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로버트 D. 퍼트넘 『우리 아이들』

김병권

부모보다 못살게 되는 자식들의 세상은 왜 만들어지나?
-로버트 D. 퍼트넘 『우리 아이들』

 

 

rjtjtrjtr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돌풍을 몰고 온 버니 쌘더스가 미국사회에 던지고 있는 가장 큰 메시지는 어쩌면 그의 공약이 아니라 그에 대한 충격적인 세대별 지지율에서 올지 모른다. 지난 2월 경선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을 때 네바다 주 등에서 그에 대한 18~30세 연령대의 지지율이 무려 80% 전후로 나왔다. 한마디로 20대 청년들이 진보적인 쌘더스를 압도적으로 지지하면서 미국의 투표성향이 계급이나 인종, 성별 투표를 넘어서 단연 세대 투표 경향을 보여준 것이다. 세대의 문제가 학문적 울타리를 넘어 현실정치와 사회적 지평 위에 떠올랐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쌘더스는 2010년 미국 의회에서 장장 8시간 37분 동안 했던 필리버스터 연설에서 이런 얘기를 했다.

 

“우리는 아이들과 손주들이 부모보다 낮은 생활수준을 영위하는 최초의 세대가 되는 것을 지켜보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나라의 경제가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길 바라지 않습니다. 우리는 경제가 바닥으로 추락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우리는 보다 오랜 시간을 일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그런 것은 이같이 위대한 나라의 역사가 될 수 없습니다.”

 

이는 ‘부모보다 못한 아이들의 세대’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강력한 경고이다. 사실 청년 문제를 바라보는 기성세대의 오류의 배경에는 한결같이, ‘모든 자식세대는 부모세대보다 나아졌다’는 가정이 깔려 있다. 쌘더스는 이런 확고한 믿음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근저에서 무너져 내리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부모보다 못살게 될 최초의 아이들’

 

불평등에 관한 화두를 던져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삐께띠(Thomas Piketty)는 그의 저서 『21세기 자본』에서 경제가 매년 1퍼센트씩 성장하면 한 세대(30년) 후에는 누적성장률이 35퍼센트에 이르게 되고, 매년 1.5퍼센트 성장을 하게 되면 50퍼센트에 이르게 된다고 봤다. 그리고 이 정도의 성장은 세대 사이에 생활방식의 중대한 차이를 만들어냄으로써 이들이 전혀 다른 세계에서 살아나간 것과 같은 경험의 차이가 나타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알다시피 20세기에 인류는 1퍼센트를 훨씬 넘는 성장을 이뤘고 여기에 불평등까지 체계적으로 줄어왔으니 자식세대가 늘 부모세대보다 풍요로웠던 것은 너무 당연하다. 특히 우리나라는 지난 50여년 동안 5~10% 이상씩 성장했으므로 자식세대가 더 풍족할 것이란 기대가 마치 불변의 진리처럼 굳어져왔다.

 

그런데 최근에 심각한 청년 문제를 목도하면서 다음 세대가 어쩌면 ‘부모보다 못살게 될 최초의 아이들’이 될 수도 있다는 것, 특히 그것이 경제 여건이 어려운 저소득층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앞서 쌘더스의 연설에서 보았듯이 그것은 우리에게 국한되지 않는, 미국을 포함한 세계적 문제라는 사실이 점점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런 주제를 학문적으로 정면으로 파고들어간 학자가 있다. 일찍이 1990년대초 『나 홀로 볼링』(Bowling Alone)이라는 책을 통해 미국사회가 점점 사회적 관계의 끈이 단절되어가고 있다고 경고하면서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의 중요성을 상기시켰던 로버트 퍼트넘(Robert D. Putnam)이다.

 

그는 지난해 출간된 「우리 아이들」(Our Kids: The American Dream in Crisis, 한국어판 정태식 옮김, 페이퍼로드 2016)에서 본인의 경험을 포함한 방대한 세대 및 계층의 인터뷰, 그리고 각종 학술적 문헌을 통해서 세대와 경제적 불평등이 1980년대 이후 어떻게 서로 얽혀 들어갔는지를 정밀하게 추적한다. 그리고 세대에 대물림되는 경제적 부가 인종, 성별 등의 격차를 뛰어넘어 미국사회 격차의 중심에 등장했음을 생생하게 입증한다. 이 책의 부제가 바로 ‘미국에서는 누구나 성공할 수 있는 동등한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의미를 가진 “‘아메리칸 드림’의 위기”인 것은 이 때문이다.

 

세대 중심으로 격화되는 경제적 격차

 

그는 역사의 시계를 아버지와 할아버지 세대로 돌리면서 1959년 미국의 한 고등학교 졸업식 풍경을 이렇게 압축한다. “미래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늘 그랬듯이 졸업식은 공동체 전체의 축제였고 참석인원은 1150명에 이르렀다. 가족이든 아니든 간에 마을 사람들은 모든 졸업생들을 ‘우리 아이들’로 생각했다.” 그러나 1980년대를 거쳐 지난 30년 동안 상황은 완전히 반전되었다. “부자 미국인들과 가난한 미국인들이 점차 분리되어 서로 평등하지 않은 세계에서 살고 있고, 공부하고 있으며, 자녀를 양육하고” 있는 상황으로 빠져들게 되었다. 그리고 “사회계층 이동을 위한 디딤돌이 제거”되어왔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그는 이런 식으로 50년 전과 현재를 수시로 오가면서 아버지·할아버지 세대와 지금 청년들을 직접 비교 인터뷰하면서 지난 수십년 동안 세대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증언한다. 왜 이혼이나 불안정한 가정이 경제적 차이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지, 양육환경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비슷한 재정이 투입되는 고등학교들이 부유한 지역과 빈곤한 지역에 따라 어째서 완전히 달라지는지 등을 묘사해낸다. 그 결과 “부유한 흑인과 가난한 흑인이 이웃이 되는 경우는 40년 전보다 지금이 훨씬 적다”는 그의 주장은 경제적 격차가 어떻게 인종의 격차를 넘어서 세대를 통해 강화되는지를 말해준다.

 

이 책은 절대 가볍게 읽도록 쓰이지는 않았다. 대중서로 쉽게 풀기보다는 수많은 인터뷰 속에 인용되는 학술적 문헌과 수시로 등장하는 도표가 섞여서 치밀하게 논리를 전개하는 것을 우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워낙 기존의 상식을 뒤엎는 생생한 내용들이 쉴새없이 등장해서 독자로 하여금 지루함을 잊고 책의 논리에 따라가게 해주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특히,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경제적 격차와 세대의 문제, 교육의 문제가 미국사회에도 놀랍도록 유사하게 펼쳐지고 있다는 사실에 경악 하게 된다.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의 청년 문제, 세대로 넘겨지는 경제적 격차 문제는 세계적 문제, 시대적 문제라는 것이다.

 

 

김병권 / 사회혁신 리서치랩 소장

2016.3.30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