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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박 『메이드 인 경상도』

백상웅

‘메이드 인 전라도’가 읽는 『메이드 인 경상도』
– 김수박 『메이드 인 경상도』, 창비 2014

 

 

madein전라남도 여수에서 스무해를 살았고 서른 조금 넘길 때까지는 익산과 전주 근방에서 살았다. 직장을 잡고서는 인천에서 한해, 서울에 두해 정도 살다가 이제는 파주에 산다. 그동안 전입신고를 몇번씩 했고 슬픔이나 사랑의 위도와 경도가 몇번 바뀌었지만 나는 여전히 여수를 고향이라 부른다. 정권이 바뀌든 이별을 하든 광주가 연고지인 야구팀만 응원해왔고, 때가 되면 용산역에서 기차를 타고 전라선 끝으로 향했고, 선거철마다 “경상도, 도대체 왜 그러니?” 하고 묻는, 나는 ‘메이드인 전라도’이다.

 

『메이드 인 경상도』를 읽는다. 작가는 1974년에 태어나 30년간 대구에 살았고 서울 등지를 떠돌다 지금은 구미에 살고 있다. ‘작가의 말’에서 밝혔듯이 이 책은 “경상도, 도대체 왜 그러니?”에 대한 그만의 대꾸이다. 지역갈등을 고민하던 작가는 “경상도 사람이기에 경상도 사람으로 말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고는 “부모 세대와 나의 세대가 살아온 세월 속에 갈등의 원인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1979년부터 1990년까지의 세월을 담아내기에 이르렀다. 한 소년의 성장기이기도 한 이 만화, ‘사람 냄새’가 풍긴다.

 

저마다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

 

결론부터 밝히자면 이 책은 나에게 ‘지역’은 물론이고 ‘세대’를 바라보는 시선을 조금은 선하게 해주었다. 물론 내가 “이 나라가 이렇게 된 건 다 너희 때문이야”라면서 경상도 사람을 바라보는 사람은 아니다. 그저 살면서 부딪친 몇몇 문제들 때문에 아주 조금 선하지 못했다는 거다. 이를테면 군대에서 만난 악질 선임이 하필 경상도 사람이었다거나,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경상도 출신 사장에게 구박을 당했다거나, 뭐 이런 식의 문제들이다. 하지만 난 조금은 선해졌다.『메이드 인 경상도』를 읽다가 몇번 눈물을 찍어냈기 때문이다.

 

고향에 내려간 ‘갑효’에게 친구들이 한마디씩 한다. “너 이 새끼, 왜 연락이 없노?! 디질래?” “어?! 이 짜슥! 서울 생활 하디마, 서울말 쓰네? 죽고 싶나?!” 저 사투리를 전라도 사투리로 바꾸면 딱 내 여수 친구들이다. “말로는 죽이고 죽는다고들 하지만 좋아한다는 뜻”(40면)을 잘 아는 친구들. 만나면 지금보다 더 철없던 시절 밤낚시 가고 미팅하고 학교 빼먹었던 이야기를, 그리고 그때 꿈꿨던 것보다 더욱 끔찍하게 고달픈 지금 사는 모습을 ‘허벌나게’ 꺼내놓는 친구들. 이 만화의 주인공 갑효에게도 있고 나에게도 있다.

 

갑효의 성장기를 한 컷 한 컷 보면서, 나는 자주 책장 넘기는 걸 멈추고 전라남도 여천시(지금은 여수시에 통합되었다) 주삼동에 살던 시절을 떠올렸다. 갑효가, 아버지가 공무원인 친구, 아버지가 장사를 하는 친구, 화상을 입은 친구, 한글을 읽지 못하는 친구와 ‘오징어 가생’ 놀이를 함께 하는 장면을 볼 때 눈물이 핑 돌았다. 그때 그놈들은 다 어디서 살고 있나 싶어서. 나는 ‘오징어 가생’ 놀이를 하지 않았다. 내가 왕따였기 때문은 아니다. 나는 ‘오징어 따가리’ 놀이를 했으니까. 희한하게 놀이 이름은 지역마다 다르다. 선을 오징어처럼 긋고 하는 이 놀이 이름이 다른 건 그래도 통일된 편에 속한다.

 

놀이 전에 편을 가르기 위해 하는 일명 ‘옆쳐라뒤쳐라’는 도시마다 다르다. 서울에서는 ‘데덴찌’(서울에도 여러 버전이 있다), 대구에서는 ‘데엔지시 오레엔지시 되는대로 먹기…’, 울산에서는 ‘살림없다 말없다 울음은 데야 대는 대로 먹자’, 진주에서는 ‘덴찌뽀’, 광주에서는 ‘편뽑기 편뽑기 장끼세요 알코르세요 쫄지마라 쫄지마 우라우무떼’, 내 고향 여수에서는 ‘모라이모라이 쎈치’라고 했다. 편 먹는 방법도 동네마다 다르다. 살았던 기억들이 데덴찌, 덴찌뽀, 모라이모라이 쎈치처럼 다른데 다 커서 우리는 그저 학연과 지연, 혈연 다 동원하여 편을 먹는다.

 

우리와 같은 한 소년의 우리와 같은 사람들

 

그러니까 옛날에는 “공무원이 무엇인지는 아빠가 공무원인 아이만 알았다.”(59면) 그때는 지역갈등이 뭔지 몰랐다. 그저 전라도 번호판 달고 경상도 가면 기름 안 넣어준다더라, 같은 소문만 어른들 사이에 앉아 있다가 들었을 뿐이다. 아이들 사이에서 ‘동네갈등’은 있었다. 왜 그랬는지 도무지 모르겠는데, 토요일 하굣길에 우리는 부락별로 나눠 섰다. 주삼동 윗마을, 주삼동 아랫마을, 봉계동, 삼동, 석창동 이런 식으로. 육학년 형들의 지도하에 줄지어 집으로 향했다. 어른들 사이에서도 그런 갈등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때 그 길을 걷던 아이들 사이에서는 있었다. ‘우리 동네가 더 잘살아’ ‘우리 동네 어떤 형이 싸움 제일 잘해’ ‘패싸움 할래?’ 같은 말들이 오갔다. 유치했던 그 말들을 했던 우리들은 다 자란 지금까지 단어 몇개를 약간씩 바꿔가며 쓰고 있다.

 

『메이드 인 경상도』는 “어리숙해서 ‘예민했던’ 한 아이”(7면) 갑효의 성장 만화다. 경상도 어린이 갑효는 어른 세대의 삶을 지켜보며, 이 땅에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어리숙해서 예민한 한 어른’으로 성장한다. 경상도 어린이 갑효를 보다가 부러운 게 좀 있었다. 그래도 살 만했던 집에서 자랐던 것, 자신의 손으로 집을 지은 아버지를 존경한다는 것, 텔레비전도 두대나 있었고 80년대에 백원 이백원씩 용돈을 받아 썼다는 것. 갑효보다 여섯살 적은 내 용돈은 초등학교 때 오십원이었다. 텔레비전도 초등학교 들어가서 한참 뒤에나 생겼고, 아버지를 존경하지만 자신의 손으로 집을 짓지는 못하셨다.

 

복선화(複線化)가 이제야 이루어진 전라선을 타는 내가, 나도 모르게 쌓인 박탈감이 이 책 때문에 사라졌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다만 나도 갑효처럼 힘 센 놈들이 힘 약한 놈들 괴롭힐 때 “귀찮고 두려워서 연대하지 않”고(224면) 침묵했고, 어리숙하고 예민했으며, ‘노찾사’ 노래를 들으며 괜히 뜨거웠다. 그리고 갑효처럼 친구들이 있다. 얼굴 까맣고 ‘추태’라고 불리던 놈은 군인이 되었고, 운동부보다 공부를 더 못해서 ‘운동부’라고 불리던 놈은 정비공이 되었다. 쉬는 시간마다 교실 뒤에서 말도 안되는 무술을 하던 ‘영삼이’는 공단으로 출근하고, 대학 졸업 때까지 여자 한번 안 사귀어본 ‘개종X’은 제일 먼저 장가가서 아빠가 되었다. 그래, 세상이 어찌 돌아가든 갑효랑 나는 어쨌든 잡다한 친구들과 함께 이 시대를 살고 견디고 있는 거다.

 

“제 아이들에게 이 ‘갈등’의 유산을 물려주지 않겠습니더.”

 

갑효가 아버지에게 묻는다. 1980년 5월 광주의 일을. 아버지는 “전두환이가 경상도 군인들 보내가 광주 사람 죽인다꼬” 알고 있다. “아부지, 그때 알았다면… 막아야 하지 않았겠습니꺼? 사람 못 죽이게?” 되묻는 갑효에게 아버지가 대답한다. “묵고살아야 될 거 아이가?! 묵고살아야…”(224~25면). 여기서 나는 좀 울었다. 먹고살 일 때문에, ‘묵고살아야 됭께’ 우리 아버지도, 어머니도, 고모도 이모도 그렇게 살았다. 어른이 된 갑효가 말한다. “저는 제 아이들에게 이 ‘갈등’의 유산을 물려주지 않겠습니더. 그래야, ‘바르게 살아라’라고 말해줄 수 있지 않겠습니꺼?”(227면) 

 

나는 지역갈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 나라를 이끌고 있다고 착각하는 두 정당이 강제 합당하거나 해산해야 한다고 ‘아주 조금 선하지 못하게’ 생각했다. 이 생각은 아직 유효하지만 『메이드 인 경상도』에는 지역갈등에 대한 설득력 있는 분석이 있고 해결책이 있다. 그래서 이 재밌는 갑효의 성장기가 가능하면 많이 읽혔으면 좋겠다. 그런다 해서 나에게 어떠한 메리트도 없지만, 적어도 몇몇은 자기 역사를 돌아보고 그러다가 몇몇은 갈등을 걷을 수 있을 테니까. 적어도 자기의 역사를 돌아보고 거기서 가장 아름다운 추억을 꺼내 잠깐 선해질 수 있을 테니까.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신경림 「파장」). 그래서 여수 친구들이 내 얼굴을 보면 그렇게 흥겨워했나보다. 사는 모습이 서로 다른 친구들처럼, 차근차근 마음으로 연대하다보면 흥겨울 날도 있을 거다. 아직은 멀었다. ‘묵고살아야 됭께’ 어쩔 수 없는 젊은 침묵과 슬픔들이 책상 맡에, 공장 안에, 길거리에 있어서……

 

 

백상웅 / 시인

2014.12.17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