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내곡동 사저의 ‘꺾기도’

김종엽

김종엽 / 한신대 교수, 사회학

 

사용자 삽입 이미지KBS 2TV <개그 콘서트> 가운데 ‘꺾기도’라는 코너가 있다. 그 코너의 주연 김준호에 의하면 꺾기도란 모든 상황을 뜬금없이 꺾어 상대방을 공황상태로 빠뜨리는 ‘무술’이다. 이를 테면 “안녕하십니까부리”나 “알겠습니다람쥐” 혹은 “잘했구나쁜놈”처럼 맥락과 아무 상관없거나 반대가 되는 말을 느닷없이 연결하는 것이다. 이런 꺾기도는 얼핏 보기는 매우 천진한 말장난들로 채워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렇기만 했다면 꺾기도는 몇회를 넘기지 못하고 통편집되어 사라졌을 것이다. 내 보기에 꺾기도가 호소력을 갖는 것은, 통치자의 언어가 소통이 아니라 당혹이나 경악을 실어나르는 세상을 멀고 희미한 형태로나마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헝가리 대통령 쇼욤 라슬로 접견 중 동석한 박근혜 의원에게 “나도 지난 대선 때 어느 괴한이 권총을 들고 집에까지 협박을 하러 와서 놀란 적이 있다”는 거짓말을 했다. 그는 지난해 9월 확대비서관 회의에서는 자신의 정권이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는 말을 늘어놓기도 했다. 명백한 거짓말, 그도 아니면 말하는 이가 말과 주체로서 관련을 맺지 않는 대통령의 “유체이탈화법”은 현 정권에서 후퇴한 것이 단지 민주주의가 아니라 언어의 타락이고 언어 속에 기거하는 사유의 뒤틀림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이명박 대통령의 어법, 강력한 ‘꺾기도’

 

이번주 월요일 내곡동 사건 수사 보도를 읽기까지는 이명박 대통령의 말에 의해 공황상태에까지 빠지진 않았다. 보도에 따르면 이명박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땅 매입과정에서 국고 손실을 야기한 것으로 고발된 이 대통령 아들 이시형씨에 대한 검찰 수사와 관련해 청와대가 “사저가 들어서면 주변에 개발이익이 있을 텐데, 국가가 혼자 그 혜택을 다 받는 게 적절치 않다고 생각했다”(한겨레신문 2012년 6월 11일)고 진술했다는 것이다. 화자가 청와대라고 되어 있을 뿐 정확히 누구인지 밝히고 있지 않지만, 대통령의 아들이 연루된 사건인 만큼 이 발언의 뿌리가 대통령에 있다고 추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보면 그 말의 저간에 있는 대통령의 사유는 상황을 뜬금없이 꺾어 상대방을 공황상태에 빠뜨리는 꺾기도에 다름아니다.

 

대통령이 퇴임 후 사저를 내곡동에 마련하려 하는데, 내놓고 땅을 보러 다닐 경우 땅값이 오를까봐 아들 시형씨가 자기 명의로 땅을 사러 다녔단다. 효성이 지극해 빚까지 내서 저보다 한참 부자인 부모의 집을 마련하려 했다는 아들을 둔 대통령의 자식복이 의심스럽긴 하지만 그것은 그냥 넘어가주자. 놀라운 것은 그렇게 마련한 사저 주변에 경호처가 함께 사들이는 경호동 터는 지목이 모두 ‘밭’인데, 앞으로 사저가 들어서면 지목 변경과 개발효과로 땅값이 오를 것이기 때문에 그 ‘미래 이익’의 일부를 시형씨에게 떼어주려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시형씨가 국고를 이용해 헐값으로 땅을 산 것으로 오인되었다는 주장이다.

 

이런 청와대의 변명 혹은 거기에 깃든 대통령의 생각의 요점은 자신이 했던 어떤 선택의 결과로 인해 국가가 이익을 보았다면, 국가만 이익을 보아서는 안되고 자신도 그 이익을 나눠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신선하고 기이하고 위험한 발상법이다. 왜 그런지 따져보자.

만일 이명박씨가 대통령이 아니었다면, 그가 퇴임해서 어디에 살든 거기에 경호동이 들어설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경호동 땅값이 오를 일도 없다. 따라서 그가 특정한 곳을 사저 터로 선택함으로써 국유 재산이 증대되었다고 해도 그것은 국가가 그렇게 하고 싶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국가는 법에 의거해 그를 경호하려 하는 것이지 그것을 통해 국유재산이 늘고 주는 것 모두에 무관심하다.

 

갈수록 기이해지는 ‘대통령’과 ‘국가’의 관계

 

결국 문제는 그가 대통령이라는 사실에 있다. 그리고 대통령은 국가와 관련해 특수한 지위에 있다. 대통령은 하나의 조직체로서 국가를 운영하는 자이며, 국가를 총괄적으로 재현한다. 그래서 대통령만이 유일하게 직위를 수임할 때 해야 할 선서를 헌법 조항(제69조)으로 규정하고 있다. 시민 가운데 국가와 자신을 가장 가깝게 동일시할 수 있는 자는 대통령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검찰이 전한 청와대의 말은 당혹스럽게도 그런 대통령이 국가를 마치 사업 파트너 혹은 협상 대상으로 간주하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불편한 마음으로 이 특이한 사고방식을 따라가줄 때도 의문이 든다. 대통령의 활동과 선택으로 인한 이득을 대통령이 국가와 나누어야 한다면, 왜 고작 내곡동이었을까? G20 정상회담 당시 청와대 대변인은 행사의 경제 효과가 수십조에 달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명박 대통령은 국가로부터 수조원을 청구했어야 하지 않을까? 왜냐하면 수십조의 경제적 이익 가운데 세수로 국가에 흡수될 수 있는 몫이 수조원이 될 것이고 그렇다면 그것의 일부를 대통령이 가져야 하는 것 아닌가?

 

반론이 있을 것 같다. 대통령은 좀더 논리적이다.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는 G20은 대통령의 단독 행동이 아니라 방대한 공무원과 함께한 일이니 그것을 대통령만 배분받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다른 의문이 생긴다. 대통령이 그렇다면 모든 공무원이 자신의 공무 수행으로 발생한 이익을 분배받을 권리가 있는 것 아닌가? 그러니 G20이 가져다줄 수도 있는 막연한 미래의 경제효과를 빌미로 재작년 말에 대통령과 공무원들 모두가 보너스 잔치를 해야 했던 것 아닌가? 하지만 아마 우리는 이런 세계를 끔찍한 악몽으로 여길 것이다.

 

이런 의문도 든다. 우리의 대통령이 “국가만 이익을 볼 수 없다”고 생각했다면, 마찬가지로 “국가만 손해를 보게 할 수 없다”는 생각도 했는가 하는 것이다. 대통령은 며칠 전 한반도가 바짝 타들어가는 가뭄 가운데 라디오에 나와 홍수가 예방되었다는 ‘꺾기도’를 선보이기도 했는데, 만일 올해 4대강 사업으로 인해 수해가 발생해 국가가 보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면, 사재를 털어서라도 국고 손실을 보전할 생각인지 말이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이익이든 손실이든 그것을 분배받겠다는 생각 자체가 범죄적이다. 민주적인 현대국가는 국민에 의해 선출된 사람들이 국민의 이익를 위해 봉사하는 것을 정당성의 기초로 삼는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의 모든 자산은 국민들이 공동으로 형성한 공동의 자산이다. 그러므로 국가와 이익을 나눠먹겠다고 덤비는 것은 국민들의 공유 자산을 침탈하는 것이고, 국익을 추구하라고 뽑아놓았더니 국익을 잠식하는 짓거리일 뿐이다.

 

공적 언어가 타락한 시대

 

그런데도 검찰은 그런 청와대의 ‘해명’을 받아들여 이시형씨를 무혐의 처리했다. 확실히 대통령의 꺾기도에 검찰이 제대로 공황상태에 빠진 것 같긴 한데, 그것이 대통령이 탁월하게 꺾어서인지, 검찰이 아둔해서 꺾인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한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 고위 공직자들이 국가 정책을 왜곡하여 공적 자산을 사유화하는 것이 지배와 거대한 부의 어두운 원천인 경우가 많지만, 그것을 감추고자 했고 공적 대의로 포장하려 한 것이 상례였다. 그리고 그것이 드러날 경우 수치심을 보였다. 그리고 바로 이런 점 때문에 공적 자산을 침탈하려는 시도가 어느정도 제어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의 대통령은 공적 자산을 침탈하려는 의도를 어리둥절할 정도로 분명하게 드러냈다. 그리고 그만큼 우리의 공적 언어의 세계는 더 타락해버린 것이다. 숨어서 행할지언정 말할 수 없다고 생각되었던 것들이 후안무치하게 말해지고 있는 것, 그것이 이명박 시대인 것이다.

 

2012.6.13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