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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정부의 국정비전을 보며

이일영

이일영 / 한신대 교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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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정부가 출범했다. 예상대로 썩 흔쾌한 분위기는 아니다. 격렬했던 18대 대선에서 51.6%의 지지를 얻어 당선되었지만, 취임에 즈음하여 44%까지 지지율이 떨어졌다(한국갤럽 2013.2.22). 이 때문인지 보수신문에서조차 “새 시대에 대한 기대감, 그런 기분·활력·분위기조차 시들한 것은 전에 없던 일”이라는 평이 나온다(조선일보 2013.2.22).

 

박근혜정부에 대한 기대가, 예상 밖으로 또는 예상대로, 빠르게 식어가고 있는 데는 정책과 인사에 실망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정부의 출범과정에서는 분명히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대목이 적지 않다. 그러나 박근혜정부의 ‘실패’를 예단하는 것은 시기상조다. 특히 연이어 ‘실패’를 거듭했던 야권의 입장에서는 다산 정약용 선생이 강조한 “공정하게 듣고 아울러 살펴본다”(公聽幷觀)는 태도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새 정부의 출범 전후로 시들한 분위기

 

박근혜정부의 국정비전은 “국민행복, 희망의 새 시대”로 제시되었다. 여기에는 국민행복과 국가발전의 선순환, 국민행복을 바탕으로 한 한반도시대의 개막, 지구촌의 행복시대에의 기여 등 요소가 포함된다. 즉 개인의 행복과 국가-한반도-세계를 연계하는 비전을 제시한 것이다. 물론 선거과정에서는 ‘국민행복’이라는 키워드만 제시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민주통합당이나 안철수캠프에서도 공약을 열거했을 뿐 통합적인 국정비전을 내놓지는 못했었다.

 

국정비전의 철학적 기초가 튼튼해야 집권세력의 통치능력이 확보되고 이와 연계된 개별 정책의 추진력이 강화된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어느 정당이나 정치세력도 비전 형성에 자원을 제대로 투입한 적은 없었다. 특히 야권에서는 비전과 정책 연구의 초보적 시스템조차 마련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국정비전에 대해 별다른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은 한국의 정치권과 시민사회가 관료집단을 제어할 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웅변하는 것이다.

 

박근혜정부는 국정비전 달성을 위한 5대 국정목표를 ①일자리 중심의 창조경제 ②맞춤형 고용·복지 ③창의교육과 문화가 있는 삶 ④안전과 통합의 사회 ⑤행복한 통일시대의 기반 구축으로 선정했다. 이와 관련하여 경제민주화가 국정목표에서 사라졌으며 대신 창조경제라는 개념이 등장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더 나아가 이것이 성장주의로 복귀하는 징후라는 추측도 제기되었다.

 

경제민주화 공약의 실천을 지켜보자

 

박근혜정부의 경제민주화 의지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지만, 제시된 국정목표가 대선공약과 크게 다른 것은 아니다. 박근혜 후보가 ‘국민행복 10대 공약’에서 제시한 경제민주화 공약은 9번째 순위에 있으며, 창조경제는 5번째 순위에 있었다. 공약 단계에서 창조경제는 일자리정책의 일환이고 경제민주화는 공동체정책의 한 요소였다. 국정목표를 제시하면서는 ‘일자리 중심의 창조경제’를 맨 앞으로 내세우고 그 안에 창조경제 공약과 경제민주화 공약을 함께 배치했다. 취임사에서는 경제부흥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창조경제와 경제민주화를 함께 거론했다.

 

이제는 경제민주화라는 단어를 중심으로 공방을 벌리는 것보다는 약속된 정책이 제대로 이행되는지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야권도 집권했을 경우 어떻게 해야 자신들의 정책을 제대로 실현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서 박근혜정부 경제민주화 정책의 구체적 집행을 단속해야 한다.

 

문재인 후보는 대규모 기업집단의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신규 순환출자는 물론 기존 순환출자분에 대해서도 3년 안에 단계적으로 해소하도록 하는 강력한 금지방안을 내놓았었다. 그러나 내수기반이 취약한 조건에서 재정투입보다는 투자와 수출을 촉진하는 총수요정책과 함께 순환출자가 구조화되었던 역사적·제도적 경로의존성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제도들 사이에는 상호보완성이 존재하기 마련이므로 기존 제도의 폐기나 전환은 일관된 목표 하에서 마찰을 줄이면서 이루어져야 한다.

 

박근혜·문재인·안철수 등 주요 후보가 공통적으로 제시한 경제민주화 공약은 신규 순환출자 금지,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 확대, 집중투표제 도입, 연기금 주주권 강화 등이고 이는 인수위에서 제시한 ‘140대 국정과제’에 포함되어 있다. 대기업 계열 금융회사가 비금융 계열사에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지분 한도를 더 제한하고 산업자본의 은행지분 보유한도를 축소하는 금산분리 강화방안도 살아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을 사실상 폐지하여 중소기업청장, 감사원장, 조달청장에게 불공정거래 사건에 고발요청 권한을 부여하도록 계획했다.

 

‘시대교체’는 보수와 진보의 동시 혁신이 있어야 가능

 

박근혜정부에 대한 회의감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원인이 비전과 정책 자체의 변화나 후퇴 징후 때문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문제는 실행능력을 포함한 통치능력에 대한 의구심이라 할 수 있다.

 

140대 국정과제에는 지배주주 등의 횡령, 사면권 상신, 회계부정에 대한 법 집행을 엄격하게 한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과연 누가 어떤 시스템 속에서 이를 집행할 것인가? 박근혜정부는 출범 전 인사과정에서 이러한 물음에 신뢰를 주지 못했다. 당선인이 아무리 원칙과 법질서를 강조해도 이를 잘 실행할 것으로 믿을 만한 인사와 시스템이 보이지 않았다. 공약 실행의 의지와 능력은 대통령 한 사람에 모두 집중된 것처럼 보이고 새 정부를 구성한 인사들은 과거 시대를 상징하는 갖가지 의혹에 휩싸여 있다. 선거과정에서 절박하게 호소했던 ‘새 시대’의 메시지는 이제 국민들 뇌리에서 사라지고 있다.

 

박근혜정부가 출발부터 난조에 빠져 있지만 야권의 경우도 평소에 비전 형성과 정책 실행능력을 갖추는 문제를 더욱 깊이 고민해야 한다. 선거 당시 안철수캠프는 격차해소와 정치혁신을 주장하고 혁신경제와 재벌개혁위원회를 제안했지만, 국민들은 그러한 일을 누가 어떻게 행할지를 알 수가 없었다. 민주통합당은 상대적으로 급진적인 경제민주화 방안을 내놓으면서도 창조·혁신 관련 정책은 아예 거론하지 않았다. 게다가 총선과 대선에서 민주통합당이 보여준 전략과 능력은 많은 국민에게는 실망스러운 수준이었다.

 

박근혜정부가 부진한 출발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야권이 경제민주화나 복지국가의 개념이나 슬로건 수준에서 박근혜정부를 공격하는 것만으로 대안세력이 되는 것은 아니다. 격차의 확대와 성장의 정체를 극복하기 위한 경제혁신의 과제는 여전하다. 결국은 문제를 인식하는 학습 능력과 문제를 해결하는 작동 가능한 시스템 형성 능력이 관건이다. ‘시대교체’는 보수의 혁신과 진보의 혁신을 함께 필요로 한다.

 

2013.2.27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