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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학론에서 동아시아론까지』

구갑우

민족문학론에서 동아시아론으로의 진화
– 백영서 김명인 엮음 『민족문학론에서 동아시아론까지: 최원식 정년기념논총』 

 

 

minjok이 책은 “행사용 기념논총이 아니라 민족문학론과 동아시아론의 현재와 미래에 관한 살아 있는 논쟁적 자료로 읽히기를 바”라는 이유로 “‘정년기념논총’이라는 조금은 부담스러운 자리”에 초대된 글들의 모음이다. 그 중심에는, “민족문학운동이 사실항 형해화되어가는 상황에서 민족문학론의 내적 갱신을 통한 재구성을 모색하는 한편 그 문제의식의 연장선상에서 동아시아론을 적극 개진해”온 문학비평가이자 사상가인 최원식이 있다(백영서 김명인 「발간사」). “최원식 교수의 공적(公的) 인격의 중핵”(이정훈 「최원식과 한국발(發) 동아시아 담론」)과 서로 다른 ‘거리’를 유지하고 있지만 ‘최원식 사상의 자장(磁場)’을 벗어나지는 않는 글들을 읽는다.

 

굵직한 담론의 궤적

 

익숙할 수도 있는 책의 제목을 수상하게 읽어본다. 민족문학론에서 동아시아론으로의 ‘전향’인가, 아니면 민족문학론에서 동아시아론으로의 ‘진화’인가. 책 속에서 이 ‘불온한’ 자문의 답을 찾아보려 한다. 책의 총론인 최원식 선생 글의 한 구절이다.

 

“1970년대 한국 민족문학론 또는 민족문학운동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당 없는 시대의 진실을 향한 모색이었다는 점입니다. 민족문학론은 왕년 조선공산당의 외곽담론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민족문학론의 유일한 스승은 현실입니다.”(최원식 「총론: 민족문학론에서 동아시아론으로」)

 

민족문학론의 의의를 돌아보다

 

그 이름이 ‘민족’문학론인 이유는, “체제가 만들어낸 국민이 아닌 새로운 독자공동체”로서 “새로운 네이션(nation)”을 형성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1970년대 황석영과 김지하 등의 작품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문학이 집합적으로 생산되었기 때문”에 추동될 수 있었던 민족문학운동의 산물이자 민족문학운동을 지도하고자 했던 민족문학론은, ‘네이션 건설’에 복무하는 장비로서 문학을 사고하고 있었다. 즉 한반도 차원의 네이션 건설을 남과 북 어느 한 탈식민적 분단국가로 한정하지 않는, ‘탈식민’의 전략이었다.

 

최원식의 표현에 따르면 민족문학론은 “기존의 정전을 탈정전화하고 재정전화하는 운동이었다.” 그 정전화의 대표적 사례가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로 시작하는 시 「농무」가 수록된 신경림의 시집 『농무』(초판 1973, 증보판 1975)다. 자본주의적 산업화시대에 동원된 농촌 ‘민중’의 삶을 형상화한 『농무』는, 민족주의가 민족을 상상하게 하듯, ‘탈식민’에 대한 이항대립적 인식의 산물인 ‘민족’문학론이 ‘발명’한 전통이었다. 민족문학론의 네이션 건설은 남과 북 각각 독립적으로 진행한 민족주의적 국민 만들기의 거울영상이지만, ‘아래로부터의’ 기획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는 점에서 ‘진보적’이었다.

 

민중을 네이션 건설의 주체로 호명하면서도 ‘민족’문학론이 ‘민중’문학론이 아니었던 이유를 최원식은 두가지로 제시한다. 유신체제와 민족문학론의 생몰시기를 등치하면서, 첫째 “남한 민주주의 제약의 근원에 한반도의 분단이 있”고 따라서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가 민족의 이름으로 나타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둘째, “엄격한 반공 독재국가”하에서 “프롤레타리아트가 연상되는 민중을 회피하려는 전술적 선택도” 고려되었다는 것이다. 즉 분단체제론의 종자를 담고 있는 민족문학론은 분단극복을 통해 민주화와 민중혁명을 실현하고자 하는 구성체였고, 따라서 담론 내부에서 무게중심이 이동한다면 구성요소의 위계적 접합이 탈구와 균열을 야기할 수도 있는 형태였다.

 

민족문학론에 대해 이 책에는 “민족문학론은 1970~80년대 당시 한국사회의 ‘식민지 반자본주의’(?)적인 ‘현실’을 반영한 것”인 만큼 “민족문학·문화의 수립과 자유·통일을 민족국가의 완성에 귀착시키”게 되었고, 따라서 “어쩌면 주체사상 수용 이전의 민족해방론(NL)이라 할 수도 있겠”다는 평가가 나온다(천정환 「민족문학과 민중문학을 다시 생각하기」). 그리고 반(反)국가적 시각에서는, “문학이 민족의 이익을 위해 복무해야 한다는 민족문학론의 공통관념은 문학이 국가를 위해 복무해야 한다는 생각과 일시적으로 상충할 수는 있지만 근본적으로 상통한다”는 주장에 이르게 된다(조정환 「한국문학의 근대성과 탈근대성」). ‘탈분단’의 기획인 민족문학론이 통일국가와 민족을 상상하는 ‘국민문학론’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최원식 사상의 자장의 경계에 걸쳐 있는 이 두 주장은, 민족문학론이란 담론구성체가 1980년대를 경유하면서 받을 수밖에 없었던 비판이었다.

 

최원식은 유신체제에 대한 대항담론이었던 “좁은 의미의 민족문학론”은 80년대에 들어서면서 끝났다고 회고한다. 민족문학론에 포섭되어 있던 씨앗들인 “민중문학/노동해방문학/민족해방문학 같은 보다 급진적 문학운동이 굴기”한 것이다. 이 책의 편저자 중 한명인 김명인은, 최원식의 “근저에는 강한 민족주의적 정념과 맑시즘적 교양이 가로놓여 있어 그가 1970년대에 부활하기 시작한 좌파적 전통의 앞들머리를 적지 않게 전유했”을 뿐 아니라 “1980년대적 급진화를 일정하게 매개하는 의미를 지”녔으나 “80년대 급진비평과 끝내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음을 짚는다(「민족문학론과 최원식」).

 

그런 최원식은 1993년 「탈냉전시대와 동아시아적 시각의 모색」이란 평문으로 담론전선의 앞머리를 장식하게 된다. 그의 말을 빌리면, “민족문학론의 혈로를 찾기 위한”, “민족문학이 세계문학으로 이동하는 출구”로서 ‘동아시아론’의 출현이었다.

 

‘동아시아의 발견’과 확대되어가는 시야

 

지구적 근대가 식민을 그 구성요소로 하고 있다면(김명환 「한국문학과 세계문학), 탈식민의 전략이 민족주의로 회귀할 때 퇴행적이 됨은 주지의 사실이다. 민족국가들의 충돌 외에는 다른 대안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동아시아론은 민족문학론에 접합되어 있는 제3세계적 문제의식, 즉 “민족주의 내부로부터 민족주의를 극복하”고자 하는 시도(하정일 「제3세계 민중의 시각과 민족주의의 내적 극복」)로 읽을 수도 있다. 실제로 최원식은 스스로 “제3세계론의 동아시아적 양식”을 언급한다. 민족주의를 넘어 국제주의로 간다 했을 때, 즉 일국적 변혁의 불가능성 때문에 세계혁명으로 이동한다고 할 때, 발판이 없는 허공만이 기다릴 수 있다. 따라서 경유지로서 지리적 정체성에 기반한 동아시아는 매력적이었을 것이다.

 

최원식의 동아시아론은, 어떤 면에서 ‘강대국들의’ 냉전―냉전이란 개념조차 전형적인 서구중심주의의 산물이다―이 사라진 세계에서의 “문명론” 내지는 냉전시대의 두 진영을 넘어서려는 “동도론(東道論)”으로 읽힌다(이정훈, 앞의 글).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서양에서 기원한 서도(西道)는 인류를 지도할 이념적 가치를 잃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모든 경험을 존중하면서, 또 동아시아에서 이루어진 사회주의 실험 또는 자본주의 실험을 존중하면서, 무언가 동쪽에 기초한 새로운 무엇인가를 만드는 일이 동아시아론의 정치경제학이라 할 수 있습니다.”(최원식, 앞의 글)

 

이는 냉전의 해체를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최종 승리, 이른바 ‘역사의 종언’으로 해석하는 서구중심주의적 사고와 근본적으로 결을 달리하는 통찰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최원식의 1990년대 초반의 이 ‘지도(指導)’는 민족문학론과 달리 운동론은 아니었다. 민족문학론은 현실인 문학작품이 담론을 추동하고 그 담론이 다시 현실인 문학작품을 생산하는 운동론이었지만, 동아시아론은 그렇지 않았다는 의미다. 최원식의 동아시아론이 ‘자유주의 문학의 시대’에, 또는 “노동문학의 시대”(천정환, 앞의 글)에 등장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최원식의 1990년대 초반 동아시아론은 ‘동아시아문학’의 부재 속에서의 운동론, 그의 표현에 따르면 담론의 스승인 현실의 변화를 직관하는 것이었지만 현실을 생산하지 못하는 불임의 운동론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동아시아론의 한 문제는, “탈근대적 (탈)식민론의 유인”으로 “국가의 존재감을 희석시키거나 악무한(惡無限)적 연쇄회로를 만들고 종국에는 제도화의 문제를 드러내는 데 장애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류준필 「분단체제론과 동아시아론」). 사회과학적 의미에서, 초국적 제도가 저발전 상태인 동아시아에서 전개되는 동아시아론은 동아시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힘의 정치’(power politics)를 은폐하는 담론이 될 수 있다. 최원식이 동아시아론을 문명론에서 운동론으로 상승시켜야 했던 이유다. 그가 다른 동아시아를 꿈꾸는 이유를 탈분단의 평화와 연관시키는 것도 이 때문이다(이정훈, 앞의 글).

 

최원식의 “‘동아시아의 발견’이 한반도의 문제를 국제정치의 역장(力場)에서 풀어나가려 하는 외교주의적 시각과 구별되는 것은 그것이 ‘분단체제론’의 핵심적 문제의식, 즉 한반도의 통일운동이 ‘남북 양쪽 체제의 일정한 갱신을 전제’로 한 ‘남한 자본주의보다 그리고 북한의 사회주의보다 더 나은 제3의 진보적 사회체제를 만드는 일’임을 자각함으로써 한반도 내의 변혁운동을 필수적으로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김명인, 앞의 글)은 한반도의 ‘탈분단’을 전형적인 ‘목적적 동아시아론’과 결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한편 이른바 “외교주의적 시각”에서 접근한 동아시아론도 이 책의 한 축이다. 예를 들어 “새로운 성장동력”으로서, “위기에 대한 안전판”으로서, “평화를 위한 경제적 토대”로서 동아시아를 상상하는 ‘도구적 동아시아론’도 보인다(이일영 「‘동북아-동아시아’로 가는 길」). 최원식의 동아시아론이 촉발한 현실에서 더욱 폭넓게 동아시아가 발견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추세다(윤여일 「동아시아 담론의 형성과 이행」). 그리고 동아시아 도시들의 네트워크로서, 주변의 주변인 동아시아 주변의 “핵심현장”의 네트워크로서 동아시아를 상상하는 작업(백영서 「핵심현장에서 다시 보는 ‘새로운 보편’」)은, 국가중심주의를 넘어서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목적과 도구가 결합된 ‘운동적 동아시아론’으로 읽히기도 한다.

 

탈식민·탈패권·탈분단의 길로

 

민족문학론에서 동아시아론으로의 길은 전향인가 진화인가.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가 1916년 경주의 석굴암에서 ‘동양 종교형식’을 발명했듯, 식민지 조선의 프로문학(프롤레타리아문학)이 ‘황국’ 국민문학에 흡수될 때의 명분이 ‘서구 제국주의에 맞서는 동아시아’였듯, 동아시아론은 ‘전향’의 담론으로 읽힐 수도 있다(황종연 「동양적 숭고」; 조정환, 앞의 글). 특히 중국의 부상 이후 미래의 동아시아질서를 구축하고자 할 때, 힘의 “차이를 직시하는 것은 윤리적 요구이자 동시에 정치적 지혜”(장 즈창 「‘거대분단’의 극복과 이상적 동아시아의 가능성」)라는, 근대 이전 중국적 세계질서의 현대적 해석인 ‘신천하주의’의 ‘신판(新版)’과 같은(백영서, 앞의 글) 대안담론의 목소리를 들으며, 최원식발 동아시아론이 중국 중심의 위계적 질서 내지는 패권질서를 상상하는 함정에 빠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최원식의 동아시아론에 대한 나의 주석은, 동아시아론이 탈냉전시대에 비로소 가능해진 미국 중심의 패권질서에 대한 경계, 즉 ‘탈패권’의 전략이라는 것이다. 

 

최원식은 운동적 동아시아론의 실현을 위해 ‘소국주의(小國主義)’를 주체적 실천으로 제안한다. 소국주의는 부국강병을 목표로 하는 근대국가의 건설 그리고 그 연장인 제국‘주의’의 망상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운동적 개념이다. 나는 소국주의가 한반도 및 동아시아에서 탈식민·탈패권·탈분단의 전략을 관통하는 핵심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국(大國)으로 인정받고자 하는 동아시아 국가들 사이의 안보딜레마, 동아시아 생산네트워크의 비대칭, 동아시아 차원의 사회적 연대와 안전을 모색하는 ‘사회적 동아시아’라는 의제의 부재 등의 현 상황은, 협력적 동아시아를 건설하지 못할 경우 동아시아론이 말의 성찬에 그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들이다. 동아시아 협력의 부재는 남북한은 물론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이 탈식민·탈패권·탈분단의 과제를 외면하게 하는 요인이다. ‘소국주의’는 간직해야 하는 “하늘의 별빛”(최원식, 앞의 글)을 넘어, 가야 하는 길을 밝혀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소국주의가 없다면, 탈식민·탈패권·탈분단의 길도 없기 때문이다.

 

 

구갑우 / 북한대학원대 교수

2015.5.20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