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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상영관에서의 한때

황병승

황병승 | 시인

80년대초, 가장 기억에 남는 호러무비와 에로무비를 각각 한편씩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서슴없이 〈헬나이트〉와 〈애마부인〉을 꼽을 것이다. 덧붙여, 나는 그 두편의 영화를 동시상영관에서 한꺼번에, 그리고 반복해서 여러번 봤다고, 우쭐해하며 말할지도 모른다.

열두살,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일이다. 잊혀지지도 않는다.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는가. 호주머니에 오백원을 달랑 넣고, 동네 형들을 따라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가서 보았던 〈헬나이트〉와 〈애마부인〉은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접했던 극장판 영화들이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도시개발 전의 상계동시장 한구석에 ‘OO극장’이라는 동시상영관이 있었다. 늘 사람들로 붐비고, 영화 상영 내내 잡담이 끊이질 않고, 담배연기와 골 때리는 냄새로 가득했던…….

그날(처음 영화를 보던 날)도 100석 안팎의 극장은 사람들로 꽉 들어찼고, 우리는 스크린 바로 앞에 신문지를 깔고 앉아 경이로운 첫경험을 했다. 코앞에서 펼쳐지는 살육과 에로의 전율 속에서 새로운 세계와 정면으로 맞부딪친, 그러니까 얼얼해진 열두살들이었다.

그뒤로 오락실, 안 갔다. 콩알만한 비행기들과 싸우는 일에 우리는 더이상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본격적으로 동시상영관 순례에 나섰다. 그때는 ‘연소자 관람불가’라는 말은 그저 폼으로 극장 앞에 붙어 있을 뿐, 표만 내밀면 늙은 검표원들은 무조건 오케이, 무사통과였다. 당시 영세한 동시상영관들의 현실이었고, 늙은 검표원들은 어쩌면, ‘언제가 다 알게 될 것들을 미리 본다고 해서 너희들이 더 나빠지겠니?’ 같은 열린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중학생이 되어, OO극장의 헬나이트와 애마부인 체험생들은 다시 만났고, 업그레이드된 동시상영관을 찾아나섰다. 지금도 기억나는 곳은, 학교에서 버스를 타고 삼십분 거리에 있는 XX극장이었다. OO극장 보다 세배 정도 큰 규모에 2층 객석도 있었는데, 손님이 거의 없는 평일의 2층에는 주로 노는 형 누나들의 아지트였고, 영화가 시작되면 쩝쩝거리며 스킨십하는 소리를 내거나 본드 냄새를 풍겼다. 그리고 1층에는 수상해 보이는 아줌마 아저씨들(?)과 화장실 앞에서 서성거리던, 독특한 옷차림의 동성애자들이 주관객층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당당하게 밝은 곳으로 나가지 못하거나 혹은 나가기 싫은 사람들이 그곳의 구성원인, 평일의 동시상영관은 그것대로 하나의 작은 사회, 언더그라운드를 형성한 셈이다. 어른도 아이도 아니었던 우리는 그때 막 성에 눈을 뜨는 시기였고, 동시상영관에서 그 폭발할 듯한 에너지들을 발산하며 작은 사회를, 언더정신을 배웠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OO극장과 XX극장 그리고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몇몇 변두리 극장들을 오가며 참 많은 영화들을 봤다. 대부분이 에로영화였지만, 그중에서도 기억나는 것은 〈만추〉와 〈그로잉업〉이다. 〈만추〉는 탤런트 김혜자의 격렬한 정사씬 때문에, 〈그로잉업〉은 당시의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청소년들의 성과 사랑에 대한 얘기를 다루고 있었고, 첫 쎅스,에 대해 구체적으로 고민하게 만들어준 영화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좋아하는 여자에게 결국 배신당하는, 한 못생긴 녀석에 관한 슬픈 영화……라는 생각이 압도적이지만.

아무려나, 우리는 주말이 되면 극장에 죽치고 앉아, 또래의 여자애들이 어둠속으로 등장하기를 기다리며, 봤던 영화를 보고 또 봤다. 그리고 어느날, 중학교 졸업을 앞둔 주말 오후, 세명의 여자들과 합석을 하게 되었다. 친구인 K와 한동네에 사는 여자애들이었다. 우리는 각자 마음에 드는 여자애와 나란히 앉아 영화를 봤는데, 어떤 영화였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영화가 눈에 들어올 턱이 없었다. 온통, 곁에 앉은 여자애에게 정신이 팔려 있었으니까. 굳이 기억을 더듬어보자면, 아마도 대만배우 홍금보 주연의 영화였거나, 호화 출연진들이 대거 출연했던 카레이스 영화 〈캐논볼〉이었거나, 그랬을 것이다.

한편의 영화가 끝나고, 두번째 영화가 시작되는 내내, 나와 친구 S는 순진하게도 식은땀을 흘리며 잔뜩 긴장해 있었는데, K는 달랐다. 옆자리에 앉은 여자애의 가슴을 용감하게 만지고 있었던 것이다. 와아…… 우리는 K가 미치도록 부러웠고, 마지막 영화가 끝나는 긴긴 시간 동안, 구멍 속의 생쥐들처럼 오락가락 들락날락, 속으로 자학하고 또 자학했던 기억이 난다.

결국 우리는 극장이 문을 닫는 시간까지 지긋지긋한 홍금보인지, 캐논볼인지를 보다가 나왔다. 그리고 마땅히 갈 곳이 없었던 우리, 대책없는 중딩들은 한참동안 노상토론을 벌인 끝에 극장 근처의 예배당에서 밤을 지새우기로 합의했다. 오, 지저스! 결국 예배당이라니…… 지금 생각해도 찔끔 눈물이 난다. 요즘 같으면, 밤새 영업하는 비디오방이며 PC방, 노래방에라도 갈 수 있겠지만, 그때는 정말 예배당밖에는 갈 곳이 없었던 걸까?! 아마도 우리가 좀 모자란 녀석들이었겠지.

그러나 밤을 지새운다고 해서 저절로 사건이 터지는 건 아니었다. 나와 S는 극장에서처럼 예배당 나무 의자에 얌전히 앉아, K의 화려한 리싸이틀을 밤새 지켜봐야만 했다. 어느새 날이 밝았고, 나의 파트너였던 여자애는, “오빤 참 좋은 사람 같아……” 남의 속도 모르고, 그애는 나를 순식간에 ‘베리 젠틀 굿맨’으로 만들어버리고, 지금까지도 씻지 못할 상처의 말이 되어버린 마지막 멘트를 남긴 채, 새벽의 예배당을 총총히 떠나갔다.

그렇게 동시상영관에서의 마지막 에피소드를 끝으로, 우리는 각자 뿔뿔이 흩어져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용돈을 모아 비디오를 장만했고, 여자친구도 생겼다. 그러나 그때나(고교시절), 지금이나 동시상영관에 대한 향수는 여전하다. 골 때리는 냄새와 텁텁한 실내공기, 비 내리는 스크린, 툭하면 끊어지는 화면과 늙은 검표원들. 동시상영관이 주는 으스스한 뉘앙스를 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 시절, 아마도 우리에게 있어 동시상영관은 좋게든 혹은 나쁘게든 어른으로 데뷔하는 하나의 방식 혹은 입구 역할을 했는지도 모른다. K는 일찍 결혼해서 애아빠가 되었고, 잡지사에 다니고 있다. 그리고 S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아버지가 운영하는 작은 사업체를 물려받았다. 그렇게 지금은 다들 저마다의 길을 가고 있지만 가족들과 혹은 애인, 동료들과 영화를 보며 한번쯤 환한 미소와 함께 동시상영관에서의 그리운 한때를 떠올릴 것이다.

2006.08.22 ⓒ 황병승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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