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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리 바텔스 『불평등 민주주의』

전병유

불평등과 민주주의, 그리고 한국정치
– 래리 M. 바텔스 『불평등 민주주의』

 

 

wqdd합리적 인간들로 구성된 민주주의사회에서 경제적 불평등은 정치적 평등으로 시정된다고 한다. 중위투표자(median voter)이론에 따르면 다수결제도에서 투표결과는 중위투표자의 선호에 따라 결정된다. 불평등이 심화하면 중위소득은 평균소득 이하가 될 것이고, 소득의 불평등한 분포를 시정하는 정책을 선호하는 계층이 과반수를 넘게 된다. 따라서 인간이 합리적이고 1인 1표제의 민주주의가 관철되는 사회라면, 경제적 불평등은 정치적 평등으로 시정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지난 18대 대선에서 서민층은 자신의 경제적 이익에 반하는 투표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선거 후 유권자 조사에 따르면, 이른바 ‘계급배반투표’가 이전 선거와 달리 매우 뚜렷하게 나타났다. 빈곤층, 영세자영업자, 노인세대의 문재인 후보 지지율은 중산층의 지지율에 훨씬 미치지 못했다. 평등을 상대적으로 더 강조하는, 민주와 진보를 자처하는 정치세력에는 매우 곤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계급배반’은 왜 일어나는가

 

북한 관련 이데올로기나 지역감정, 진보의 태도나 습속(이른바 ‘싸가지 없음’)이 서민층의 계급배반투표 원인으로 거론되었다. 우리나라와는 주어진 조건과 맥락이 다르긴 하지만 미국에서도 계급배반투표 현상이 나타났다. 토머스 프랭크의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 조너선 하이트의 『바른 마음』, 그리고 강준만의 『싸가지 없는 진보』 등은 출간된 시기와 대상이 되는 장소는 다르지만 같은 맥락에서 읽힐 수 있는 저술들이다. 계급배반투표와 진보의 정치적 패배에 대해 토머스 프랭크는 전통적 가치와 도덕을 옹호하는 남부 백인노동계층의 문제로 보았고, 조너선 하이트는 이성보다는 직관과 도덕, 가치 우위의 문제로, 강준만은 진보가 가지는 도덕적 과잉 우월의 태도 문제로 보았다.

 

현재 한국정치에서 ‘민주진보’세력은 정체성의 혼란 속에 끝 모를 바닥을 헤매고 있다. 민주진보진영의 지지도가 이렇게 바닥에 머무는 이유는 항상 선거에서 진다는 데 있다고 한다. 순환론이겠지만, 이 진영이 국민 다수의 지지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수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원인을 입체적으로 분석하고 이해하고 공유하는 것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풍부한 데이터에 기반한 흥미로운 정치학 저서

 

이 시점에서 필자는 예전에 논문을 쓰기 위해 급하게 읽었던 레리 바텔스(Larry M. Bartels)의 『불평등 민주주의』(Unequal Democracy: The Political Economy of the New Gilded Age, 2008, 한국어판 위선주 옮김, 21세기북스 2012)를 다시 한번 펼쳐보았다. 이 책은 미국 민주주의의 위기에 공감하는 미국 정치학계의 우려와 관심 속에서 만들어진 연구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다. 정치 분석도 객관적인 데이터에 근거해서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앞에서 거론한 책들과는 차별성을 가진다. 바텔스 스스로 정치·경제적 요소의 상호영향을 체계적으로 측정하려고 노력한 ‘선구자적인’ 시도였다고 자평할 정도다. 경제적 불평등에서 시작해서 선거와 정치, 그리고 정책의 상호연관성을 객관적인 데이터와 정책 사례를 가지고 분석하는 이 책은 정치평론가들의 화려한 입담이나 술자리에서의 토론에만 익숙한 우리에게 매우 흥미롭게 읽히는 정치학 저서다. 제기된 문제들이 하나같이 우리의 현실에서 반추해볼 만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바텔스는 ‘미국에서 정치는 불평등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 ‘선거와 정당 지지에서 문화적 가치(도덕)와 경제적 가치(불평등)의 영향은 어떻게 나타나는가’ ‘경제적 불평등 심화에도 보수정당의 선거승리 원인은 무엇인가’ ‘상속세, 감세, 최저임금 동결 등 부자 중심 정책에 빈곤층은 어떻게 반응하였는가’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그는 수십년에 걸친 미국의 선거 및 유권자 조사 데이터를 활용하여 경제적 불평등과 정치적 민주주의 사이의 관계를 분석한다. 그것을 통해 민주당 집권 시절에 경제성장률도 높았고 불평등도 완화되었다는 점, 그럼에도 공화당이 더 많은 선거에서 승리했다는 점, 그 이유는 문화와 가치(도덕)보다는 정치에 있다는 점, 즉 저소득층(백인 노동자계층)이 문화적 가치 이슈 때문에 공화당 진영으로 옮겨간 것이 아니라 공화당이 (결과적으로) 자신의 이념을 관철하는 데 성공한 정치를 구사했다는 점, 서민들이 자신의 가치 및 이익을 구체적인 정책에 연결짓는 데 커다란 어려움을 가진다는 점, 이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소수의 과두정치라는 점, 결국 미국 민주주의에 결함이 있다는 점 등이 설명된다.

 

다시 우리의 현실로 돌아와보자. 우리나라에서 왜 서민층이 보수적인 정치적 선택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완벽하게 분석되지 못하고 있다. 현상적으로 저소득층이나 사회적 지위가 낮은 계층이 보수정당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 최근 들어 강화된 것은 사실로 나타난다. 북한에 대해서도 보수적인 성향이 강화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는 연령·세대의 문제와 착종되어 있다. 고령자일수록 소득 기준으로 빈곤층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순히 서민층이 계급배반투표를 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종합사회조사나 유권자 조사를 분석해보면 서민층의 정치로부터의 이탈 현상도 통계적으로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서민층이 자신의 사회경제적 요구를 반영할 수 있는 정치세력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민주정부 10년 동안 통계로 계산되는 불평등지수는 악화되었고 성장률은 한단계 낮아졌다. 물론 저성장과 불평등은 대내외적인 객관적 조건의 변화에서 기인하는 측면도 있기 때문에 억울할 수도 있다. 그러나 결과론적으로 실패한 것은 맞다. 서민들의 생활문제 해결에 이념적으로 접근하는 데 그치고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한 무능을 보여준 것에 대해 솔직하게 인정할 필요가 있다.

 

우리 정치지형에 던지는 메시지

 

결국 문제는 정치다. 바텔스의 결론도 미국정치의 결함으로 모아진다. 대중이 경제적 불평등의 ‘정치적’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는데 이는 미국의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결과라는 것이다. 노동계층이 자신의 경제상황과 정책선호를 일치시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정치와 정치인의 역할이다. 우리나라의 민주진보세력도 ‘민주주의가 밥 먹여 준다는 것’을 성과와 능력으로 증명함으로써 자신들로부터, 그리고 정치로부터 떠나가려는 서민들의 발길을 되돌려놓아야 한다. 가치와 태도의 문제도 이와 무관하지는 않다. 서민들의 일상적 삶의 고단함에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얼마나 공감했는지에 대한 성찰과 반성이 필요하다. 민주진보세력의 재구성은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앞에서 지적했듯이 『불평등 민주주의』는 정치에 대한 계량분석의 모범을 보여준다. 물론 더 복잡하고 정치(精緻)한 계량모델을 사용한 정치학 논문들도 많지만, 바텔스는 대중이 이해하기 쉬운 방식으로 자료를 모으고 자신이 제기한 문제와 가설에 대해 설득력 있는 객관적 근거를 제시하는 데 있어서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다. 데이터 분석으로 정치를 설명하는 데에는 한계가 분명히 존재하긴 하지만, 한국정치에서도 이렇듯 철저한 데이터에 기초한 연구가 결합될 필요가 있다. 동일한 사안에 대해서 서로 다른 주장을 하는 계파 간의 갈등은 치열한 토론과 논쟁의 과정에서 해소되어야 하는 것이나, 한정된 시간과 정보 내에서 사고하는 제한된 합리성만을 가진 인간에게 객관적인 데이터와 통계는 때로 중요한 판단근거이자 의사결정의 지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병유 / 한신대 교수, 경제학

2014.10.8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