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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과 망각의 책』 『쌤통의 심리학』

김태권

어째서 당신은 웃는가
-밀란 쿤데라 『웃음과 망각의 책』, 리처드 H. 스미스 『쌤통의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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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만화가다. “웃기고 있네”란 말은 내게 칭찬이고 “웃기지도 않아”는 꾸지람이다. 웃겨야 사는 사람이다. 웃음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나는 오랜 세월 책을 뒤지며 연구를 했다. 하지만 책을 많이 읽는다고 남을 웃길 수 있는 것은 아니더라. (진작 알았어야지!) 그래도 책을 통해 한가지 확인한 점이 있다. 바로 웃음의 공격성이다.

 

악마의 웃음, 천사의 웃음

 

움베르또 에꼬의 『장미의 이름』에서 제일 인상 깊은 인물은 웃음을 싫어하는 호르헤 수도사다. 어린 시절 에꼬는 무쏠리니가 다스리던 파시즘 체제를 겪으며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한다. 권위를 내세우는 파시스트와 권위에 복종하는 소시민들이 웃음을 두려워하더라는 것이다. 에꼬가 젊어서 쓴 에세이 「프란띠에게 바치는 찬사」에 잘 나와 있다.

 

에꼬의 말대로라면 근사하다. 불의한 체제에 맞서는 무기가 웃음이라니, 만화가로서 뿌듯하기도 하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다. 히틀러에 대해 조사하다가 알게 된 사실인데, 파시스트도 자기네끼리는 잘 웃더라는 사실이다. (이 글 마지막에서, 우리는 히틀러의 웃는 낯짝을 다시 마주치게 될 것이다.) 소소한 일에서 소소한 기쁨을 찾는 소시민은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그래서 에꼬의 지적은 절반만 참이다.

 

밀란 쿤데라의 『웃음과 망각의 책』(백선희 옮김, 민음사 2011)에 나오는 천사와 악마 이야기를 소개할까 한다. 쿤데라는 웃음을 두 종류로 나누었다. 하나는 악마의 웃음이고 하나는 천사의 웃음이다.

 

악마의 웃음이란 무엇인가. 조화롭고 질서 잡힌 세상을 위협하는 불온한 웃음이다. 『장미의 이름』에서 호르헤 수도사가 겁낸 바로 그 웃음이다. 베르그쏭에 따르면 경직된 질서가 생(生)의 원리를 재단하려다가 빈틈이 생길 때, 우리는 웃는단다. 답답하던 속이 후련하고 숨통이 트이는 것이다. 그가 웃음을 찬양하는 이유다.

 

한편 천사의 웃음도 있다. 악마가 웃음이라는 무기로 조물주의 권위를 흔들 때 천사 역시 웃음을 무기로 사용한다고. 천사는 해맑은 웃음으로 악마의 웃음을 덮고 세상을 얽어맨 질서를 수호한다. 쿤데라에 따르면 천사가 곧 정의는 아니다. 악마는 질서를 허물려는 자고 천사는 질서를 수호하는 자란다. 악마가 악이고 천사가 선이라 생각한다면 당신은 이미 천사의 선동에 넘어간 것이라나.

 

작가의 신산한 인생역정을 생각하면 그저 한갓된 우화가 아니다. 쿤데라의 기준으로는 히틀러도 무쏠리니도 천사였고, 자기 숨통을 조이던 체코 공산당도 옷 색깔만 다른 천사였으리라. 20세기 현실사회주의 정권은 반파쇼를 자처했으나 실은 자기들도 엄청 권위적이었으니까. 쿤데라는 친구 몇과 모여 근엄한 분들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장난을 치다가 들통이 나 끝내 프랑스로 망명해야 했다.

 

악마의 것이든 천사의 것이든 웃음에는 공통점이 있다. 무시무시한 공격성이다. 웃음은 서슬 퍼런 권위를 허물어버릴 힘도 있고 권위에 도전하는 자를 짓뭉개버릴 힘도 있다. 베르그쏭은 자기 책 『웃음』에서 내내 웃음의 힘을 찬양하다가 마지막 한 줄에 ‘웃음에는 씁쓸한 맛이 있다는 점을, 예민한 사람은 놓치지 않으리라’고 덧붙였다.

 

웃음은 배타적이기도 하다. 공격의 대상이 대체로 타자, 남이기 때문이다. 로마 시인 호라티우스의 작품에 내가 좋아하는 구절이 있다. “퀴드 리데스? 무타토 노미네 데 테 나라투르”(Quid rides? Mutato nomine de te narratur). 이 라틴어 문장은 우리말로 이런 뜻이다. “어째서 너는 웃는가? 이름만 바꾸면 네 이야기인데.” 그렇다. 자기 일이라면 웃지 못할 일이라도 남의 일이니까 웃음이 나오는 것이다.

 

‘쌤통’의 심리, 정의일까 불의일까

 

미국의 심리학자 리처드 스미스의 『쌤통의 심리학』(이영아 옮김, 현암사 2015)이 지난 연말에 번역 출간되었다. 독일어 단어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를 우리말 번역자가 ‘쌤통’이란 말로 옮겼다. 귀에 착착 감기는 좋은 번역이다. 다만 원저에서 저 말을 굳이 영어로 옮기지 않고 독일어 그대로 내버려둔 의도도 살짝 헤아려본다. 저자는 이 책에서, 쌤통 심리의 유쾌한 측면 말고 위험한 면도 비중있게 다루었다. ‘샤덴프로이데’를 가벼운 면도 어두운 면도 겸비한 낯선 개념으로 남겨두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물론 나는 ‘쌤통’이라는 번역에 무릎을 치며 좋아했지만 말이다.)

 

이 책에 따르면, 쌤통 심리는 인간의 본성이란다. 책의 처음과 끝은 만화영화 <심슨 가족>의 주인공 호머 심슨 이야기다. 단점투성이인 배불뚝이 호머는 완벽한 남자인 네드 플랜더스를 질투한다. 그런 네드가 가게를 열었는데 손님이 없이 파리만 날리는 것이다. 세상에, 이렇게 고소할 수가! 호머는 즐겁다.

 

쌤통 심리는 때로는 유쾌하다. 스포츠 응원할 때 어떤가. 언제나 우리 팀을 괴롭히던 라이벌 팀이 실수를 하면 깨소금 맛이 아니던가. 잘난 체하던 윤똑똑이의 실수는 또 얼마나 즐거운 구경거리인가. 동성애 혐오 발언으로 눈총받던 극우 보수 목사가 사실은 동성애자였다는 스캔들이 터질 때에는? 자업자득이구나! 정의가 실현되는 기분마저 든다.

 

하지만 쌤통 심리가 찌질할 때도 있다. 황색 저널리즘을 보며 유명인의 사생활을 엿보는 심리는 어떻게 봐야 할까. 텔레비전의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이제 남을 공개 망신시키며 시청률을 챙긴다. 굴욕(humiliation)과 오락(entertainment)를 합쳐 휴밀리테인먼트(humilitainment)라는 말까지 나왔다. 질투에 폭력까지 더하면 쌤통 심리는 위험해진다. 남의 몰락을 보고 즐기는 차원을 넘어 남의 몰락을 기원하거나 숫제 직접 나서서 남한테 해코지를 하게 될 수도 있다.

 

안 좋은 쪽의 극단적인 사례로 히틀러가 있다. 이 책의 10장은 ‘쌤통 심리의 어두운 그림자, 홀로코스트’다. 열등감 덩어리였던 아돌프 히틀러가 유대인을 질투하다가 결국 공격에 이르는 심리를 분석했다. 나치 패거리의 웃음이라니 얼마나 섬뜩한가.

 

그렇다면 결국 웃음은 정의인가 불의인가? 딱 잘라 말할 수 없다는 것이 이 책들이 주는 메시지리라. 쌤통 심리가 우리의 본성임을 받아들이자. 다만 그것이 증오와 폭력으로 번지지 않게 신경 써야 할 것이다. (어떻게 마음을 다스릴까? 이 책 11장에 저자 나름의 제언이 있다.) 선악을 가르고 흑백을 나누기 좋아하는 분이라면 이렇게 “정의도 불의도 아니”라는 대답은 반갑지 않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굳이 “우리의 웃음은 저들과 달리 정의롭지 않으냐”고 물으신다면, 글쎄, 나는 숨어서 혼자 따로 웃을 수밖에. 

 

 

김태권 / 만화가

2016.1.27 ⓒ 창비주간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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