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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론의 장을 책임지는 지식인이 필요하다

김명환

김명환 / 서울대 영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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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의료원 사태는 지난 7월 1일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추진한 해산 조례가 정식 공포되어 드디어 법인 해산과 재산 매각이 가능한 숨 가쁜 상황에 이르렀다. 열흘 예정의 국회 국정조사가 진행되고 있지만, 더 큰 정치적 사안들에 가려져 이 문제를 공론의 장에서 차분하게 논의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런데 진주의료원을 둘러싼 그간의 갈등을 지켜보노라면 이전에도 튼튼하지 못했던 우리의 공론장이 이젠 아주 유명무실해질지 모른다는 우려마저 든다. 우선 언론의 공정성이 지난 정권 이래 심하게 훼손되어 깊이있고 균형잡힌 보도나 프로그램이 크게 줄었고, (진보가 반드시 나은 것은 아니지만) 보수나 중도를 자처하는 지식인일수록 일관되고 진지한 발언을 찾아보기 힘든 경향이 있다.

 

송호근의 논조에는 공공성에 대한 성찰 없어

 

서울대 송호근 교수는 『중앙일보』 6월 18일자 칼럼 「용감한 준표씨」에서 진주의료원 폐업 추진을 지지한 바 있다. 그의 사회적 명망과 영향력에 힘입어 중도 성향의 국민 중에도 동조자가 많이 생겨났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칼럼은 서로 다른 입장들이 상호 논쟁을 통해 단련되고 진화하는 공론의 장에 필요한 개방성과 건강성을 잃고 있다. 이 문제에 전문적 식견이 있을 리 없는 문학 전공의 동료 교수가 보기에도, 송교수는 뜻밖에 낡은 프레임에 붙잡혀 자신이 넘어서자고 역설했던 ‘이분법 사회’에 오히려 갇혀 있는 것 같다. 그에게 거는 독자들의 남다른 기대가 있기에 더욱 실망스러운 일이다.

 

송교수는 홍지사에 맞서서 공공의료를 지키자는 입장에 대해 “듣기에 향기롭다”는 표현으로 그 긍정성을 일부 인정한다. 그러나 곧이어 공공의료를 강조하는 쪽이 영국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한국의 낮은 건강보험료 부담 비율을 무시하고 보험료 인상 필요를 외면한다는 점에서 결정적으로 잘못되었다고 공격한다. 이 주장의 시시비비는 차치하더라도, 송교수가 의료의 공공성을 아예 철저히 부정하는 입장이 아니라면 자신이 생각하는 공공의료의 목표나 성격, 과제 등을 암시라도 해야 활발한 후속 토론이 가능해지며 향후의 사회적 타협과 공감대 형성도 바랄 수 있다. 하지만 의료사회학 분야에서 전문적인 연구 성과를 쌓았으며 정치적 주견이 뚜렷한 사회학자에 어울릴 큰 그림은 이 글에서 찾을 수 없다.

 

나의 짧은 지식으로도 진주의료원 폐업은 공공의료를 죽이느냐 살리느냐 하는 단순한 이분법적 문제가 아니다. 송교수의 저서에도 나오듯이, 공공성의 개념부터 원점에서 논의가 필요할 정도로 지금 우리 사회의 의료체계는 복잡하게 얽혀 있고 다양한 변화를 맞고 있다. 그러니 아무리 짧은 지면일지라도 송교수에게 큰 그림에 대한 실마리를 바라는 것은 결코 무리한 요구가 아니다.

 

진주의료원 문제 단순화 경계해야

 

송교수는 홍지사가 진주의료원 적자 충당금을 재원으로 한다는 ‘빈곤층 무상의료’ 방안이나 전국 34개 지방의료원을 저소득층 전문병원으로 바꿀 것을 정부에 주문한 사실을 두고 “상당히 설득력 있는 대안”이라고 본다. 이는 사실의 차원에서부터 빗나간 판단이다. 우선 빈곤층 무상의료 방안의 경우, 현재 빈곤층의 본인부담금 자체가 미미한 수준이어서 그 면제는 큰 의미가 없을뿐더러 정작 중산층도 힘에 부치는 간병비 항목은 빠져 있어 눈속임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또 전국 34개 지방의료원은 이미 저소득층 전문병원 기능을 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저소득층 외에도 넉넉하지 않은 지역주민들에게 폭넓은 의료 써비스를 제공하는 동시에 전염병 대응 등 수익성은 없지만 필수적인 공공의 소임까지 다하고 있다. 낡은 사고의 프레임이 작용한 때문인지 송교수는 폐업반대 진영이 지적해온 엄연한 사실들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거나 왜곡하고 있다.

 

송교수 칼럼의 핵심은 이기적인 노동조합이 진주의료원 문제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그는 “김천·군산의료원처럼 경영진과 노조가 발 벗고 회생에 나선 모범사례”를 언급함으로써 외관상 객관적인 자세를 유지하려 애쓴다. 그런데 그는 이 의료원들의 경영진과 노조가 어떻게 진주의료원의 경우와 달랐는지 설명을 생략한다. 또 퇴직자가족 우선채용 등 일반 국민의 공분을 불러올 자극적인 단체협약 내용 몇가지를 꼬집는 것만으로 강성노조 탓에 진주의료원을 폐업시킬 수밖에 없다는 홍지사의 주장이 충분히 입증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는 노조를 너무 빤한 존재로만 본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분명히하자. 진주의료원 노조가 구체적으로 안고 있던 문제들이나 지방의료원 운영 개혁에 실제로 노조가 걸림돌로 작용하는 방식이나 정도는 더 조사하고 논의할 문제다. 노조에게 흠이 없다거나 노조는 의료원 폐업의 원인이 아닌 핑계일 뿐이라는 진보파의 시각도 국민들로서는 선선히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노조를 만악의 주범으로 지목하는 보수파의 관점도 의심스럽기 짝이 없다. 이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토론과 상이한 대안들의 검증 절차가 있어야 우리는 밀도 높은 공론의 장을 유지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비로소 대화와 타협이 가능해지고 정치다운 정치가 들어설 자리가 생길 것이다.

 

건설적 논의가 이어져야 한다

 

송교수는 지방 공공의료기관이 적자에 허덕이는 배경으로 낮은 보험료와 강성 노조 외에도 서울의 대형병원들을 포함한 민간병원과의 무한경쟁도 거론한다. 옳은 말이다. 그렇다면 보건과 의료를 시장에 맡기더라도, 영리를 추구하는 민간부문이 감당하지 못할 영역들을 공공부문이 어떤 원칙하에, 어떤 재원을 확보하여 해결해야 할지 고민한 흔적을 보여줘야 옳다. 거기서부터 건설적인 사회적 논의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그의 글에서 그러한 고민을 찾기 힘든데, “돈내기는 싫고 공공성 열망은 세계 최고인 한국” “노조 보호막만은 단단하게 쳤다” 등의 구절에서 대중의 약점이나 노조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희생양 만들기에 골몰하는 고질적인 기질, 즉 당당한 보수가 아니라 퇴영적 수구의 낌새를 읽는 것은 과민반응일까?

 

송교수는 아무도 해결하려 들지 않는 지방의료원 문제에 발 벗고 나선 홍지사가 책임 있는 정치인이라고 본다. 심지어 청와대, 보건복지부, 여당이 모두 골치 아픈 일과 정면대결을 피하는 상황에서 ‘용감한’ 홍지사는 사면초가라고까지 강변한다. “뭐든 조심조심 짚고 가는 현 정권”이라는 표현에서 느껴지는 송교수의 박근혜정부에 대한 불만을 감안하면 행동에 나선 홍지사에 대한 언설이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마땅히 할 일을 찾아 하지 않는 정권에 대한 비판이 지식인으로서 의당 보여줘야 할 성찰이나 비전 제시를 빼먹은 채 공공의료를 주창하는 이들이나 노조에 대한 일방적인 비판으로 흐른다면 느닷없는 일이다. 보수의 노른자위라고 자타가 공인하는 송교수 정도의 논객이라면 현실 정치를 더 나은 길로 이끌 지적 통찰과 문제제기를 앞세워야지 정치판의 독선과 불법을 무책임하게 부채질하는 발언을 해서는 곤란하다.

 

2013.7.10 ⓒ 창비주간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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