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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비자금 의혹, 어떻게 규명할 것인가

하승수

하승수 / 제주대 법학부 교수, 변호사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로 시작된 삼성 비자금 및 변칙증여를 둘러싼 의혹이 점점 커지고 있다. 어제는 청와대 비서관을 지낸 이용철 변호사가 삼성측에서 돈을 받았다가 돌려준 적이 있다는 폭로도 나왔다. 아마 웬만한 국가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면, ‘민주주의의 위기’임이 선포되었을 것이다. ‘돈으로 안되는 것이 없다’는 것이 그 나라를 규정하고 있는 현실이라면, 그 나라에서 민주주의를 논한다는 것 자체가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처음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가 있은 후, 너무나 많은 시간이 지났다는 데에 있다. 폭로 직후에는 검찰도 금융감독원도 꿈쩍하지 않았다. 특검을 하느니 마느니 정치권에서 논란을 벌이는 동안 시간은 흘러갔다. 시간이 흘러가면 누구에게 유리한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이 정도의 시간이면, 조직적인 불법을 저지른 집단이라고 하더라도 대책을 수립하고 증거를 폐기하기에 충분하다.

지금도 어처구니없기는 마찬가지다. 청와대는 뜬금없는 이유를 들어 특별검사제 도입을 막기에 급급한 모양이다. 많은 정치인들은 겉 다르고 속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검을 들고 나온 일부 정치인들의 행태를 보면, 다른 속셈이 있거나, 무능하거나, 순진하거나 셋 중 하나이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 특검 도입 논의가 결국 좌초된다면, 상대측에 시간만 벌어준 꼴이 되었다. 이같은 일련의 상황을 보면, 역시 대한민국은 삼성공화국인 것이 분명하다.

삼성의 포로가 된 검찰, 관료, 정치인과 왜곡되는 여론

김용철 변호사가 폭로한 비리가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그 비리의 실체가 드러나기는 쉽지 않다. 진실이 밝혀지려면 최소한 두가지 장벽을 넘어야 한다. 첫번째 장벽은 대한민국의 정치인, 관료, 검찰 중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조직적으로 반발, 물타기, 로비 등을 통해 실체 규명을 방해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비리의 실체가 쉽게 드러날 것이라고 낙관하기는 어렵다.

두번째 장벽은 여론을 왜곡하려는 시도이다. 이미 경제신문들은 경제위기론을 퍼뜨리기 시작했다. 보수언론들의 물타기뿐만 아니라, 내부고발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 부족도 여론이 왜곡되는 데 기여하고 있다. 더구나 의혹의 대상이 되고 있는 집단들은 가능한 한 김용철 변호사 개인의 인격이나 사생활 문제로 초점을 돌리려는 여론왜곡을 끊임없이 시도할 것이다. 이미 그런 움직임들은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문제의 본질인 ‘삼성 비자금과 회장일가의 불법’이라는 핵심은 흐려지고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누가 어떻게 진실을 밝혀낼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시민단체를 비롯한 양심적 세력은 어떤 요구를 해야 할 것인가?

검찰에 마지막 기회를 주어야

우선 검찰에 마지막 기회를 주어야 한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의아해할 수 있다. 검찰의 신뢰성이 의심받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일단은 검찰이 수사하게 해야 한다. 지금 검찰은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검찰총장 후보자, 대검 중수부장이 의혹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 내부에서도 진통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검찰 내부에도 이 사건의 진실을 파헤쳐서 검찰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는 흐름이 있을 것으로 본다. 검찰조직이 아무리 문제가 많아도, 지금은 어느정도의 실체규명 없이는 검찰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검찰조직이 살기 위해서도 어느정도의 수사의지는 가질 수밖에 없다고 본다.

그리고 이것은 현실적인 판단이기도 하다. 특별검사가 신도 아니고, 특별검사제가 만능도 아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삼성일가를 둘러싼 의혹을 조사할 수 있는 인적 역량을 가진 집단은 검찰뿐이다. 따라서 지금은 검찰이 구성한 특별수사본부가 제대로 수사하도록 지켜보고 감시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검찰의 수사를 낙관할 수만은 없다. 검찰조직의 상층 수뇌부가 의혹을 받고 있고, 수사가 시작되면 검찰조직이 외압이나 로비에 노출될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면 결국 특별검사의 도입이 필요해질 수 있다.

수사기간에 제한을 두지 말아야

문제는 어떤 내용의 특별검사제인가이다. 지금 정치권에서 논의되고 있는 정도로는 삼성일가를 둘러싼 불법의혹을 규명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청와대에서는 수사기간 200일이 너무 길다고 했다는데, 한심한 이야기이다. 그렇게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불법행위가 자행되었다면, 그리고 철저하게 증거를 은폐해왔다면, 그런 사건을 수사하는 특별검사에게는 수사시한을 제한하지 말아야 한다.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가 사실이라면, 200일 안에 조직적인 은폐를 뚫고 진실을 밝히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비자금 규모만 해도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고 로비의 규모도 엄청나다는 것이 김용철 변호사의 주장 아닌가? 따라서 특별검사의 수사기간에 제한을 두어서는 안된다. 그리고 수사대상도 제한을 두지 않아야 한다.

지금은 한 국가의 정치·사법·행정체계가 뒤흔들렸고, 최소한의 신뢰조차 무너진 상황이다. 그런데 수사기간에 제한을 두고 대상을 축소하려 한다는 것을 납득할 수 있는가? 미국은 클린턴 대통령에 대한 비리의혹(부동산투기, 직원해고, 정보 불법이용, 성추문)을 수사하기 위해 특별검사가 5년 동안 수사하도록 허용했다. 이란 콘트라사건에 대해서는 특별검사가 무려 7년에 걸쳐 수사를 했다. 그런데 국가의 근간을 뒤흔든 불법의혹이 제기되는 마당에 수사기간을 제한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그리고 특별검사를 추천하는 것도 대법원장이나 대한변호사협회가 아닌 객관적인 주체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 김용철 변호사를 징계하려는 논의가 있었던 대한변호사협회는 공정하고 객관적인 추천 주체가 되기 어렵다. 대법원장도 객관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런 점들을 감안해서 특검을 도입하려면 제대로 도입해야 한다.

양심과 용기에 바탕을 둔 광범위한 운동

이번에 드러난 문제는 삼성일가의 문제지만, 대한민국의 기득권구조의 문제이기도 하다. 재벌-관료-정치-언론의 유착에 의해 형성된 기득권연합의 실체가 이번에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의혹을 규명하고 기득권구조를 감시, 견제, 해체할 힘이 어디로부터 나오는가이다.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하에 광범위한 운동이 전개되지 않으면, 누가 수사하든 끊임없이 수사는 흔들릴 것이고, 진실은 어둠 속에 파묻힐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이번에 제기된 의혹을 규명하는 것은 대한민국이 삼성공화국이 아닌 ‘민주공화국’으로 거듭나기 위한 절체절명의 과제이다.

따라서 진실이 드러나고 실체가 규명될 때까지 우리 사회의 양심있는 이들은 용기있는 작은 행동을 주저하지 않을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서든 자신이 살아가는 작은 공간에서부터든, 의혹 규명을 요구하는 양심의 목소리가 힘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것만이 ‘양심과 영혼조차 돈으로 살 수 있다’는 잘못된 정신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지 못하게 하는 길이다.

2007.11.20 ⓒ 하승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