금, 국가부채, 궁극적으로 신용체계 등을 포괄한다”는 것이다.(440면)

 

하지만, 그는 오늘날의 탈취에 의한 축적은 맑스의 본원적 축적과 달리 과잉자본 상황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훨씬 악성이라고 비판한다. 그것은 한 계급에서 다른 계급으로 자산이 이전되어 그 상층계급의 권력을 강화시키는 것이지만, 토지의 약탈을 비롯해 유연적 축적, 금융의 힘 증대, 지구화와 시공간 압축의 강한 흐름 등 모든 것이 노동계급의 힘을 약화시키는 과정이기도 하다.(223면) 하비의 탈취에 의한 축적 개념은 맑스주의자들로부터는 잉여가치 착취에 의한 자본축적의 문제를 도외시하고 이미 착취를 통해 만들어진 잉여가치의 분배만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종종 비판받는다. 그러나 실제로 이런 비판이 하비의 입장, 즉 이제껏 자본의 유통/축적을 도외시하고 생산에만 집중하는 통상적인 인식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가치실현의 조건에 주목하는 그의 관점을 온전히 이해했다고 하기는 어렵다.

 

하비는 맑스의 정치경제학을 통해 자본주의 분석을 도시 수준에서 구체화하는 데 치중하지만, 그가 자본주의의 전체적 역사과정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그 이해의 바탕 위에서 어떤 실천적 방안을 생각하는지 분명치 않다. 이 책뿐 아니라 그의 다른 저술들을 보더라도, 1970년대 지구적 자본주의의 새로움(‘신제국주의’라는 개념에서 보듯이)을 강조하는 그의 역사인식에서 그 이전 수백년에 걸친 자본주의의 역사, 그 지리적 팽창의 역사가 어떤 방식으로 이해되고 있는지 뚜렷하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노동착취 및 확대재생산을 둘러싼 투쟁들과 탈취에 의한 축적에 저항하는 운동들 간의 유기적 연관을 찾는 일이 긴박한 과제라고 말하지만, 아무래도 그의 논의는 후자의 중대성에 무게를 두는 편이고 그 실천적 방안들은 구체적 차원에서 좀 막연하지 않은가 싶다.

 

유재건 / 부산대 사학과 교수

2017.5.31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