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작가조직의 결성, 피 말리는 막후협상 / 정도상

정도상

정도상 | 소설가, 6·15민족문학인협회 집행위원

금강산은 어둠속에 잠겨 있었다. “남과 북의 작가들이 통일문학의 붓대를 함께 틀어쥐고 나아간다면 그 위력은 무궁무진할 것이며 ‘그 어떤 외세와 반통일세력들의 책동도 단호히 짓부셔버릴 수 있는 강력한 힘으로 될 것입니다'”라는 문장을 앞에 두고 어둠속에서 서성거렸다. 오후 다섯시부터 시작된 문건협상에서 나는 작은따옴표 안의 문구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나는 반통일세력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평화통일론과 민족공조를 주장하는 세력만을 통일세력이라고 부르는 것에 반대한다는 뜻을 북측에 전달했다. 흡수통일론이나 시장중심통일론을 주장하는 세력도 통일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통일세력에 포함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북은 내 말을 수용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남측 국민의 절반 정도는 짓부셔야 하는 대상이라는 뜻인데 결코 이 문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완강히 버텼다. 더구나 지금은 북의 핵실험 이후 분단체제의 괴물이 그 모습을 새롭게 드러낸 때였다.

돌이켜보면 이런 경우는 수없이 많았다. 너무나 다른 두 체제의 충돌이 바로 실무협상의 책상 위에서 헤아릴 수없이 반복되었다. 아주 사소한 단어 하나를 두고 무려 여덟시간이나 다툰 적도 있었다. 그 때문에 끝내 평론가 김재용과 나는 ‘악질’과 ‘반동’이라는 말까지 들어야 했다. 북측 성원이 농담삼아 건넨 말에 “빨갱이와 대화하기 정말 힘들구만”이라며 받아쳤다. 모두들 웃음을 터뜨렸다. 빨갱이와 악질반동이 만나 대화하면서 통이(通異)의 과정을 문화적으로나 인간적으로 겪어내는 순간이었다.

서로 다른 체제, 다른 이념, 다른 문학관을 갖고 남과 북의 작가들은 만났다. 남과 북의 차이는 높고 넓고 쓸쓸했다. 그 차이를 인정하지 않으면 대화는 불가능했다.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 다른 것들이 소통을 시작하는 것, 그것이 바로 통이의 첫 걸음이었다. 그러나 통이의 과정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언뜻 보면 사소한 차이에 불과한데도 2박 3일의 실무접촉 내내 그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다투기만 했던 적도 있었다. 때로는 분노에 차서 문을 박차고 나가기도 했으며, 때로는 허탈해져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돌아서고 싶기도 했었다. 고함을 지르며 책상을 치기도 했고 서로의 입장만 내세우다가 끝내는 붉어진 얼굴로 냉랭하게 돌아섰던 적도 있다. 하지만 남북의 문학인들은 이 모든 갈등의 과정을 힘겨워하면서도 회피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서로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고 고개를 저으면서도 과정의 어려움을 인내하고 슬기롭게 극복하고자 노력하는 것이 문학지성의 역할이라고 마음을 모았다. 그리하여 마침내 남북 작가들의 단일조직 결성을 눈앞에 두게 된 것이었다.

다음날 아침, 결성식과 문학의 밤을 연습하기 위해 남북의 작가들이 속속 금강산호텔 공연장으로 모여들었다. 나는 다시 북측의 보장요원(실무진행요원)과 마주 앉았다. 북측이 양보하여 작은따옴표 안의 문구를 삭제하든지 아니면 내가 수용하든지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여기서 합의가 안되면 남북공동연습은 물론이고 결성식마저 포기해야 하는 순간이 온 것이었다.

“이 문장을 삭제한다면, 결성식은 물론이고 앞으로의 단체활동에도 심각한 문제가 있을 거라는 우리 작가선생님들의 의견이 있었습니다. 이 문장은 삭제할 수 없습니다”라고 북측 성원이 강경하게 나왔다. 나도 핵실험 이후에 악화된 남측 여론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면서 삭제를 주장했다. 팽팽한 긴장 속에 두시간이 흘렀고, 연습을 위해 공연장에 모인 남북의 작가들은 서로 한마디 말도 나누지 않은 채 어색하게 앉아 있었다. 나는 수정안을 내기로 했다.

‘그 어떤 외세와 반통일세력들의 책동도 단호히 짓부셔버릴 수 있는’을 ‘그 어떤 외세의 압력도 극복하고 이 땅의 평화를 수호하는’으로 바꾸자는 수정안에 북측 성원은 안된다며 버텼다. 나도 더이상의 양보는 없다고, 이 문제로 결성식을 못하더라도 물러서지 않기로 마음을 굳혔다. 이어서 핵실험이 남측의 정부와 평화통일세력의 동력을 얼마나 무기력하게 만들고 있는지, 그 때문에 여기까지 오기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누누이 진심을 담아 설명했다.

설명이 끝나자 잠시만 기다리라고 한 뒤에 북측 성원이 자리를 떠났다. 홀로 앉아 창밖의 금강산을 보는데 그만 속절없이 쓸쓸해지고 말았다. 정말이지 인내는 언어가 아니라 행동임을 피부로 절감했다. 십분 뒤 북측 성원이 돌아왔다. 진심이 통했던 것인지, 북측 성원이 수정안을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이걸로 문건협상은 마무리되었고, 즉시 합동연습이 시작되었고 무사히 결성식을 마쳤다.

작가에게 제1의 조국은 어머니께 배운 언어다. 우리 민족의 언어공동체는 오천년 이상이나 지속돼왔지만 분단체제로 양극화된 것은 겨우 60여년에 불과하다. 기나긴 역사의 눈으로 보면 분단체제의 시기는 짧게만 느껴진다. 그렇다고 고통의 기억이 짧은 것은 결코 아니다. 작가들에게 있어 통일이란 미래의 문화적 고향으로 가는 과정이며 모국어공동체의 온전한 회복을 의미한다.

‘6·15민족문학인협회’의 결성은 그 과정으로 가는 아주 작은 디딤돌이 될 것이다. 많은 것을 한꺼번에 기대하진 않을 것이다. 더욱더 가파른 언덕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 많이 다투고 부닥치고 분노하고 증오하면서 끝내는 서로를 이해하려는 고통의 순간들을 겪어내야만 겨우 작은 언덕을 하나 넘을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렇게 통이의 길을 꾸준히 가다보면 어느새 통일은 우리 곁에 슬쩍 와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그것을 소망할 뿐이다.

2006.11.21 ⓒ 정도상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