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안보소동인가, 새로운 안보위기인가

박순성

박순성 /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를 둘러싸고 전개되는 국제정치는 제법 시끄러운 것 같지만 긴장감이 떨어지고, 게다가 참신한 사고나 행동도 보여주지 않는다. 심지어 일반인들 사이에는 이미 여러 차례 벌어졌던 ‘안보소동’이 다시 시작되었을 뿐이라는 생각이 상당히 퍼져 있는 것 같다. 계산된 것처럼 보이는 도발과 소란, 지루한 협상과 적당한 타협, 그리고 불성실한 합의 이행과 새로운 갈등의 부상, 이러한 안보소동의 순환과정에 우리는 익숙해졌다. 전쟁위험이나 안보위기에 영원히 사로잡혀 있을 것 같던 우리 사회의 집단의식이 어느새 낡은 기억으로부터 벗어나 있다. 물론 시민들의 이러한 ‘무관심’에 아쉬움을 느끼는 집단들도 한반도 여기저기에는 아직 많이 남아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소동이라고 하더라도, 안보에 자신의 많은 것들을 걸고 있는 집단에게는, 그리고 그러한 집단이 지배하는 국가의 입장에서는, 안보위협의 수준이 엄청나게 증가했다. 위기감이 고조되면 판단의 착오와 행동의 실수가 나타난다. 국민은 그러한 정부의 실패를 비판하지만, 바로 그 실패 때문에 위기감은 더 고조된다. 자연히 그러한 국가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강한 주장을 펼 수밖에 없다. 전략적으로 또는 어쩔 수 없이 그런 태도에 동조해야 하는 국가들도 있지만, 그 반대편에는 동북아에서 지난 20년간 유지되었던 세력불균형을 세력균형으로 되돌리려고 하는 국가들도 있다. 안보리 의장성명(2009.4.13)이 북한의 로켓 발사를 ‘안보리 결의 1718호 위반’이라고 비난해도, 이미 형식과 내용을 둘러싼 타협의 정치는 이루어졌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외교는 앞으로도 진행될 것이다.  

안보게임과 북한의 딜레마

외교적 타협의 산물임에도 불구하고 안보리 의장성명은 북한에게 안보게임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는 명분을 제공하였다. 숨고르기나 기다림의 전략이 아니라 위협과 극한대치의 전략을 선택함으로써, 북한 지도부는 자주와 선군에 바탕을 둔 자신들의 체제가 지닌 강고함을 보여주고 당연히 더 많은 대가를 받으려고 한다. 지루한 신경전 속에서 이제는 버티고 밀어붙이는 힘이 모든 것을 결정할 가능성이 높다. 과연 북한의 현실은 어떠한가?

먼저, 이번 인공위성 발사는 2012년 강성대국의 대문을 열어젖뜨리려고 하는 북한 지도부의 능력을 보여주고 있는가? 정치적 상징성을 띠는 행동의 종류나 효과는 사회의 지배이데올로기나 정치문화에 따라 달라진다고 하더라도, 인공위성 발사가 최고 지도부의 정치적 역량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믿음을 회복시켜줄 것이라고 평가하기는 쉽지 않다. 인민경제의 계획부문에 의존하기보다는 시장부문에 참가하는 것이 생존의 기본방식이 되어버린 북한 주민들에게 인공위성 발사는 감동도 없고 시간만 빼앗는 군중대회 개최를 알리는 신호탄일 뿐이다. 특히 최근 북한 지도부와 주민 사이에 시장경제를 두고 힘겨루기가 본격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의 로켓 발사는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을 더욱 분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이다.

물론 재래식(이라고 불리지만, 기술과 성능은 결코 과거 수준이 아닌) 군사력에서 남한에 분명히 뒤처져 있는 북한의 입장에서, 핵무기나 장거리 탄도미사일은 분명 전략적 가치가 있다. 인민군의 사기진작 효과는 무시할 수 없으며, 군사적 억제력은 확실하게 강화되었다. 장거리 탄도미사일 기술의 수출은 경제적 이익도 가져다줄 것이다. 어쩌면 인공위성 개발을 통한 우주공간의 평화적 이용이 뜻밖의 수익을 가져다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원배분의 비효율성에 대한 비판, 특히 국방․중공업 부문과 기타 부문의 투자불균형에 따른 장기적 경제침체에 대한 비판은 결코 북한 지도부의 군사주의․선군사상만을 겨냥하고 있지 않으며 북한의 경제정책, 나아가 경제체제를 가리키고 있다. 더구나 북한의 경제가 무너지면서, 국방력도 약화되었다.

모호해진 메씨지와 사라진 목소리

내부적으로 위험이 완전히 통제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인공위성을 발사한 북한 지도부는 자신이 원하는 강력한 메씨지를 미국에 성공적으로 전달했을까?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에 대해 탄도미사일 발사라고 공식 입장을 발표한 미국은 북한이 전달하고 싶어하는 메씨지를 받아들였을까? 이미 ‘강인하고 직접적인 외교’를 공식 정책방향으로 밝힌 오바마 대통령에게, 그리고 2000년 10월 북미공동코뮈니케에서 미사일 문제가 다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아는 클린턴 국무장관에게, 인공위성 발사는 새로운 자극이 되었을까?

지나친 메씨지는 오히려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이미 주고받은 메씨지가 충분한 상태에서 강도 높은 새로운 메씨지는 다른 의도를 반영한 것으로 해석되기 쉽다. 과연 북한의 전략적 목표는 무엇이며, 협상의 의제와 과정은 어떻게 예상되는가? 결국 미국은 북한 지도부의 의도에 대해 다시 점검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으며, 협상을 준비하는 시간을 좀더 가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동안 북한은 체제유지를 위해 가장 어려운 상대인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

한편 남북관계가 악화되면서 남한의 외교적 입지와 영향력은 6자회담에서뿐 아니라 한반도·동북아 질서 변화와 관련해서도 급격히 약화되었다. 1980년대말과 2000년대초 남한이 한반도·동북아 냉전질서 해체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외교적 위상을 강화할 수 있었던 것과 달리, 현재는 남한이 이 지역에서 냉전질서를 되살리는 역할을 하면서 역설적으로 자신의 위상을 떨어뜨리고 있다. 최근 남한의 목소리가 실제로 잘 들리지 않는 것은 주변국과 분명히 차이가 나는 남한의 고유한 입장, 이른바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에 기반을 둔 남한의 정책기조가 더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안보리 논의에서도 남한은 한반도 질서와 관련한 핵심당사자의 역할을 하기보다는 주변 강대국에 휘둘리는 상대적 약소국의 모습만을 보였다. 심지어 이제는 한민족의 평화통일이라는 역사적 전망은 고사하고 남한의 중장기적 국가이익에 대한 명확한 개념조차도 사라져버린 것 같다.

‘안보위기 만들기’로부터 벗어나기

안보리 의장성명에 대응한 북한의 강경한 성명(우주이용권리 확인, 6자회담 불참 및 합의 부정, 경수로발전소 자체 건설, 핵 억제력 강화를 위한 핵시설 원상복구와 폐연료봉 재처리) 발표와 남한의 PSI(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구상) 전면 참여 결정 등으로 상황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안보게임을 통해 관련국들은 본격적으로 안보소동을 안보위기로 전환시키고 있다. 사실 안보소동과 안보위기는 경계가 불분명하다. 종종 관련국들은 안보게임이 끝나기 전까지 안보위기를 조성함으로써 유리한 협상결과를 얻으려고 한다. 안보게임에 참가하는 국가는 게임을 소동으로 인식하는 순간, 패자가 되고 만다. ‘진지하게 긴장의 수위를 높이고, 확실하게 위협수단을 사용하라.’ 안보게임은 말 그대로 모든 관련국들을 안보딜레마 속으로 밀어넣는다.

사실 국가권력은 안보위기 속에서 강화되고, 강화된 국가권력은 국가안보기구에 집중된다. 당연히 국가안보기구에 속해 있는 안보·군사 전문가들은 안보위기를 해소하기보다는 끝없이 만들어내기를 좋아한다. 북한 인공위성 발사 이후, 한반도와 동북아는 이들의 손아귀에 들어가기 직전이다. 자칫 안보소동을 가라앉히는 외교의 시대가 가고, 안보위기를 구조화시키는 냉전의 시대가 올지도 모르겠다. 그때 안보·군사 전문가들은 심지어 자신이 속한 국가의 이익을 뛰어넘어 그들만의 이익을 위해 위기를 계속 만들어낼 것이다.

한반도·동북아에서 안보위기를 만들어내는 관련국들의 적대행위에도 불구하고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있다. 멀리는 한국전쟁의 경험 이후, 가까이는 1990년대 1차 북핵위기 이후, 한반도에서 군사적 방법으로 긴장이나 안보위기를 해소할 수 있다는 판단은 현실성을 가질 수 없게 되었다. 또한 지난 20년 동안 축적된 체제전환과 경제통합에 관한 수많은 연구들은 남북한이 공통의 지향을 가지고 점진적·단계적 통일로 나아가야 한다는 교훈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현재 안보위기를 만들어내는 국가들의 전략적 행동에 대해 두 가지를 분명하게 지적할 수 있다. 이들의 행동은 한반도 평화·통일을 거부하는 태도를 확연하게 보여주고 있으며, 결국에는 전략의 방향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시민들의 건전한 상
식에 기대어 안보위기의 허구성을 밝혀
내고 안보소동을 가라앉히는 일은 어렵고도 쉽다. 국가안보기구들이, 안보·군사 전문가들이 만들어내는 안보위기를 시민의 손으로 하나하나 풀어내어 우스꽝스러운 부조리극으로 돌려놓아야 한다.

2009.4.15 ⓒ 박순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