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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패권경쟁, 한국의 길은?

구갑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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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식 표현인 ‘대국굴기’(大國崛起), ‘대국이 일어서다’라는 의미다. 또한 2006년 11월 중국중앙방송 경제채널(CCTV-2)을 통해 방송된 12부작 역사 다큐멘터리의 제목이기도 하다. 근대 패권국가 또는 패권에 근접했던 국가들의 부침이 이 프로그램의 주제다. 곧 ‘대국굴기’는 중국이 패권국가로 부상하고 있음을 대중에게 알리는 신호였다. 2013년 3월 시 진핑 정부의 등장과 더불어 중국은 기존 패권국가인 미국에 ‘신형대국관계(新型大國關係)’를 요구하고 있고, 국제관계 일반에서는 ‘중국식 대국외교’란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대국과 패권국이 같은 말은 아니다. 미국패권을 정당화하는 담론인 ‘패권안정론’에 따르면, 패권국은 압도적 군사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국제적 공공재를 공급하는 역할을 통해 세계정치경제의 안정을 가능하게 하는 존재다. 패권국 역할의 부재 시기(interregnum)였던 1930년대에, 쇠퇴하는 패권국 영국은 대공황을 해결할 능력이 없었고, 부상하는 패권국 미국은 그 위기를 해결할 의지가 없었다는 분석이 그 담론의 한 사례다. 어떤 국가가 국제적 공공재를 제공할 능력과 의지가 있을 때, 그리고 다른 국가들이 그 지위를 인정할 때 그 국가는 패권국이 될 수 있다. 즉 패권(hegemony)은 강제와 동의 둘 다를 필요로 한다.

 

각자의 전략을 모색 중인 미국과 중국

 

2차대전 종료 즈음에 자본주의진영의 패권국으로 등장한 미국은, 안보와 관련해서는 진영 밖에 적을 설정하는 냉전질서를, 진영 내부의 경제영역에서는 보다 자유로운 무역질서, 달러와 금의 태환을 기초로 달러를 기축통화로 하는 통화질서를 고안한 바 있다. 2015년 현재 미국의 『국가안보전략』(National Security Strategy)은 미국패권의 다른 이름인 “강하고 지속 가능한 미국의 리더십” 복원을 강조한다. 과거의 거울로 『국가안보전략』을 본다면,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군사동맹을 강화하는 미국의 재균형정책은, 적으로 규정하고 있지는 않지만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냉전적 관성의 연장이다. 환태평양협정(TPP)과 환대서양무역투자협정(T-TIP)도 중국과의 경쟁을 염두에 둔 새로운 무역질서에 대한 구상이다. 미국은 자신이 설정한 국제경제규범인 ‘개방적이고 투명한’ 경제환경을 수용할 수 있다면, 중국도 TPP에 참여할 수 있다고 밝힌 상태다. 반면 패권국가의 쇠퇴기에 나타는 생산과 금융의 분리, 즉 금융자본의 자율화가 위기에 직면한 징표인 2008년 9월 미국계 금융회사 리먼 브라더스 파산 이후의 통화질서 및 금융질서에 대한 대안은 보이지 않는다.

 

한편 2015년 현재 중국식 대국외교의 구호인 ‘일대일로(一帶一路)’는 중국의 정치경제적 필요 때문에 구상된 경제협력전략이지만, 동시에 미국패권에 대한 도전으로도 해석될 수 있는 발전전략이다. 중국-중앙아시아-유럽을 연결하는 “씰크로드 경제벨트”와 중국과 동남아시아에서 서남아시아를 거쳐 아프리카와 유럽을 잇는 “21세기 해상 씰크로드”를 건설하는 “전략 로드맵”인 ‘일대일로’에 대해, 중국은 미국이 패권구축을 위해 서유럽에 제공했던 마셜플랜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유럽부흥계획’인 마셜플랜이 참여자들의 비평등적 관계와 냉전질서의 구축이란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면, 중국은 일대일로가 냉전질서가 아니라 “협력을 통해 공동안보를 촉진하는 데 도움이 되”는 평화와 발전, 평등과 공영을 추구하는 전략이라 주장하고 있다. ‘일대일로’의 추진과정에서 “각국이 선택한 자국 발전의 길을 존중한다”라는 언명도 중국식 국제관계의 평등을 상징한다. 중국이 미국과 다른 형태의 패권전략을 추구하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2015년 미국과 중국의 경쟁과정에서 중첩된 우연의 산물로, 한국정치에서 쟁점으로 부각된 의제가 미국산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인 사드(THAAD) 도입과, 중국 ‘일대일로’의 한 추진기구인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의 가입여부이다. 이를 두고 한국의 정치사회세력들이 미·중의 대리전을 벌이게 된 근본적 이유는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평화과정의 부재와 적대적 남북관계 때문이다. 목표와 전략이 부재한 한국 외교정책의 냉전적 관성이, 미국과 중국이 한국에 어느 편에 설 것인가를 묻게 하는 형국을 만들고 있다.

 

세심한 외교정책이 필요한 때

 

미국패권의 핵심인 군사력에서 중국이 미국을 압도하는 것은 당분간 불가능하다. 2014년 기준 미국의 국방비는 약 5810억 달러, 중국은 1294억 달러다. 중국이 북한핵을 명분으로 한 사드의 한국 배치에 민감한 이유다. 2014년 10월 미국이 일본에 사드의 한 구성요소로 중국지역을 탐지할 수 있는 X밴드레이더를 설치했을 때도 중국은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사드의 도입은 한국을 동북아 군비경쟁의 중심에 서게 할 수 있다. 동북아와 한반도에서 안보딜레마가 심화된다면, 한반도 평화의 길과 그 평화에 기초한 신성장동력의 개척은 요원한 기획으로 남게 될 것이다.

 

그동안 중국은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무역질서 속에서 미국의 재정적자와 경상수지적자를 향유하는 ‘태평양수지균형’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미국의 『국가안보전략』도 인정하는 것처럼 미국이 세계경제를 견인할 지구적 수요, 즉 신성장동력을 창출하지 못하는 조건에서 중국은 AIIB라는 의제를 제기했다. 미국패권의 가장 취약한 지점에 대한 공략이다. 미국의 제1동맹인 영국마저 AIIB 가입을 결정한 시점에서 미국 내부에서조차―네오콘적 성향이 지배적인 미국의회가 냉전적 관성 때문에 승인하지 않겠지만―AIIB에 가입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미일동맹의 공고화를 지향하는 일본까지 AIIB 가입을 고려할 수 있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이 AIIIB에 가입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미국과 북한의 희망적 관측은 한국 외교정책의 부재를 반증하는 한 지표다.

 

AIIB가 “전세계가 환영하는 공공제품”이라는 중국판 유사 패권담론 소리를 듣고 있음에도 그 가입을 결정한 동남아와 서유럽 국가들은 AIIB 의사결정 과정에서 최대 지분을 갖게 되어 있는 중국의 거부권을 제약하는 협상을 하고 있다. 이는 한국정부가 쟁점화해야 할 외교의제가 무엇인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한국은 사드의 도입을 결정한다고 해도 AIIB에 가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 상황이 도래한다면 평화와 경제의 선순환을 목표로 해야 하는 한국 외교의 의지와 능력은 현저히 감소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구갑우 / 북한대학원대 교수

2015.3.25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