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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폭력성과 개인의 윤리

백지연

<더 리더>를 읽고

백지연 / 문학평론가

지난주 우리를 깊은 충격과 슬픔에 잠기게 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는 국가권력의 폭력성이 어느 수위에 이르렀는가를 소름끼치도록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그동안 상식과 원칙이 통하지 않는 사회 풍토에 대한 무기력증과 정치적 불감증은 망각과 체념을 집단적인 처세술로 활용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적당한 동조와 타협을 거부한 그는 목숨을 걸고 자신의 신념을 드러냈다. 힘들고 고독했을 그 결단 앞에서 우리는 이제껏 진부하다고 여겼던 진실, 정의, 도덕 등의 가치들을 새삼스럽게 떠올리며 숙연해진다.      

역사 속에서 한 사회구조를 지배하고 그 구성원의 윤리감각마저 마비시키는 국가권력의 폭력적 메커니즘은 홀로코스트 사례들을 통해 자주 분석되어왔다. 라울 힐베르크나 한나 아렌트 같은 연구자들이 이미 지적한 것처럼 유대인 집단학살은 히틀러가 지휘하는 나찌세력에 의해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타자를 차별하고 제거하는 잔인한 학살의 작업에는 한 사회의 “모든 전문직, 모든 직종, 모든 계층이”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동원되었다. 국가폭력은 그것을 수행하는 정치집단뿐 아니라 그것에 침묵하는 모든 구성원들까지 동조자로 끌어넣는다. 

개인의 윤리감각을 마비시키는 국가 폭력

올해 초 영화로 개봉되어 화제가 된 독일작가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에서도 개인의 사유를 무력하게 만드는 국가 폭력의 문제는 나찌전범으로 전락한 한 여성의 비극적 생애를 통해 섬세하게 포착된다. 한 소년의 내면에 간직된 첫사랑의 기억을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되는 소설은 개인의 비밀스러운 추억이 역사의 한 흐름과 만나는 순간을 섬세하게 기록한다.

소설을 움직이는 기억의 서사는 개인의 사적인 삶을 공적인 역사와 접속시키면서 집단이 망각해온 책임의식과 자기성찰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환기한다. 주인공 미하엘은 오래전 사랑했던 여인이 나찌전범으로 법정에 선 광경을 바라보며 충격과 죄책감에 휩싸인다. 그는 “죄를 지은 사람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고 해서 우리가 수치심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라고 고백한다. 그것은 “유대인 박멸과 관련된 끔찍한 정보들을 실제로 어떻게 대해야 했는지” 혼란스러웠던 ‘2세대’들의 자의식인 동시에 “경악과 수치와 죄책감으로 입을 다무는 것”밖에 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자책을 드러낸다. 

저들이 자기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깨달을 때

미하엘의 ‘기억하기’는 나찌 과거와 연계된 자신의 부모 세대를 어떠한 방식으로 수용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닿아 있다. 이와 비교하여 한나의 ‘기억하기’는 집단적 이념 속에서 자신의 주체적 사유를 포기했던 부모 세대의 뒤늦은 자기 발견과 연결된다. 사실 여성독자로서 이 소설에서 느꼈던 절실한 감동은, 남성 지식인의 자의식에 가려져 있던 여성 인물이 서서히 자기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후반부의 이야기에서 비롯된다. 한나는 문맹이라는 이유로 수치심을 느꼈지만 정작 자신이 근무했던 강제수용소에서는 어떤 갈등이나 부끄러움도 느끼지 못했다. 일찍이 아렌트가 나찌전범인 아이히만의 사례를 통해 분석했던 ‘악의 평범성’의 문제는 주인공 한나에게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그녀는 아이히만처럼 “단지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결코 깨닫지 못”한 사람에 불과했다. 한나는 미하엘과 사랑을 나누었던 시절 맛본 문학적 상상력의 쾌락을 수용소의 유대인 소녀들에게도 얻고자 했지만 그녀가 ‘들었던’ 문학은 자기가 투여되지 않는 허위적인 세계일 뿐이었다. 한나의 비극은 타자의 입장이 결여된 개인적인 강직함과 윤리적 수치심의 세계가 얼마나 간단하게 거대악의 메커니즘과 연결될 수 있는가를 생생히 보여준다.

감옥에서 한나가 글을 읽게 되면서 가장 먼저 주문한 책이 홀로코스트 관련서들이었다는 점은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스스로 책을 읽게 된 그녀는 자신이 가스실로 보내거나 불구덩이에서 방치했던 수많은 유대인들의 기억을 고통스럽게 재구성한다. 그런 점에서 ‘문맹’을 벗어나 ‘문학’으로 가는 한나의 변화 과정은 상징적이다. 수치심을 뛰어넘어 그녀가 도전하는 책읽기의 과정은 자신의 나찌 과거를 돌아보는 고통스러운 기억의 복원과정과 겹친다. 결국 ‘책을 읽어주는 남자’에서 ‘책을 읽는 여자’로 초점이 옮겨가는 이 책의 후반부는 개인의 기억이 역사와 연결되는 지점을 명징하게 보여준다.

개인의 기억이 역사와 만나는 방식

나찌전범으로 살아야 하는 냉정한 현실을 자각한 한나가 석방을 앞두고 자살하는 비극적 결말은 미하엘에게도 뼈아픈 성찰을 제공한다. 한나가 강제수용소에서 근무하면서 유대인의 입장을 사유하지 못한 것처럼 미하엘 역시 온전한 의미에서 한나의 입장을 사유하지 못했다. 그에게 한나는 육체적인 욕망과 감각을 환기하는 매혹적인 첫사랑의 이미지였으며 모호한 죄의식을 상기시키는 과거에 머물러 있었다. 그가 자기의 방에서 홀로 맞추고 있었던 이미지의 퍼즐은 그녀의 죽음으로 인해 순식간에 흐트러진다. 자기 성찰을 동반하는 기억의 과정이 고통스러운 이유는 허구적인 이미지의 파열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왜곡된 기억들은 무수한 조각들을 남기며 부서지지만 역설적으로 그러한 파열 과정을 통해 현실과 새롭게 만난다. 

매혹적인 연애소설이면서 시대적 성찰을 담은 뛰어난 성장소설인 이 작품은 문학이 보여주는 기억의 힘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만든다. 작가는 타자를 돌아보지 않는 개인의 철학이 얼마나 쉽게 집단적인 폭력구조와 연결될 수 있는가,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공동체적 책임윤리의 문제가 무엇인가를 문학의 차원에서 세심하게 묻고 있다. 이러한 문학적 물음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정당성을 끊임없이 회의하는 절박한 질문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는 타자를 돌아보는 개개인의 결벽과 자기성찰이 포기되는 사소한 일상의  순간들이 쌓여 무시무시한 공권력을 만들어냈음을 통렬하게 자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거리에 나온 수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은 한 개인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는다. 식지 않는 추모와 애도의 열기는 현실의 모순을 더이상 방관할 수 없다는 절박한 위기의식을 담고 있다. 너무 늦긴 했지만 이 고통과 후회가 인간다운 삶에 대한 자각과 소망을 새롭게 일깨우는 동력이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2009.6.3 ⓒ 백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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