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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교류협력, 더는 미룰 수 없다

박성철
박성철

박성철

통일은 두렵다. 말 한번 제대로 섞어보지 못한 어떤 이와 결혼을 해야 한다는 말처럼 난데없다. 섣불리 칭찬하거나 동조했다가는 하루아침에 죄인이 될 수도 있는 위험한 상대다. 어떻게 살림을 꾸릴 것인지 별 방편도 없다. 그런데도 결혼하자고 막무가내로 조르는 것처럼, 통일이 대박이라는 외침은 퍽 공허하다. 겉으로 드러내는 명분만 순진하게 믿고 경거망동해서는 안된다는 조언이 더 설득력 있다. 구호 뒤에 숨은 뜻을 짐작하고 분위기를 파악하는 눈치 보기를 끊임없이 강요하는 통일 의제가 두렵다.

 

결과인 통일 이전에 과정인 통합 필요

 

분명한 당면과제는 통합이다. 통일이 결과라면 통합은 과정이다. 통합을 생략한 채 통일만 되뇌는 모습은 과정을 무시하는 태도다. 중간과정을 업신여기고 결과만 숭상하는 나쁜 습관이다. 토끼가 그루터기에 부딪혀 죽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과정을 주도하지 못하고 결과가 하늘에서 떨어지기를 기다리며 허송세월을 하게 될 뿐이다.

 

통합방식은 6·15공동선언(2000)에 담겨 있다. 고려민주연방공화국을 창립해 단번에 주권을 이양하는 연방제 안을 고수했던 북한은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으로 태도를 바꿨다. 화해와 협력, 연합, 통일국가의 흐름으로 이어지는 우리의 연합제 안으로 궤를 같이해 수렴했다. 점진적으로 통합의 정도를 높여가는 방안이다.

 

오늘날 유럽연합(EU)이 1952년 석탄철강공동체(ECSC)부터 경제공동체(EEC), 유럽공동체(EC)로 한 계단씩 올라온 것처럼 교류와 협력을 촉진해 통합의 밀도를 더하는 방식이다. 유럽과 한반도를 같은 평면에서 견줄 수 없다고 해도 통합을 향한 정치력의 전범이 된다. 언어와 민족이 다르고 이질적인 역사배경 속에 전쟁을 벌이기도 했던 수많은 갈등요소를 지닌 유럽 국가들이지만 경제교류와 협력을 통한 번영을 위해 반대파를 설득하며 제도를 고안하고 수정하며 통합의 정치력을 발휘해왔다. 한민족으로 같은 언어를 쓰며 역사를 공유해온 남과 북이 통합의 길로 들어서지 못할 이유가 없다.

 

명분과 실리를 충족하는 남북경제협력

 

통합을 위한 경제협력은 가시적인 성과도 낸다. 북한지역 인프라 건설은 쌍방이 바로 경제적 이득을 얻고 장기적으로 사회간접자본이라는 물적 토대의 호환성을 높여 국토발전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대표적인 남북경협사업이 될 수 있다. 종래 경협사업이 순조롭게 추진되었으면 우리 기업이 수행했을 사업들을 최근 러시아가 도맡는다고 잇따라 발표했다.

 

뿌찐(Putin) 3기의 공세적 동방정책은 북한도 광범위하게 포괄한다. 러시아 하싼과 북한 나진을 연결하는 철도를 개보수한 경험을 바탕으로 합의하게 된 이른바 ‘빠베따(승리)’ 프로젝트는 북한 내 3500km에 이르는 철로와 터널, 교량 등을 개보수하고 약 250억 달러(약 26조원) 상당의 희토류와 같은 지하자원으로 댓가를 취하는 사업이다. 나아가 러시아 기업이 북한 나선특구에 전력을 공급하는 사업 타당성 조사에 들어갔고 이후 약 300억 달러(약 32조원) 규모의 북한지역 전력망 개보수와 송전 사업을 추진할 것이라는 외신보도가 나왔다. 최근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 건설과 토목 회사에도 돌파구가 될 수 있는 사업들이다.

 

북한도 경제난 타개를 위한 특구 중심의 개방정책을 취하면서 전과 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를테면 「나선경제무역지대법」에서는 외국의 투자기업 대표를 특구 자문위원회 성원으로 받아들였다. 생산과 판매 계획, 재정계획, 채용, 임금기준과 지불형식, 생산물 가격, 이윤 분배방안을 기업이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했다. 북한 외 다른 나라 인력을 채용하려면 나선시 인민위원회와 합의하도록 되어 있던 것을 인민위원회나 관리위원회에 통지하는 것만으로 가능하도록 개정한 점도 새로운 변화다.

 

두고만 볼 수 없는 5·24조치

 

통합을 위한 교류협력으로 가기 위해 첫번째로 넘어야 할 관문은 5·24조치다. 2010년 5월 24일 북한과의 교류를 중단하는 조치를 취한 지 5년이 되어간다. 포괄적 제재조치의 가치를 재평가하고 유지여부를 검토할 때가 되었다. 북한과 중국 또는 러시아 사이의 교역이 증가하면서 대북제재 효과는 보지 못하고 결국 우리 기업들만 15조원으로 추산되는 피해를 입었다는 지적이 있다.

 

5·24조치는 대통령이 행사할 수 있는 긴급명령으로 발령되지 않고 담화형식으로 발표되었다. 광범위하고 일반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직접적인 법적 근거를 찾기는 어렵다.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에 따라 통일부장관이 행사하는 북한 방문심사권, 남북교역과 협력사업 승인권 등을 행사하는 형태로 발현된다.

 

원칙적으로 교류를 금지하는 행정행위를 언제까지 적법하다고 볼 수 있을지 논란이 될 수 있다. 통일부장관의 심사와 승인권도 어디까지나 적법한 재량권 한계 내에서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남북정상회담을 하면서 주무장관의 승인을 받지 않은 대북송금행위를 처벌한 것처럼, 고도로 정치성을 띤 통치행위라고 해도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은 남북 간 교류와 협력을 촉진해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만일 법의 목적에 반하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공익에는 별로 기여하지 못하는 반면 경협기업들에 큰 피해만 준다면, 5·24조치에 터 잡은 행정처분의 적법성 토대는 점점 취약해질 것이다. 선결과제에 대한 담대한 접근이 필요하다.

 

 

박성철 / 변호사

2015.2.4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