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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민주화는 발전모델 혁신의 쐐기돌이다

이일영

이일영 / 한신대 교수, 경제학

 

사용자 삽입 이미지경제민주화가 핵심적인 대선 의제로 자리잡았다. 작년부터 끓어오르던 경제민주화의 요구는 총선에서 야권이 패배하면서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듯했다. 그러나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가 출마를 선언하면서 경제민주화, 일자리, 복지를 키워드로 제시했다. 그러자 민주당도 서둘러 재벌개혁 관련 입법을 다시 내놓고 있다. 여야가 경제민주화를 놓고 이번 대선에서 역사적 경쟁을 벌이게 되었다.

 

경제민주화냐 아니냐를 놓고 다투던 데에서 어떤 경제민주화이냐를 놓고 다투게 된 점에서 중요한 역사적 진전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여당의 유력 후보가 개발주의·국가주의를 들고 나오지 않은 것은 그나마 다행이고 이러한 점은 그간 시민들의 분투와 각성에 힘입은 바 크다고 할 것이다.
 
경제민주화를 둘러싸고 본격화된 여야 경쟁

 

그러나 정작 문제는 지금부터다. 경제민주화가 매우 포괄적이고 까다로운 과제이기 때문이다. 경제질서를 규정하고 있는 헌법 119조를 보면, 제1항에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 존중, 제2항에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 적정한 소득분배 유지,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 방지, 경제주체들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민주화의 실현이 명시되어 있다. 자유와 창의, 균형과 조화라는 목표를 동시에 실현하기 위해서는, 기존 발전모델의 혁신과 그를 위한 핵심 정책수단들을 함께 논의해야 한다.

 

민주당이 새누리당에 대해 “재벌개혁이 없다”며 공세를 펼치고 있지만 이는 자칫하면 부메랑이 될 수도 있다. 재벌개혁이 경제민주화의 주요한 내용인 것은 사실이지만, 현재 거론되고 있는 대기업의 지배구조 개선, 법인세 증대 등이 곧 바로 균형·조화 등 경제민주화의 성과로 나타날 것인지는 미지수다. 재벌개혁은 재벌체제 그 자체는 물론 그것을 둘러싼 환경을 함께 바꿔야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재벌기업의 지배구조와 관련하여 쟁점이 되고 있는 순환출자 문제 역시 경제민주화의 근본적인 방책이 되지는 않는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재벌 총수 일가는 평균 1%를 출자하여 계열사 지분 60%를 지배하고 있다. 박근혜 후보 캠프에서 논의하고 있는 것처럼 재벌들의 기존 순환출자를 모두 인정해주고 신규 순환출자만 막는다고 하면 지배구조 개선의 효과는 미미할 것이다.

 

재벌개혁이 전부는 아니다

 

그렇지만 환상형(環狀形) 출자구조에서 한 고리를 끊어서 순환출자를 금지한다 해도, 지배구조가 바로 변경되는 것은 아니다. 지배구조의 변화 압력이 있을 경우 기존 기업의 지배력 유지를 위한 신규 자금 수요가 발생할 수 있다. 외국자본의 지배력 확대 시도도 있을 수 있다. 정책적 상징성은 크지만 그 효과가 만족스러울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당장 시급한 것은 기업집단법 제정을 통해 재벌 대기업의 경계와 책임의 범위를 분명히하는 일이다. 즉 모회사와 자회사의 구성원간의 이해관계에 대한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여 재벌기업 내의 일감 몰아주기 등을 미연에 방지할 필요가 있다. 또한 공정거래위원회의 강화를 통한 불공정 경쟁행위를 엄단해야 한다. 이를 위해 공정거래위원회의 구성을 실질적으로 투명화하고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 위원장과 위원의 임명에 대해 국회가 점검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계좌추적권을 부여하고 국세청과의 연계체계를 수립해야 한다.

 

재벌개혁이 중요한 경제민주화의 과제이지만, 재벌개혁만이 그 전부인 것은 아니다. 균형·조화의 성과를 내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자유·창의의 경제질서를 형성하기 위해서도 건강한 기업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건강한 기업생태계에는 중소기업의 존재가 중요하다. 효율적인 중소기업이 사장되지 않고 성장할 수 있는 경로를 확대하는 한편, 중소기업의 성장에 필요한 자원을 활용하도록 비효율적인 중소기업의 퇴출경로도 함께 열어놓아야 한다.

 

국가주도의 발전모델 혁신까지 나아가야

 

현재 재벌 대기업은 기업생태계를 지배하지만 생태계 성장을 억압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해당 협력업체에게 단기적으로 도움을 주긴 하지만 재벌계 생태계로의 굴레를 강화하며, 새로운 기업의 창업·성장·발전의 경로를 억누르고 있다. 건강한 기업생태계가 구축되려면 신생기업과 중견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평가·지원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재벌 대기업으로의 집중이라는 불균형적 구조는 편중적인 산업·지역 구조와도 맞물려 있다. 2010년 IT 제조업은 20조5361억원(15.6%)의 순이익을 거두었으며, IT·자동차·석유화학·철강 등 핵심 4개 업종의 순이익은 전체의 45.6%에 달했다. 그리고 이들 산업은 수도권과 영남권 일부에 집중되어 있으며, 이들 산업·지역에서 대기업은 비용우위의 단기적인 전략을 구사하면서 납품업체 쥐어짜기, 벤처기업의 기술·인력 약탈, 문어발식 사업 확장,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등 지배자·포식자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신생·중소·중견기업이 새롭게 발전하려면 새로운 산업과 지역이라는 열린 공간이 필요하다. 또한 현재의 발전단계에서 새로운 기업·산업의 발전은 자유·창의를 보장하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지방정부간 네트워크를 통해 광역지역경제권을 형성하도록 하고 중앙정부는 지방정부에 대폭 권한을 위임하도록 해야 한다. 재벌개혁이 경제민주화의 필요조건이라면 신생·중소·중견기업, 새로운 산업·지역의 발전은 경제민주화의 충분조건이라 할 수 있다.

 

경제민주화는 재벌개혁과 함께 새로운 기업·산업·지역 정책을 포괄하는 개념이고 이는 과거 발전모델을 혁신하는 핵심 과제이다. 동아시아 각국에서 국가주도의 발전모델은 한때 경제성장과 불평등도의 저하라는 성과를 거둔 바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형성된 권위주의적이고 집권적인 제도형태들이 만들어졌다. 정부(정치권)·기업의 유착관계, 재벌 중심의 위계적 기업간 관계, 중앙정부로의 권한 집중 등은 성장과 분배를 제약하고 있다. 경제민주화의 요체는 집권적·위계적 관계를 분권적·수평적 관계로 전환하는 것이다. 경제민주화는 과거의 발전모델을 혁신하는 쐐기돌(keystone)이다.

 

2012.7.18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