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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에서 돌아오지 않는 편지

오수연

오수연 | 소설가

그는 콜라만 마셨고 닭튀김은 손도 안 댔다. 한국에서는 가축을 죽이기 전에 이슬람 의식을 치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어떤 육류도 입에 대지 않았다. 이라크에서 만났을 때보다 더욱 경건해진 듯했다. 2003년 ‘한국 이라크 반전평화팀’의 현지 파트너였던 그는 무척 어렵게 비자를 받아 우리나라에 잠시 다니러 왔다. “바그다드 시민들은 요즘 행복해. 열시간에 한시간씩만 들어오던 전기가 요즘은 일곱시간마다 들어오거든. 그 한시간도 십분마다 이삼분씩 끊기지만. 수돗물이 언제 나올지는 기약이 없지. 미국이 3년 동안 이라크에서 한 일이 이거야. 우리가 어떻게 사느냐고? 살아야 하니까.”

그의 친척 몇명은 팔루자에서 죽었고, 처갓집 식구 한명은 아부 그레이브 근처에서 미군 탱크에 받쳐 죽었고, 친구 둘은 바그다드의 알 후리야라는 그의 동네에서 괴한들의 총에 맞아 죽었고, 또 한명은 시내 한복판에서 칼에 찔려 죽었다. 나는 그가 죽지 않고 살아남아 한국인 친구들을 만나러 와줘서 고맙고, 또 너무나 미안했다. 평생 술 한방울 마셔본 적 없다는 그에게, 내가 취해도 미쳤다고 생각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너그럽게 웃으면서, 자기가 한국까지 와서 술을 안 마신다고 미쳤다고 생각하지 말아달라고 반대로 부탁했다. 창밖에서 조용히 비가 내렸다.

“왜냐고? 그들에게는 주기적으로 전쟁이 필요해. 발작 같은 거지. 우리는 그들이 전쟁을 일으키면 아, 또 때가 됐나보다 해.” 역시 무척 어렵게 우리나라에 잠시 와 있는 한 팔레스타인 시인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과 레바논을 침공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별로 경건하지 않은 그와 나는 포장마차에서 많이 마시고 술김에 대판 싸우기까지 했다. 나는 폭우 속으로 뛰쳐나와 집에 와버렸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술이 깨고 나니 물론 그에게 미안했고, 자기 혼자 내버려두라고 홍알거리며 간이의자에 앉아 있던 그의 뒷모습을 떠올리고는 슬퍼졌다. 그는 80년대 후반 1차 인티파다(팔레스타인 민중봉기) 당시 십대였던 이른바 ‘장미의 세대’다. 수두룩하게 죽어나간 친구들을 위해 한사람마다 한편씩 연작시를 쓰고 있는데, 아마 평생 써야 할 거라고 했다. 지금도 계속 친구와 친지들이 감옥과 길바닥에서 죽어가고 있으므로.

나는 올초에 ‘인사미술공간’이 마련한 ‘시제일치’라는 영화제에서 레바논 영화를 몇편 보았다. 그중 다큐멘터리 〈내전〉(모함마드 수에이드 감독)은 전쟁의 후유증에 관한 것이었다. 한 사나이가 전쟁이 다시 터질 거라는 강박증에 걸려 점점 얼굴이 어두워지고 담배만 피워대더니, 전쟁 때 폭격당해 버려져 있는 건물에 들어가 계단을 하염없이 걸어올라가다가 심장마비로 죽는다. 주변인물들은 그에 관한 추억을 회고하다가도 결국은 자신이 겪은 전쟁 이야기를 한다. 모든 이야기가 전쟁으로 수렴되고, 죽은 사람만큼은 아니더라도 모두가 전쟁의 후유증을 앓는다.

우리가 ‘레바논 내전’이라고 알고 있는 1982년 전쟁은 실은 이스라엘, 미국이 개입하고 이웃 아랍국들이 연루된 국제전이었다. 이스라엘에서 특별훈련을 받고 온 기독교 민병대가 팔레스타인 난민촌에 쳐들어가 사흘간 1~3천명(언제나 무더기로 학살당한 피해자들의 숫자는 부정확하다)을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죽이기도 했다. 이제 다시 전쟁이 터졌으니 영화 속 죽은 남자가 사로잡혔던, 전쟁이 다시 터질 거라는 강박관념은 병이 아니라 현실인식이었던 셈이다.

많은 정세 분석가들이 이번 레바논 전쟁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중동 판짜기’의 예정된 수순일 뿐이라고 말한다. 팔레스타인,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그리고 레바논. 그러나 판짜기란 자기가 판을 짜거나 구경하는 입장에서 하는 말이다. 새로 짜여지는 그 판 속에 들어 있는 당사자들로서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요동치는 재앙이 아닐 수 없다. 팔레스타인 도시들은 어디나, 어느 거리나 반쯤 무너져 있다. 아프가니스탄은 말할 것도 없고, 이라크도 2003년 공식 종전 이후 점점 더 망가져간다고 한다. 이제 베이루트마저 가자지구, 카불, 바그다드와 흡사하게 되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성공한다면 시리아의 다마스쿠스와 이란의 테헤란도 그렇게 될 것이다. 판짜기의 실제 내용은 파괴와 학살이다. 인간에 대한 믿음이 가장 강한 사람들이 미국인들과 이스라엘인들인 듯싶다. 자기들이 그런 짓을 해도 아랍인들은 견딜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러나 실망스럽게도 그렇지 않다. 인간은 그렇게 강하지 않다. 내가 아는 그 사람들은 비록 살아남았으며 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을지언정, 너무도 힘들고 고통스럽게 보였다.

이제 장마가 끝나면 본격적인 휴가철이다. 우리에게 시간은 이렇게 착착 흘러간다. 그러나 며칠 전 바그다드로 돌아간 내 친구는 어떨까. 그가 말하기를 바그다드에서는 매순간 삶과 죽음이 오락가락한다고 했다. 나는 그가 그 모든 순간마다 공포와 분노의 영원한 지속을 느낄까봐 겁난다. 똑바로 앉아 감자튀김만 집어먹던 그를 생각하면, 순간 미쳐버릴 것 같다. 석달 뒤면 제 나라로 돌아갈 팔레스타인 시인은 연작시를 쓰는 틈틈이 우산 없이 장맛비를 맞으며 걸어다녔다고 했다. 한국의 정상적인 삶의 리듬에 젖어 있다가 팔레스타인에 돌아가 거기서 삶보다 더 흔한 죽음에 적응하지 못할까봐, 자기를 훈련시키려고 그랬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훈련한들 석달 뒤에 적응이 될까? 사람이 어떻게 죽음에 적응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또다른 이라크 친구는 내게 불길한 이메일을 보냈다. 자기는 이번 전쟁이 지상의 마지막 전쟁이라는 아마겟돈 전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꾸 든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지 않기를 빌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세상이 끝나버렸으면 하는 마음도 있다고 했다. 70년대 말에 태어난 그의 첫 기억은 80년 이란-이라크 전쟁 때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지던 폭탄이었다. 레바논 사태, 걸프전,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라크 전쟁, 다시 레바논 전쟁, 그리고 60년 동안 희생양인 팔레스타인. 늘 전쟁 속에서 살아왔던 그로서는 지긋지긋한 전쟁이 끝나려면 세상이 끝나야만 할 것 같지 않겠나. 나는 할말이 없었다. 세상이 존속하기 위해서 지구 어디선가 전쟁을 댓가로 치러야만 한다면, 누구를 위한 세상이고 존속인가?

한국에 한번 왔다가서 종종 이메일을 주고받았던 레바논 여성작가는, 얼마 전 내가 보낸 이메일에 답장을 보내지 않는다. 하긴 컴퓨터를 켤 경황이 없을 것이다. 그도 베이루트를 떠나 피난을 갔을 텐데 어디로 갔을까? 내게 구경시켜주겠다던 그의 고향, 아름다운 남 레바논도 쑥대밭이 되었으니. 시리아 국경을 넘었을까? 시리아가 예정된 다음 판짜기 대상이라는데? 한두달 뒤에도 그로부터 답장을 받지 못한다면, 나 또한 이 더러운 전쟁과 함께 세상이 중단되기를 바랄지도 모르겠다.

2006.08.01 ⓒ 오수연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