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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 학교폭력의 주범이라고?

김병수

김병수 / 만화가, 우리만화연대 부회장

 

사용자 삽입 이미지참 고약하다. ‘1등신문’이라는 곳에서 학교폭력의 주범으로 ‘웹툰’을 꼽아 1면에 대서특필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엉뚱한 분석과 진단도 문제지만 만화계는 이 갑작스런 집중조명에 적이 당황했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학교폭력의 피해학생이 잇따라 자살하면서 원인 분석과 대책 마련에 분주하던 지난 1월 7일. 조선일보 1면에 “열혈초등학교, 이 폭력 웹툰을 아십니까”라는 제목의 기사가 떡하니 등장한다. 눈치빠른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는 이틀 만에 웹툰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여 청소년의 접근을 제한하겠다고 밝혔고, 그 다음날에는 해당 웹툰을 연재했던 포털싸이트 ‘야후 코리아’가 작가와 협의하는 모양새를 갖춰 연재를 일방적으로 중단시켰다.

 

‘폭력 웹툰’ 비난에서 연재 중단까지

 

조선일보는 해당 기사에서 주요 포털에 연재되는 340개의 웹툰 가운데 학원폭력물이 11개라면서, 이 가운데 〈열혈초등학교〉와 〈폭풍의 전학생〉 2편의 사례를 들어 아이들이 웹툰을 보며 폭력의 방법을 학습하고 있기 때문에 폭력이 조장된다고 보도했다. 특히 〈열혈초등학교〉는 작품 안에서 매일같이 잔인한 학교폭력이 반복되고 왕따폭력 피해학생을 우스갯거리로 만들고 있다며 유력일간지 머리기사를 만화가 장식하는, 한국만화 100년의 역사에 길이 남을 기념비적인 장면을 기어코 연출해내고야 말았다.

 

웃기는 건, 학원폭력물로 분류되는 11편이 전체 340편 가운데 3.2%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지목된 2편의 비율을 따지면 0.58%에 지나지 않는다. 나머지 9편이 뭔지도 모르겠고 또 그 만화들이 얼마나 아이들을 폭력으로 내모는지는 모르겠지만 0.58%인 2편의 웹툰만 사례로 든 것은 허전하고, 궁색하고, 비루하기 짝이 없다.  
 
더 웃기는 건, 조선일보 인터넷판인 조선닷컴(www.chosun.com)에 사건(?) 발생 이틀 후이자 마침 방심위가 웹툰에 대한 모니터링 강화를 발표한 날인 1월 9일자에 ‘인기 절정의 웹툰 대표작가 3인을 만나다’라는 기사를 실었다는 점이다. 그 기사에서는 〈열혈초등학교〉에 대해 상찬을 잔뜩 늘어놓고 있다. 일부를 감상해보자.

귀귀의 만화(〈정열맨〉과 〈열혈초등학교〉)는 정돈되거나 정형화된 느낌과는 거리가 멀다. 거친 그림체는 솔직한 말로 지저분해 보인다. 이말년, 조석 등 ‘병맛’ 만화의 또 다른 대표 주자들 역시 결코 ‘예쁘지 않은’ 그림체를 선보인다. 하지만 이것이 ‘병맛’ 만화의 매력이다.
“학창시절에 친구들이 그린 연습장 만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그런(작품이 사랑받는) 것 같아요. 친숙한 느낌이 든다고 할까요?”

한쪽에서는 폭력이라 욕하고 다른쪽에서는 매력이라고 쓰다듬어준다. 어느 장단에 춤을 추고 어느 가락에 노래를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이를 두고 한 만화가는 이 신문이 드디어 다중인격의 면모를 갖추었다고 평하기까지 했다. 자기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또다른 자아는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대중매체 모방’이라는 고정관념 벗어나야

 

방송 프로그램 〈개그콘서트〉에 ‘사마귀 유치원’이란 코너가 있다. 유치원을 배경으로 사회풍자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인기 코너다. 개그맨 최효종이 일수꾼으로 등장하여 국회의원 되는 법을 노골적으로 풍자했던 당시에는 강용석 의원의 고소 건으로 장안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조선일보에 묻고 싶다. 사마귀 유치원에 등장하는 유치원생들은 진짜 유치원생인가? 그들이 ‘어른이 여러분!’하고 외치는 건 유치원생을 향해 던지는 개그냔 말이다!
 
〈열혈초등학교〉는 전형적인 어른용 부조리만화다. 초등학교를 배경으로 하고 있을 뿐 등장하는 인물은 하나같이 어른의 얼굴을 하고 있다. 거기에 등장하는 초딩이들(사실은 어른이지만)은 부조리한 사회현상과 대적하며 불합리한 구조와 모순을 까발리고, 공격하고, 급기야 웃음으로 무력화한다. 사마귀 유치원이 유치원생 보라고 만든 프로그램이 아니듯이 〈열혈초등학교〉도 초등학생용 만화는 아니다.

 

물론 사마귀 유치원을 유치원생이 볼 수 있고 열광할 수도 있다. 같은 맥락에서 〈열혈초등학교〉를 초등학생이 볼 수도 있고 재밌어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만화는 어른들의 부조리한 사회상을 초등학교에서 벌어지는 폭력의 현상과 연결하여 웃고 떠들고 오히려 비웃는다. 방귀대장 뿡뿡이가 방귀를 뀌면 어린이들에게 방귀를 조장하고 학습시키는 건가? 뽀로로가 절벽에서 떨어지면 어린이들에게 낙상을 조장하고 학습시키는 것인가? TV뉴스에 수없이 나온 9․11테러 당시의 장면을 보고 어린이들은 테러와 폭력을 배우나? 어린이들이 볼 가능성이 높은 모든 매체에서는 ‘어린이용’만 만들어야 하나? 정론직필을 학습하고 조장하는 언론사의 자아가 강하다보니 비유와 은유는 다른 자아의 담당이 되어버린 것인가?

 

상식과 합리가 사라진 이 신문의 ‘기습’에 우리 만화계는 큰 상처를 입었다. 학교폭력의 원인으로 몰린 것도 억울한데 앞으로 또 그런 비난을 받을까봐 지레 겁을 먹는 만화계가 참 비참하다. 우린 그걸 ‘자기검열’이라 부른다.

 

2012.2.8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