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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인터뷰] 한미FTA 타결,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최태욱 이병한

협상 결과의 문제점과 시민사회의 대응

최태욱 |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편집자의 말 : 이번호 창비주간논평은 한미FTA 타결을 주제로 최태욱 교수(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와의 인터뷰를 마련했다. 최태욱 교수는 계간 《창작과비평》 및 《창비주간논평》 등을 통해 한미FTA에 대해 비판적인 글들을 다수 발표해왔다. 인터뷰어 이병한씨는 현재 대학원 석사과정에 재학중인 역사학도로서, 한미FTA에 관한 국민적 실감을 확인하는 차원에서 비전공자이며 젊은 세대의 일원으로서 질의를 했다.

■ 한미FTA 협상이 타결되고 그 결과를 미국 측은 A+로, 한국 측에서는 ‘수’라고 자평했습니다. 타결 직전 이해영 교수는 《창비주간논평》에 기고한
<‘실익’으로 보는 한미FTA>에서 매우 비판적으로 전망한 바 있습니다. 협상 결과에 대한 최선생님의 의견을 말씀해주시죠.

최태욱 : 미국 대표단이 A+인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양보한 것은 거의 없이 가져간 것은 굉장히 많기 때문이죠. 그런데 한국은 반대입니다. 내준 게 너무 많고 얻은 건 거의 없어요. 그래서 성적이 아주 나쁜 협상이라고 봅니다. 잘못된 협상이라는 이유 두 가지를 명시하면, 하나는, 얻어내겠다고 국민들에게 약속한 것들에서 얻어낸 게 별로 없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 요구 중에서 받으면 안되는 치명적인 것들을 받은 게 꽤 있다는 겁니다.

첫번째 것, 얻겠다고 해놓고 얻지 못한 것들의 예를 몇가지 들죠.

우선 정부는 미국의 반덤핑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했습니다. 그 제도로 인해 우리 수출업계는 매년 평균 15억 달러의 막대한 손해를 보아왔거든요. 미국의 반덤핑 제도는 WTO도 문제삼고 시정을 요구할 만큼, 국제적으로 비난받고 있는 제도입니다. 그런데 결과는 무엇입니까? 반덤핑 제도가 의미있게 개선될 여지는 별로 없습니다. 제로잉 금지라든가 비합산 조치 같은 것들이 핵심인데 미국은 그것은 자국의 법 개정이 요구되는 조치들이라며 받아들일 수 없다고 버텼습니다. 결국 법 개정이 필요 없는 별로 효력 없는 내용의 합의들만 나왔습니다.

그리고 미국 섬유산업의 비관세 장벽인 얀 포워드라는 제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 섬유 수출업체들은 대개 가격이 싼 중국산 원사를 사서 그걸로 원단을 짜 섬유제품이나 의류를 만들어 팝니다. 그런데 이 제도에 의하면 원사를 우리 것을 쓰지 않으면 우리나라 제품으로 인정받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로서는 FTA를 체결하더라도 효과를 못 보는 거죠. 그래서 이걸 없애겠다고 정부가 섬유업계에 약속했죠. 그런데 못 지켰습니다. 나중에는 85개 품목 정도는 이 제도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요구하겠다고 하다가, 결국 고작 5개 품목을 얻어내는 것으로 끝났습니다. 큰 양보를 얻어냈다고는 볼 수 없죠. 이런 식으로 수출증대 효과를 보장한다는 것들을 얻어낸 게 별로 없다는 겁니다.

그밖에도 원래 얻어내겠다고 한 것들이 몇가지 더 있습니다. 한미FTA를 체결하면 써비스·투자 분야에서 최혜국 대우 덕분에 거대 통합시장인 NAFTA에 접근하기가 용이해질 것이라고 선전했습니다. 그런데 최혜국 대우를 미래시점에만 적용하기로 하는 바람에 과거에 체결한 NAFTA에는 적용이 안되는 걸로 되었고, 대신 미국은 우리가 앞으로 체결할 것으로 예상되는 EU, 중국, 일본 시장에서 상당한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써비스산업을 육성해서 우리의 신성장 동력으로 삼겠다고 했는데, 이상하게도 써비스시장은 제대로 열지 않았습니다. 그 발상 자체도 문제지만, 의미있는 써비스시장이 개방된 게 거의 없다는 겁니다. 또 전문직 취업비자 쿼터를 확보하겠다고 했는데 얻어내지 못했죠. 미국의 해운산업 시장을 개방케 한다고 한 것도 이뤄내지 못했습니다.

개성공단 제품의 원산지 인정을 받겠다고 했는데 그것에 매우 까다로운 조건을 붙여놓는 바람에 향후 그것이 실제로 가능할지 불분명합니다. 말하자면 가능성을 열어놓은 의미 정도만 있는 것이죠. 그 조건이란 것이 북핵문제의 진전과 북한의 노동환경 개선 등과 같이 매우 주관적인 판단을 요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판단하는 것은 결국 미국일 것이고, 따라서 이건 미국의 결정에 달렸다는 겁니다.

■ 한미FTA에서 우리가 얻겠다고 했으면서도 얻은 게 별로 없다는 말씀을 해주셨는데요. 그러면 받으면 안되는데 받은 것들은 어떤 것이 있나요?

최태욱 : 우선 투자자-국가 제소제도는 아주 치명적인 독소조항입니다. 그래서 호주도 미국과 FTA 체결할 때 이걸 끝까지 막아낸 거죠. 그런데 우리가 이걸 받아서 국민의 경제주권이나 정부의 정책자율성이 훼손될 가능성이 큽니다. 미국의 민간투자자가 우리 공공정책으로 인해 자신의 투자이익이 손상되었다고 여길 경우 우리 정부를 해외 주재 제3의 중재기관에 제소할 수 있으니까요. 이건 두고두고 부작용을 일으킬 겁니다.

두번째는 역진(逆進)방지 기제, 즉 래칫(ratchet) 조항의 도입입니다. 이게 있으면 우리 정부가 일단 자유화나 시장개방 조치를 취하면 설령 나중에 그 부작용이 심각하다고 판단할지라도 그것을 철회 또는 수정할 수가 없습니다. 다른 나라에 대해서는 가능할지라도 적어도 미국에 대해서는 그렇습니다. 정책실패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것인데, 그 시정을 불가능하게 하는 것이라면 이건 매우 위협적인 것이죠.

우리 정부가 애써 도입한 약제비 적정화 방안의 기조를 해칠 수 있는 미국의 요구를 받은 것 역시 큰 문제입니다. 우리의 약값 결정과정에 미국 제약회사들이 관여할 수 있도록 하는 재심위원회 제도 같은 것들은 좋은 약을 싸게 제공하겠다는 본래 취지를 해칠 수 있습니다. 약값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겁니다. 그 다음에 친환경적인 기존의 배기량 기준 자동차 세제를 미국의 요구에 맞추어 고친 것도 개악에 해당합니다. 그에 따른 세수 감소도 작은 문제가 아니고요.

그밖에도 참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대략 100여가지의 법률을 우리가 고쳐야 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전체 법률이 1000여가지 정도인데, 그중의 약 1/10에 해당하는 법을, 그것도 한번에 고쳐야 된다니 이건 가히 혁명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법률가들은 이걸 보고, 사실상 중급 헌법 개정에 해당하는 정도의 효과라고 합니다.

■ 찬성논리 중에서 중요한 것이 어쨌든 최대 시장인 미국에 대한 선점효과, 미국시장에서 일본이나 중국, 인도보다는 경쟁력이 생긴 거라는 얘기인데, 그럼 이것도 의미가 없는 건가요?

 

최태욱 : 선점이 주로 수출증대 효과와 관련된 얘기지요? 그런데 워낙 관세가 낮은 나라라서 그것이 큰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예컨대 일본이 왜 여태까지 미국과 FTA를 안하는지를 생각해봐야 해요. 일본이 원했다면 미국이 당연히 해주었겠죠. 일본정부가 미국과의 일체화 관계를 자랑할 정도로 둘은 가까운 나라 아닙니까. 일본의 정치가나 학자 혹은 관료들은 미국과 FTA를 체결하지 않는 이유를 대체로 두 가지 들더군요. 첫째, 관세가 그리 낮은데 뭐 하러 하느냐, 안해도 잘 팔리는데… 라고 합니다. 그 이야기 맞습니다. 게다가 현지생산도 많구요. 그러니까 특별히 별도의 비용을 치러가며 FTA를 맺을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둘째, 미국은 써비스 산업의 최강대국이라 써비스업을 항상 FTA의 범주에 넣는다, 그런데 다른 아시아 나라들처럼 일본은 써비스업이 약하다, FTA를 하면 써비스업에서 크게 손해볼 텐데 왜 굳이 하느냐, 동아시아식 써비스 표준을 개발하기 전에는 싫다. 뭐 이런 얘기거든요.

그러니까 선점이라는 얘기에 대해서는 ‘누가 선점할까 걱정이냐’라고 반문해야 할 것 같아요. 일본 스스로는 안하겠다는데, 그런 일본을 왜 걱정하느냐고요. 중국? 중국이 미국이랑 한다면 그건 세계시장 형성의 마지막 단계일 텐데 그게 언제 되겠습니까? 그럼 베트남을 의식해서 먼저 해야 한다는 겁니까? 태국이나 말레이시아 정도라면 모를까, 우리의 경쟁 국가들은 안하려고 하고 있어요. 그 다음에 선점이라는 것은 시장논리로는 말이 안되는 거예요. FTA는 일부일처제가 아니죠. 이거는 누구와도 언제든 계속해서 계약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선점이라는 것은 의미가 없어요. 예컨대, 그렇지도 않지만, 설령 일본이 원한다 치면 일본도 결국 1,2년 후면 할 것 아니에요. 그럼 1,2년 먼저 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요. 선점의 논리를 펴려면, 한번 하면 배타적 이익이 보장되는 것이라야 의미가 있죠. 선점이 주는 이득을 강조하는 것은 억지예요.

■ 결국 말씀을 종합하면, 실익은 없거나 있어도 미미하다는 거죠?

최태욱 : 수출은 분명히 증대되겠지요. 낮지만 어쨌든 미국의 관세가 사라질 테니까요. 그리고 투자유치도 과거보다는 늘 겁니다. 그런데 수출 증대나 투자유치 확대 그 자체가 항상 국익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로 인한 사회적 비용 등을 잘 살펴봐야 합니다.

■ 그렇게 보면 경제적 실익이 거의 없다는 건데, 왜 그렇게 한미FTA에 매달리는가를 다시 질문을 해보면 경제 외적인 요인이 컸었나라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한미FTA가 체결되면 한국은 미국식 자본주의로 가는 건데, 그럼 정부가 애초에 말했던 동북아구상과 완전히 어긋나는 것 같은데요. 양자간의 충돌이라 할지, 정책전환이라 할지, 어떻게 보시나요?

최태욱 : 저는 그게 충돌이라고 봐요. DJ정부는 동아시아공동체를, 그리고 현 정부는 초기에 동북아시대를 강조했죠. 둘 다 지역주의 정책을 택한 거예요. 우리의 지역주의 추진에 있어 한중일 3국과 아세안 국가들이 주요 멤버라고 한다면, 이 나라들간의 연대, 혹은 정책조화, 정책연합, 정책수렴 같은 것을 해가야 한다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한미FTA는 동아시아 국가들 간의 분열을 야기할 수 있다고 봐요.

미국은 2차대전 이후 지금까지, 공화당 정권이든 민주당 정권이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세계자유무역체제의 확산 기조를 변함없이 유지해왔어요. 그러니까 종국에는 세계를 단일 자유시장체제로 묶는다는 것이죠. 클린턴정부까지는 이 목표를 다자주의 원칙을 통해 이루려 했죠.

그런데 현재 부시정부에서 강조되는 것은 양자주의나 지역주의로 나타나는 일방주의예요. 다자주의로 가는 것이 너무 느리고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여기서 FTA는 가장 유효한 정책 수단으로 채택돼요. FTA를 통해 소위 ‘경쟁적 자유화'(competitive liberalization) 전략을 잘 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일종의 경쟁 부추기기 전략인데, 예를 들면, 한 국가가 미국과 FTA를 체결하면, 그 나라는 세계 최대시장인 미국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권을 확보하고 또 미국의 거대 자본을 활용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므로, 이런 잇점들이 생긴다는 걸 인식한 제3의 국가가 또 미국과 FTA를 체결하고 싶은 인쎈티브가 생긴다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결국 여러 나라들 사이에 경쟁이 일어나서, 미국과 A, 미국과 B, 미국과 C, 이런 식으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무역체제의 확산이 이루어진다는 거죠. 그런데 보세요. 이건 많은 국가들이 미국과는 일대일로 연결돼 있어도 서로 간에는 분열된 상태일 수 있어요. 동아시아에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겁니다.

■ 동아시아 국가들이 미국과의 관계 속에서 수직적으로 계열화된다는 거죠?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을까요. 노무현정부는 처음에는 동북아 균형자가 되겠다라고 했는데, 오히려 미국의 대동아시아 전략의 교두보가 되는 것이군요.

최태욱 : 저는 미국 쪽에 그런 의도가 있다고 봅니다. 동아시아 국가들과 미국과의 그런 관계를 바퀴통과 바퀴살(hub and spokes) 관계라고 하거든요. 다 일대일 관계잖아요. 동아시아 국가들만을 봤을 때 그런 관계는 연대가 아니죠. 가운데에 있는 허브가 제일 중요한 국가잖아요. 게다가 그 허브 국가는 역외 국가인 미국이고 막상 역내 국가들은 모두 바퀴살로 떨어져 있게 돼요. 동아시아 국가들 간의 공동체 모습과는 거리가 먼 거예요. 이런 관계는 마치 동아시아의 외교안보관계와 똑같아요. 안보영역에서 유럽과 동아시아의 차이점은, 유럽은 전체 국가가 연대해서 공동체로 발전했는데, 동아시아는 미국과 일대일 관계로 찢어져 있었죠. 그래서 결국은 동아시아 국가들끼리의 협력은 기대하기가 어려웠잖아요. 미-일동맹, 한-미동맹, 미-필리핀동맹 이런 식으로 다 찢어져 있어요.

■ 외교안보는 미국을 통해서만 이어져 있는데, 경제도 그렇게 된다는 말씀인가요?

최태욱 : 맞습니다. 그럴 가능성이 크다는 겁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걱정은 중국 소외 현상입니다. 만일 한미FTA가 정말 경제동맹으로 기능하면서 기존의 양국간 군사동맹 관계가 더욱 굳건해지고 그것이 다시 미일동맹과 연결된다면 그것은 결국 한-미-일 공조체제의 강화를 의미합니다. 이런 일이 중국 변수를 관리하지 않은 채 진행된다면 중국은 상당한 오해를 할 수 있지요. 한국이 결국 미국과 일본의 대중(對中) 포위망 구축 작업에 동참했다고 생각할 수 있겠죠. 이렇게 되면 동아시아 지역주의는 물 건너갑니다. 중국은 북한과 러시아와의 관계 강화에 힘쓸 것이고, 동아시아에서는 오직 아세안 국가들과의 관계 제도화에만 집중할 것입니다. 10년의 역사를 이어온 ‘아세안+3’라는 구상은 붕괴될 수 있습니다.

■ 이렇게 문제가 많아 협정이 타결되면 반대의견이 확산될 거라고 예상하셨는데, 지금은 거꾸로 가고 있잖아요. 대통령 지지도도 높아지고 있고요.

최태욱 : 대체로 정부와 시민사회가 정책대결을 할 때는 거의 모든 경우에 정부가 이깁니다. 그 이유는 첫째, 시민 또는 국민들은 정책정보를 잘 모르기 때문이고, 둘째, 설령 안다 할지라도 일반 시민과 같은 대규모 집단은 조직화가 어려워 결집이 안된다는 거예요. 그런데 역으로 말하면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이 두가지 문제가 해결되면 이길 수 있다는 얘기죠.

지금은 다수 국민들이 찬성하는 것처럼 나타나고 있어요. 그런데 그건 국민들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봐요. 현재 협상 관련 정보를 독점하고 있는 정부는 국민의 지지를 받을 만한 유리한 정보만 선택적으로 내놓고, 방송이나 조·중·동 등 유력 언론매체들은 그 정보를 그대로 받거나 혹은 심지어 지지하는 쪽으로 재생산해서 보도하는 것 같아요. 이런 구조하에서 일반 국민들에게 들리는 건 그저 좋고 긍정적인 말들뿐이에요. 지금은 정보가 선택적으로 흘러들어가고 있으므로, 그것에 영향받은 여론일 뿐이라는 거지요.

협상원문이 완전히 공개되면, 그때는 객관적인 효과분석 작업이 가능하겠지요. 아까 제가 얘기했던 것들과 같은 독소조항들이 낱낱이 나올 것이고, 처음에 선전했던 것들 중에서 제대로 얻지 못했던 것들이 무엇인지도 밝혀질 겁니다. 전체와 부분적인 효과와 부작용들이 과연 어느 정도일지 산업별, 기업별, 계층별로 다 분석이 될 겁니다. 그러고 나서 그 분석에 기초하여 제대로 된 정책정보가 잘 설명되어야 해요. 국민들이 실감나게 쉽게 말이죠. 그런 쉽고 편한 정보들이 각종 매체들에 의해 퍼져나간다면, 여론의 향배가 달라질 거예요.

다음에, 이렇게 국민들이 많은 정보를 알게 되어 여론이 바뀐다면, 이것을 모아줘야 되잖아요. 정책적 의미가 생기도록 여론을 하나로 결집해서 그 힘을 정책 결정과정에 투입해줘야 하는데 과연 누가 그걸 해주느냐가 관건이에요.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나 집단을 영어로는 political entrepreneur라고 하는데 우리말로 그냥 ‘정치기업가’로 번역해놓으면 어감이 좀 이상한 듯해서 저는 ‘공익 정치기업가’라고 합니다만 좋은 번역인지는 모르겠군요. 아무튼 그것은 정치가나 사회운동가 같은 개인일 수도 있고, 정당이나 시민단체 같은 집단일 수도 있어요. 지금은 그게 누굴까가 궁금한 상태죠.

생각해보자면 개인 수준에서는 예컨대 상당 기간 단식투쟁을 계속하고 있는 천정배 의원이나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가장 지속적으로 고민해온 심상정 의원 같은 이들이 나설 수 있다고 봅니다. 이분들이 강력한 카리스마를 확보하게 된다면 반대여론의 구심점 역할을 확실히 해줄 수 있을 겁니다. 과거 민주화 여론이 김대중이나 김영삼 같은 분들에 모였던 것과 같이 말이죠. 집단 수준에서는 현재로선 역시 민노당과 범국본이 단연 눈에 띄죠. 앞으로 혹시 한미FTA 문제를 중심으로 정계개편이 되어 ‘반(反) 한미FTA 통합신당’ 같은 것이 결성된다면 상당한 돌파력을 얻게 되겠지요.

 
■ 선생님은 작년 계간 《창작과비평》 가을호에서 이해영 교수의 저서를 서평하면서, 이교수가 시민사회의 견제력을 간과한 탓에 FTA를 둘러싼 정세인식에서 비관론에 빠져 있다고 비판하셨는데, 오히려 선생님이 시민사회를 과대평가하고 있는 건 아닌지요?

최태욱 : 지금은 고작 협상타결에 불과한 상태입니다. MOU(양해각서)가 맺어진 정도인 거죠. 체결이 되고 발효가 되려면 기나긴 국내 비준과정을 거쳐야 해요. 아직 갈 길이 멀고 우리 시민사회의 저력이 발휘될 기회는 충분히 남아 있어요.관건은 역시 앞서 말한 시민사회의 두가지 문제점을 어떻게 해결하느냐는 거겠죠. 정보의 부족과 조직의 결여 문제 말이에요. 결국 저는 협상문 공개 후에 벌어질 우리 사회의 변화를 기대해요.

전 기본적으로 이렇게 봐요. 우리의 민주화 열망이 모이고 모여서 87년체제가 탄생했잖아요. 지금은 그것보다는 낮은 수준이지만 문제점이 많다는 게 널리 알려지면 그때와 비슷한 일이 벌어지리라고 봐요. 게다가 한미FTA 문제 같은 것은 비교적 아주 간단한 논리라서 여론 결집에 몇개월 안 걸릴 거예요. 국민들에게는 피부에 와닿는 문제가 많거든요. 농민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에게도 예를 들어 ‘내가 고용불안에 상시적으로 시달리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실하게 올 거구요. 중소상공인들 중의 상당수도 걱정이 많아질 거예요. 심지어는 대기업 쎅터에서도 피해가 큰 부분이 있어요.

그렇게 해서 반대여론이 높아지고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그 사람들이 구심점 형성을 요구하게 되지요. 시민운동사를 보면 늘 그렇듯이, 이렇게 급한데 뭔가 구심점이 없다는 소리가 나오잖아요. 그래서 누군가에게 신뢰를 ‘만들어서라도’ 주고 싶은 열망들이 여론으로 형성될 수가 있어요. 이에 가세하는 이익집단들도 많아질 거고요. 결국 시민사회의 요구에 의해서라도 공익 정치기업가가 등장해서 그가 정치적 구심점 역할을 맡게 된다는 거예요.

사실은 정치권에서는 한미FTA를 놓고 진보와 보수의 전선이 구축될 가능성이 높다고 하는 데 그게 다 이런 이유에서 나오는 소리라고 봐요. 반대여론이 결집되면 결국 진보와 보수의 대치점을 한미FTA에 둔다는 거죠. 저는 그런 식으로 이념 전선이 형성되리라고는 보지 않아요. 이념과 겹치는 부분이 상당할 것은 분명하겠지만 본질적으로는 이해관계에 따라 반대진영이 결성되리라고 봐요. 아무튼 핵심은 그러한 반대진영이 구축되면 거기서 우리 시민사회의 대정부 견제력이 발휘되리라는 거예요.

■ 앞으로 시민사회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정보공개운동을 하고, 비준거부운동을 해야 하는 건가요?

최태욱 : 미국의 경우는 이미 수백명의 전문가와 이해관계자들에게 협상원문이 넘겨졌을 거예요. 협상 후 한달 이내에 이들이 작성한 분석보고서가 의회에 전달돼야 하니까요. 우리의 경우는 피해볼 게 분명한 사람들조차 자신의 피해가 어느 정도일지 몰라 불안해하고 있는 상태예요. 하루라도 빨리 공개되는 것이 마땅하죠. 그래야 시민사회도 효과 분석에 들어갈 수 있고 그것을 바탕으로 무엇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결정할 수 있겠죠.

분석 결과, 한미FTA가 우리 사회에 끼치는 해악이 정말 심대한 것이라고 확인된다면 시민사회는 마땅히 비준거부운동을 벌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협상이 타결되지 않고 연기되거나 중단되어 정부가 이 정책을 시정할 수 있는 기간이 주어졌다면 더 좋았겠죠. 하지만 이제 와서 어찌하겠습니까. 국내 비준을 거부해서라도 커다란 불행은 막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2007년 4월 6일, 세교연구소 회의실)

2007.04.10 ⓒ 창비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