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뜸부기 같은 작가 김하경의 세상 이야기

임규찬

임규찬 | 문학평론가, 성공회대 교수

우리에게 예술적으로 가장 친숙한 새는 아마도 종달새일 것이다. 반 고흐가 그린 <종달새 나는 밀밭>, 하이든의 현악사중주 <종달새>, 셸리의 시 <종달새에게>, 정지용의 시 <종달새>, 동요 <종달새의 하루> 등등. 실제로 셸리는 종달새를 ‘시를 쓰는 시인’에 비유하기도 했다. 그것은 “더욱 높이 더 높이 / 땅에서 그대는 솟아올라 / 마치 불꽃 튀는 구름 같아라 / 푸른 하늘을 그대는 날며 / 노래하고 계속 올라가고 또 올라가며 / 끝없이 노래하도다” 같은, 수직으로 날아오른 뒤 날개를 심하게 퍼덕여서 한곳에 정지해 지저귀다가 내려앉는 종달새의 행동에서 연유한다. 그래서 우리는 하늘 높이 날아올라 그 우짖는 소리가 널리 땅에 울려퍼지는 종달새의 마력을 흔히 시인과 예술가의 대표적 상징으로 간주한다.

그런데 종달새와는 매우 대조적인 새로 뜸부기가 있다. 그 소리는 논두렁이나 산모롱이의 그늘 같은 가장 낮은 땅에서 울려나온다. 해가 서녘 땅속으로 가라앉듯이, 뜸부기는 으스름한 저녁 속으로 침몰하고 잠입하여 가장 먼저 밤을 울어 소란스런 지상의 어둠을 예고하고 또 어둠을 깨운다. 그런데 뜸부기는 종달새와 달리 아주 낮은 곳에서 울기 때문에 우리가 잘 볼 수 없다. 몸 색깔이 검갈색이라 눈에 잘 띌 것 같지만 위급한 상황이 아니면 절대 제자리를 떠나 날거나 뛰지 않아서 좀체 발견하기 어렵다.

김하경이란 늦깎이 소설가의 소설집 《속된 인생》(삶이 보이는 창 2006)을 마주하고 보니 그런 뜸부기가 문득 생각났다. 1945년생. 국어교사, 방송작가 등을 거쳐 43세 늦깎이로 등단. 이후 빈민운동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인 글쓰기에 전념. 전태일문학상 수상작인 《그해 여름》을 쓰기 위해 마산 ·창원 지역을 넘나들다가 삶의 터전을 마산으로 옮긴 후 지금까지 한결같이 그곳에서 노동자와 노동운동만을 화두처럼 끌어안고 글쓰기를 해온 여성작가. 그런데 환갑을 넘긴 나이에서야 뒤늦게 ‘정식’ 소설집을 처음으로 간행했다. 굳이 ‘정식’이란 말을 붙인 것은 이미 장편 《그해 여름》 《눈뜨는 사람》과 꽁뜨집 《숭어의 꿈》을 발간한 바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교육평론집 《여교사 일기》, 르뽀집 《내 사랑 마창노련》 등을 생각하면 이 작가가 통상적인 작가 유형이 아님을 쉽사리 알 것이다.

《속된 인생》에 수록된 작품들도 1989년 작부터 시작하여 대략 10년간에 걸쳐 발표된 것들이고, 또 가장 최근작이라고 해도 1997년 발표니 모든 것이 늦깎이다. 그런데 그런 늦깎이가 오히려 시간을 너끈하게 이겨낸다. 80년대에 대한 향수를 들추어내서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반성과 성찰을 강요하는 듯 여겨지는 ‘후일담문학’의 과거화 경향과는 완연히 다르다. 오히려 과거 이야기가 지금 이야기로 생생하게 파고든다.

철거, 노동조합, 빨치산 같은 소재들은 구닥다리일지도 모르나, 소설 속에 나오는 숨이 막힐 듯한 상황이나 고민은 지금도 여전한 삶의 문제다. 또한 “한번 자유와 평등의 맛을 본 사람은 절대 그 맛을 잊을 수가 없다” “운동을 하면 할수록 인간관계나 이해의 폭이 넓어지는 게 아니라 좁아지는 것 같았다. 조급해지고, 각박해져갔다” “자기가 강물 속에 몸을 던진 건 순정 때문이 아니라 사랑할 가치가 없는 여인을 사랑한 자기 자신에게 벌을 주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목숨과 바꾸려고 했다는 이유만으로 순수한 의미의 사랑이라고 볼 수 없다는 뜻이다” 등 작가는 무엇이 옳고 그르냐에 대해서 직설적으로 이야기하기보다 변화하는 ‘속된 세상’에서 과연 무엇을 간직하며 살아야 할지를 날카롭게 반문한다.

또한 작가는 이미 《숭어의 꿈》(갈무리 2003)을 통해 비정규직, 정규직, 생산직, 사무직 등 다양한 노동자들의 삶을 풍요롭게 보여준 바 있다. 사실 작가가 그린 세계가 진짜 ‘한때’의 일이었다면 그 매력은 금세 없어지고 말 것이다. 작가는 “그럼에도 이 책에는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지 않는다. 현장의 시계는 멈춘 지 오래다. 달라진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똑같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더더욱 인간에 대한 깊은 신뢰, 무엇보다 일상에서 길어올린 삶의 활력을 중시한다. “원래 뛰는 고기는 미끼를 물지 않는 법이다. 알긋나?”에서 보듯이 연안에 서식하다가 강 하구나 민물까지 들어와 숨죽이고 있지만 이따금 수면 위로 펄쩍 도약하는 숭어의 몸짓, 그런 ‘빛나는 삶의 한순간’들이 펼치는 사람의 힘과 꿈을 굳건히 이야기한다.

작가는 평범한 것들의 약동과 솟구침이 아니라면 삶이란 아무 의미가 없다고까지 말한다. 그런 활력 탓에 우리는 각자 ‘미끼를 물지 않는’ ‘뛰는’ 숭어가 되어 무관심과 ‘슬픔, 분노, 절규’ 또는 죽음조차 넘어설 수 있다는 것이다. “노동현장 얘기만 나오면 사람들이 얼굴을 찡그린다. 표정이 굳어진다. (중략) 나도 그랬다. 살림살이가 스산한 철거현장을 찾아가기 전에도 그랬고, 구사대에게 두들겨 맞은 조합원들을 방문하기 전에도, 열사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전에도 그랬다. 솔직히 피하고 싶었다. 도망치고 싶었다. 그런데 참 묘하다. 막상 현장을 찾아가보면 당황스럽기 짝이 없다. 참담한 비극이라고 믿어지지 않는다. 붕대 감은 손으로 여전히 먹고 마신다. 다리를 절룩이며 웃고 떠들고 농담까지 나눈다. 슬픔, 분노, 절규만이 가득 차 있을 거라던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가는 순간이다.” 필자의 눈이 가장 오랫동안 머물렀던 대목이다.

2006.07.04 ⓒ 임규찬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