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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타니 고진 『제국의 구조』

김동수

임박한 파국, ‘제국’은 그 탈출구가 될 수 있을까?
–가라타니 고진 『제국의 구조』, 도서출판 b 2016

 

 

liuluiiu고대에 그리스인들은 자신과 다른 언어를 쓰는 이민족들을 ‘바르바로이’ 즉 야만인이라고 일컬었다. 특이한 점은 이러한 규정이 그리스 주변의 미개인만이 아니라 에게해 건너에 있는 페르시아 제국에도 적용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리스인들도 페르시아의 높은 생활수준이나 뛰어난 문화적 업적을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페르시아 제국이 전제군주에게 모든 이가 복종하는 노예사회라며 멸시했다. 그리하여 에우리피데스의 『이피게네이아』에서는 ‘야만족은 노예로 자라고 그리스인은 자유인으로 자라며, 자유인이 노예들을 통치해야 한다’는 논리까지 등장한다.

 

자신의 문화를 중심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태도야 흔한 일이지만, 동방의 제국을 향한 그리스인들의 태도가 유독 관심을 끄는 이유는 그것이 현대 서구인들의 역사관을 은연중에 규정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유럽인들은 그리스문명의 계승자임을 자처하면서 그리스·로마의 고대사회, 중세의 봉건제, 근대 자본주의로 이어지는 자신들의 경험을 역사발전의 일반적인 법칙으로 격상시켰다. 그 와중에 동양의 제국들은 ‘전제국가’ 혹은 ‘아시아적 생산양식’ 즉 기본적으로 역사발전에서 벗어난 정체된 사회로 폄하되었다.

 

‘제국’을 다시 사유하는 일

 

카라따니 코오진(柄谷行人)의 『제국의 구조』(조영일 옮김)는 이러한 통상적인 관점을 벗어나 제국의 구조와 역사를 새롭게 해석하려는 시도이다. 사실 이 책은 교환양식을 중심으로 사회구성체의 역사를 재구성한 전작 『세계사의 구조』의 연장이자 확장판이라고 할 수 있다. 카라따니는 사회를 이루는 네가지 교환양식을 제시하는데, 호수(증여와 답례)에 기초한 교환양식 A, 약탈과 재분배(지배와 보호)에 기초한 교환양식 B, 상품교환(화폐와 상품)에 기초한 교환양식 C, 그리고 B와 C를 넘어서 A를 고차원적으로 회복하는 교환양식 D가 그것이다. 각 사회구성체는 세가지 교환양식의 위계적인 접합으로 이루어진다. 예컨대 현존하는 자본주의 사회는 교환양식 C(자본)를 중심으로 B(국가/스테이트)와 A(네이션)가 결합되어 있는 형태이다. 그리고 세계사의 큰 진행은 교환양식 A를 중심으로 하는 ‘미니 세계 시스템’에서 교환양식 B를 중심으로 하는 ‘세계=제국’을 거쳐 교환양식 C를 중심으로 하는 ‘세계=경제’로 이어져왔으며, 아직은 도래하지 않았지만 교환양식 D를 중심으로 하는 ‘세계공화국’이 이상적인 미래로 제시된다.

 

그렇다면 이런 관점에서 제국의 역사는 어떻게 파악할 수 있을까? 자본주의 이전에 세계사의 중심을 이루었던 것은 중국, 인도, 중동을 비롯한 제국들이었으며, 제국은 단순한 전제국가가 아니었다. “그것은 다수의 부족이나 국가를 복종이나 보호라는 ‘교환’에 의해 통합하는 시스템입니다. 제국의 확대는 정복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그것은 정복된 상대를 전면적으로 동화시키거나 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복종하고 공납만 한다면 그대로도 상관이 없습니다.” 제국은 개별 국가를 넘어서 광범한 교역체계를 가능하게 한 고도의 통치체계였다. 같은 맥락에서 그리스에서 로마, 그리고 유럽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중심성과 연속성은 부정된다. 우선 고대의 노예제 사회나 봉건제는 세계사의 중심적인 현상이 아니라 문명의 ‘아주변(亞周邊)’에서 발생한 예외적인 현상에 해당한다. 게다가 흔히 제국의 이념형으로 제시되는 로마 제국의 경우, 그 기본적인 시스템(만민법, 화폐제도, 간선도로망 등)은 그리스의 폴리스가 아니라 페르시아 제국을 본받은 것이었다. 유럽의 근대국가는 로마 제국을 계승한 것이 아니라 제국의 원리를 부정하면서 탄생한 것이다. 다만 문명의 아주변에서 형성된 세계=경제가 전세계로 확산되면서 유럽의 국민국가가 근대국가의 일반적인 모델로 정착되었을 뿐이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제국’을 다시 사유하는 일은 단순히 서구중심주의적인 시각을 탈피하는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것은 무엇보다 제국주의로 치닫는 근대의 국민국가를 지양하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카라따니에 따르면 자본주의 체제는 일정 단계에서 필연적으로 제국주의로 전환되는데, 현재 우리가 속한 시대가 바로 그렇다. “제국주의 단계는 헤게모니 국가의 부재라는 특징이 존재합니다. 즉 다음 헤게모니를 둘러싸고 작렬하는 각축과 투쟁이 이어집니다. 그런 점에서 1990년 이후 ‘신자유주의’ 시대는 1870년대 이후의 ‘제국주의’ 시대와 유사합니다.” 그리고 제국주의 시대의 갈등은 결국 전쟁으로 해결되기 십상이라는 것이 그의 불길한 전망이다.

 

남아 있는 의문들

 

유의할 점은 카라따니가 ‘제국’과 ‘제국주의’를 엄격하게 구별한다는 점이다. 제국은 개별 국가를 넘어서며 보편성과 관용, 다양성을 핵심으로 한다. 그에 반해 “‘제국주의’란 ‘제국’의 원리 없이 네이션=스테이트가 확대되어 다른 네이션을 지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본=국가=네이션이라는 근대국가의 틀에 갇혀 있다. 심지어 제국주의에 대항한다고 여겨지는 ‘저항적 민족주의’조차 실은 이 근대국가의 이념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세계=경제는 세계=제국을 무너뜨리면서 성장했고, 제국주의는 제국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피지배민족의 민족주의를 동원하곤 했다. 예를 들어 오스만 제국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아랍의 민족주의를 동원하거나 청 제국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이 조선의 ‘독립’을 요구한 사례가 그것이다. 카라따니는 ‘제국을 고차원적으로 회복하는’ 것이 국민국가의 한계를 벗어나는 탈출구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중국에 필요한 것은 근대 자본주의 국가에 고유한 자유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제국’을 재구축하는 것입니다. 만약 중국에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생긴다면, 소수민족이 독립할 뿐만 아니라 한족도 지역적인 여러 세력으로 분해될 것입니다.”

 

그러나 근대국가의 한계를 넘어서야 하는 절박성에 대해 충분히 공감한다고 해도, 그 해법으로 제국이 거론되는 데에는 쉽게 납득 하기 어려운 점들이 있다. 우선 저자가 제국주의와 제국을 지나치게 이분법적으로 구별함으로써 제국을 이상화하는 경향이 있지는 않은지 의문이 든다. 제국의 건설 과정에서 자행되는 폭력과 약탈은 차치하고서라도 제국 내부에 존재하는 불평등과 위계는 항상적인 갈등의 요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전 책에서는 저자 역시 헤게모니 국가 아래에서 유엔이 강화된다고 해도 그것이 교환양식 B에 근거하는 한 세계제국과 같은 것이 될 뿐이라며, 이를 세계공화국과 분명하게 구별한 바 있다. 세계제국 속에서는 반드시 그에 대항하는 세력이 생길 것이고 영원평화는 존재할 수 없을 것이라는 논리였다.(『세계사의 구조』 ‘한국어판 서문’)

 

더욱 큰 문제는 저자의 궁극적인 지향이라고 할 세계공화국과 제국의 관계가 불명료하다는 점이다. 제국과 세계공화국은 공히 근대의 국민국가라는 한계를 벗어난다는 공통점을 갖지만 둘의 성격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제국이 교환양식 B에 근거한다면 세계공화국은 교환양식 D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설령 새롭게 성립하는 ‘제국적’ 질서를 세계공화국을 향한 중간기착점으로 간주한다고 해도, 거기에서 세계공화국으로 이르는 경로는 여전히 막연해 보인다.

 

미국의 상대적인 쇠퇴와 함께 새로 대두되는 중국의 행보는 여러가지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그리고 제국의 전통을 오래 유지해온 중국은 서구에서 유래한 민족국가와 사뭇 다른 행보를 보일 여지도 없지 않다. 하지만 이미 세계=경제에 깊숙이 편입되어 있는 중국이 근대국가의 일반적인 틀을 넘어선 국제관계를 형성할 수 있을지 낙관하기란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아직 실현되지 않은 제국의 이상을 실체화한다거나 그것을 현재의 국가체제와 동일시한다면, 이는 사실상 관변 이데올로기에 포섭되는 결과가 될 것이다. 제국의 질서에 대한 지나친 기대는, 자본과 국가에 대항하는 ‘아래로부터의 운동’을 경시함으로써, 사회주의혁명 후에 국가를 강화시킨 소비에트의 경험을 반복하는 것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김동수 / 문학평론가

2016.9.21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