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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영 『지배받는 지배자』

정지은

귤화위지, 한국 지식인의 초상

– 김종영 『지배받는 지배자: 미국 유학과 한국 엘리트의 탄생』

 

 

jibae영국에 잠시 살았던 적이 있다. 귀갓길, 2층버스에서 내리는데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위를 올려다보니 얼굴 위로 음료수가 주루룩 흘러내렸다. 2층에서 10대 남자아이들 서넛이 낄낄대며 보란 듯이 콜라캔을 흔들어대고 있었다. 실수가 아니었다. 내가 내릴 타이밍에 맞춰 창문 열고 기다리고 있다가 쏟았으니 명백히 나를 겨냥한 것이었다. 2층에서 내려갈 때 이미 타깃이었던 거다. 힐끔힐끔 쳐다볼 때부터 왠지 불안했는데 이렇게 음료수를 뒤집어쓸 줄이야… 집에 와서야 엉망이 된 옷을 벗어던지고 울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와중에도 아이들이 뭐라고 소리쳤는지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나에게 짜증이 났고, 무력했다. 자주 겪은 건 아니지만 이 정도의 단순한 적의는 애교 수준이었다. 그보다 더 힘들었던 건 아무리 애쓴다 한들 나는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받기 어려우리라는 씁쓸함이었다. 영국생활 내내 나는 내가 동양인임을 확인받아야 했고, 인정해야 했다. 처음에는 매너 좋은 배려에 감격했지만 그건 관습적인 친절일 뿐이라는 걸 곧 깨달았다. 한국에서 그렇게 자신감 넘치고 적극적이던 나는 영국에서 한명의 동등한 성인이라기보다는 ‘우쭈쭈’ 해줘야 하는, 동양에서 온 어린애로 움츠러들어 있었다.

 

『지배받는 지배자』(돌베개 2015)를 읽으면서 그때의 기분이 다시 떠올랐다. 고작 6개월 남짓 살았고, 유학을 간 것도 아니었던 내가 느낀 소외감이 그 정도였는데 실제 유학을 가서 부딪친 사람들의 열패감이 어느 정도일지 짐작조차 어렵다. 나 역시 부족한 영어실력 때문에 내 의사를 제대로 전달할 수 없다는 걸 확인할 때마다 바보가 된 느낌이 한두번이 아니었으니까. 한국에서는 똑똑했던 학생들이 미국에서 바보가 된 듯한 느낌을 받는 것은 유학생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일이라고 한다.

 

김종영 경희대 교수가 1999년부터 2014년까지 15년간 110명을 심층면접해 추적한 ‘미국 유학파 한국 지식인’의 민낯은 결코 새롭지 않다. 현실에서 느끼던 것들을 다시 한번 새삼 확인했다고나 할까. 시대가 바뀌었어도 여전히 미국 학위를 취득하는 데 상당한 자금과 시간, 정열이 요구된다는 점은 여전하다. 심지어 저자 역시 이 질적 종단 연구조차 미국 유학의 효과를 여실히 증명한다고 고백한다. 자신이 미국 유학 경험자이기도 한 저자는 한국 엘리트들의 미국 유학 동기부터 경험, 유학 후의 트랜스내셔널 위치 경쟁, 양국의 교수 임용 과정과 연구 경험, 직업 궤적(미국 대학, 미국 기업, 한국 대학, 한국 기업)까지를 광범위하게 추적한다.

 

그 결과 저자는 미국 유학파 한국 지식인을 대학의 글로벌 위계 속에서 탄생한 ‘트랜스내셔널 미들맨 지식인’으로 규정한다. 이는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지위 간극’의 중간에 위치하여 이 둘의 경제적 활동을 연결해 이익을 보는 계층을 일컫는 ‘미들맨 소수자’(미들맨 소수자들은 지배집단이 생산하는 상품에 대한 무역과 유통, 그리고 이를 피지배자들에게 판매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한국에서도 지식인들이 당나라(신라), 명·청나라(조선), 일본(일제강점기 조선)으로 유학을 떠나는 등 ‘트랜스내셔널 미들맨 지식인’은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존재해왔다) 이론을 창조적으로 해석해 탄생한 개념이다.

 

책에 등장하는, 유학 시절 보잘것없던 꿈 많은 젊은이들은 거의 예외없이 한국과 미국에서 엘리트의 신분을 획득해 살아가고 있다. 물론 미국에서는 지식 생산의 상층부에 진입하지 못하고 중간자적 역할에 머문다. 경제적으로는 성공한 아시아계 엘리트지만 사회적, 문화적으로는 미국에 편안하게 정착할 수 없는 낯선 존재이기 때문이다.

 

‘마이너로 사는 삶’을 포기하고 한국에 돌아오면 상황은 달라진다. 미국 명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것만으로도 한국에서 메이저로 살기에 충분한 조건이 된다. 이들은 미국과 한국 양국에 일종의 양다리를 걸치고, 헤게모니를 획득하되 헤게모니에 도전하지는 않는다. 미국에서 생산된 지식을 빨리 받아들여 한국의 로컬 지식인들에게 판매하는 ‘지식수입상’의 역할만으로도 발언권을 충분히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선진적 이론을 적용해 성공한 미국 기업의 케이스는 얼마든지 이야기할 수 있지만, 한국 기업에서 그 이론이 적용되는 케이스는 연구한 적이 없다고 당당히 이야기하는 교수들이 한국에서 행세할 수 있는 배경이기도 하다. 저자는 해마다 많은 수의 유학생들이 한국 대학의 천민성과 억압에서 탈출할 수 있는 해방적 기능을 가지는 미국 대학을 경험하고 돌아와 교수가 됨에도 왜 한국 대학은 여전히 그대로인지 묻는다.

 

“한국 교수는 대접받는 게 좋아서, 그 맛에 교수를 하는 거거든요. 공부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교수를 하는 게 아니고”라는 한 인터뷰이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책을 읽을수록 “미국 대학의 글로벌 헤게모니가 한국 대학의 구조적, 조직적, 문화적 취약함으로 인해 더욱 공고“해지는 현실을 마주하게 되면서 의구심은 짙어진다. 미국 대학의 우수성을 자발적으로 동의하며 체화한 한국 지식인들, 심지어 학문에 냉담해지기까지 한 이 지식인들이 한국 대학과 학계의 천민성을 극복하고 자신의 모순을 스스로 극복할 수 있을까? 어려운 질문이다. 그래서인지 책의 결론은 ‘악마의 지혜와 의지의 낙관주의’, 그리고 꾸준한 학문에의 매진이 필요하다는 다소 진부한 결론으로 매듭지어진다. 그보다는 저자가 이 책의 목표로 밝힌 ‘상상력’에 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 대학의 글로벌 헤게모니에 대한 도전이라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을 ‘상상하게 만드는 것’. 이 상상조차 시도하지 않는다면, 태평양을 건너온 귤은 영원히 탱자로 남게 되지 않을까? 

 

 

정지은 / 문화평론가

2015.6.10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