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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은숙 『심야인권식당』

정지은

슬픔 한 숟가락, 연대 한 잔의 식탁에 초대합니다
– 류은숙 『심야인권식당』

 

 

gewgd몇달 전, ‘심야인권식당’이라는 책(따비 2015) 제목이 자주 눈에 들어왔다. 북펀드를 모집 중인데 목표 금액이 아직 채워지지 않았다며 펀딩 참여를 독려하는 글부터, 꼭 읽어야 한다는 추천사까지 많은 사람들이 SNS에 글을 올렸기 때문이다. 나오지도 않은 책을 열심히 추천하는 사람들이 신기해 유심히 보니 저자가 『사람인 까닭에』(낮은산 2012)를 쓴 류은숙이다. 그 책의 ‘21년차 인권활동가, 12년차 식당 노동자’라는 소개 문구가 상당히 인상깊어서 계속 마음에 남아 있던 터였다. 그 책은 어디선가 얻어 읽었던 터라 공짜로 본 게 미안하니 이번에는 제대로 돈 내고 사서 읽자 싶어서, 어차피 살 책, 북펀드에 참여하기로 꾀를 냈다.

 

책을 받자마자 참여자 명단에서 내 이름을 확인하고는 묘한 의무감으로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웬걸, 분명 어렵고 우울한 이야기와 사건의 연속인데도 심각하지 않다. 게다가 읽으면 읽을수록 이 언니, 일면식도 없지만 ‘뭘 좀 아시는 분’이다. 비 오는 날 해고 노동자가 차린 분향소에 부침개 부쳐 슬그머니 갖다 놓고 오는 것 정도는 일도 아니다.

 

‘인권으로 지은 밥, 연대로 빚은 술’

 

크든 작든 행사를 한번이라도 준비해본 사람은 안다. ‘맛있는 밥’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것이야말로 행사의 성패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프로그램이 별로여도, 강의가 졸려도, 볼 게 없었어도, 음식이 맛있었고 함께한 사람들이 즐겁게 잘 먹었다면 그 행사에 대한 평가는 좋을 수밖에 없다. 주최자의 행사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 맛있는 밥상을 함께한 사람들끼리 이후에 종종 뭐라도 만들어나가게 된다는 것 또한 신기한 일이다. 그래서 모든 기획자들은 맛있는 밥 확보에 열을 올린다. 음식점을 갈 때도 ‘이 지역에서 가보지 않으면 안되는 맛집’ 정도는 예약해놓는 성의가 필요하다. 하다못해 결혼식도 피로연 음식이 맛있으면 일단 그것만으로도 합격점 아닌가.

 

이 책은 부제로 표현되었다시피 ‘인권으로 지은 밥, 연대로 빚은 술’을 나누는, 인권연구소 창 사무실 구석에 마련된 작은 ‘술방’의 이야기다. 이주노동자, 청소년활동가, 파업 노동자, 형제복지원 피해자, 밀양 할매들, 사회복지사, 국제연대활동가, 인권변호사…… 국적도 성적 지향도 정치적 견해도 상처도 입맛과 주량도 다른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밤마다 모여들어 이 낮고 초라한 공간을 꽉 채운다. ‘술방’의 밥심은, 서로에게 손 내밀고 그 내민 손을 잡는 모든 사람들에게 골고루 퍼진다. “빈 주머니와 앙상한 관계는 같이 다닌다. 돈이 없어도 마음 편하게 만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현실이 안타까운 저자는 그런 사람들에게 딱 맞는 공간을 만들어냈다. 돈 한푼 없어도, 간다는 전화 한통 하면 준비된 재료로 바로 육수를 우려놓고 겨울에는 따뜻한 떡국을, 여름에는 시원한 메밀국수를 준비하는 곳이 어디 흔한가. 게다가 사회에서 환대받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술방에서는 대환영이다. “많이 지치면 ‘창’에 가서 쉬다 오라”는 말이 활동가들 사이에 있을 만큼 ‘술방’은 재충전의 공간이기도 하다. 딱 그만큼 들어오는 후원금으로 월세를 내고, 원고 쓰고 강연해 번 돈으로 사무실 운영비를 메꿔가며 밥과 술을 대령하는 ‘주모’ 역할을 기꺼이 해내는 사람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저마다의 아지트로의 쉼 없는 초대와 부대낌, 같이 축적하는 몸과 말의 시간들이야말로 인권을 움직이는 힘”이라는 저자의 말은 그 자신의 경험 없이는 절대 나올 수 없는 현장의 언어다. 솔직히 읽다보면 이 언니, 사서 고생을 즐기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말복 앞두고 이틀 동안 뛰어다녀 생닭을 구하고 그걸 고아서 일일이 살 발라내어 타지 않게 저어가며 30인분의 닭죽을 혼자 만들고, 감자 한 상자를 일일이 껍질 벗겨 수십번 나눠 믹서에 갈아 감자전을 부치기도 한다. 한여름 데모 중인 파업 노동자들과 한전과의 싸움에 지친 밀양 할매들을 위한 ‘응원 식량’ 스케일이 이 정도다. 그냥 준비하는 게 아니라 상대의 처지를 헤아리고 차리는 음식이라 더 맛있다. 물론 사서 고생하는 오지랖 넓은 저자라고 늘 성공하는 건 아니다. 김밥에 질릴 대로 질린 장애인들에게 손수 싼 김밥을 갖고 갔다가 그들의 실망에 주눅 들기도 하니까.

 

타인의 고통에 응답할 책임

 

이 연구소처럼 모든 구성원이 부엌일을 당연히 할 일로 여기게 되고, 밥을 매번 해 먹는다는 건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차라리 다른 행사를 기획하고 치르는 게 낫지, 매일 밥을 해 먹는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골치 아픈 일이다. 행사는 생색이라도 낼 수 있지만 밥은 타박이나 안 들으면 다행이다. 사실 어느 사무실이든 여름에 얼음을 먹기 좋게 트레이에 담고, 다시 물을 부어 얼리고, 수저 담가놓는 컵을 씻는 등의 자질구레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들은 늘 ‘막내의 역할’이다. 그리고 그 역할은 새로운 막내가 들어올 때마다 인계된다. 조직에서 이런 일은 ‘허드렛일’이지 결코 ‘중요한 일’이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말로는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의 가치를 존중해야 한다고 얼마든지 이야기할 수 있지만, 실제 나의 일상에서 그 노동을 얼마나 하는지는 전혀 다른 문제다.

 

위로를 나누고 힘을 키우는 아지트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현실은 여전히 인권의 의미와는 상관없이 숨가쁘게 돌아간다. 금요일 밤의 테러로 빠리에서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고 서울에서는 시위에 참여했던 시민이 경찰의 강경진압으로 혼수상태에 빠져 있다. ‘사회’를, ‘국가’를 언급하는 것조차 무력하고 좌절에 빠져들기 쉬운 이 힘든 시절, 인권 감수성이야말로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책임”이라는 책 속의 구절을 다시 읽어본다. “서로의 엇갈린 기운을 나눠 가지며 서로를 버텨줘야” 하는 관계의 사람들을 하나라도 더 만드는 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일 것이다. 일본 드라마 <심야식당>의 ‘마스터’처럼, 이해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고통과 책임을 공유할 수 있는 현명한 제3자로 살 수 있다면 더 좋겠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으실 분들은 일단 배를 든든히 채운 후에 읽으시길! 배고플 때 읽기 시작하면 라면이라도 하나 끓여 먹지 않고서는 못 배길 테니까.

 

 

정지은 / 문화평론가

2015.11.18 ⓒ 창비주간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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