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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멈출 수 있는 힘

나희덕

나희덕 | 시인

2003년 7월 25일 헬리콥터에 매달린 피아노 한대가 첨벙, 알프스의 호수 속으로 떨어져 가라앉았다. 그것은 운반 사고가 아니라 프랑스의 피아니스트 프랑수아르네 뒤샤블이 51세의 나이로 은퇴를 선언하는 퍼포먼스였다. 그것도 모자라서 뒤샤블은 며칠 뒤 자신이 늘 입고 다니던 연미복을 불태우기도 했다.

이 기괴한 은퇴선언을 두고 당시 의견이 분분했다. 뒤샤블은 이 행위를 피아노에 베푸는 ‘세례’라고 하면서, 자신의 불순함을 씻어낼 일종의 의식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은퇴 이후에는 상업적인 연주를 그만두고 자전거에 키보드를 싣고 어린이와 병자, 죄수 들을 찾아다니면서 즉흥연주를 하겠다고 밝혔다. 소수의 클래식 애호가들을 위해 돈을 받고 연주하는 게 아니라 인생의 남은 기간을 자신의 예술적 요구에 충실하게 살면서 음악 자체를 순수하게 나누고 싶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이목이란 그리 너그러운 게 아니어서 뒤샤블의 은퇴 퍼포먼스는 새로운 음반을 홍보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얼마 전 귄터 그라스가 나찌 친위대에 복무했던 사실을 뒤늦게 고백하면서 자서전을 펴내자, 그에 대해 책을 팔기 위한 상술이나 위선적 행위라는 비난이 쏟아졌던 것과 비슷하다. 또한 자신이 직접 연주하던 피아노 대신 고물 피아노를 수장시킨 것도 비난의 이유가 되었고, 심지어 환경오염 운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처럼 가장 탈속적인 행위가 때로는 가장 세속적인 행위로 해석되기도 한다.

하지만 뒤샤블이 평소 자유를 추구하는 은둔형 예술가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러한 비난이나 억측은 지나치다는 느낌이 든다. 음악을 거래의 도구로 삼는 일을 중지하는 행위로서 그 정도의 퍼포먼스는 신선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일 아닌가. 사실 부와 명예를 얻은 연주자가 50대 초반에 공식적인 무대 뒤로 스스로 사라진다는 것은 그리 쉬운 선택이 아니다. 그는 아마도 자연인으로 돌아가 ‘직업’으로서의 음악이 아니라 ‘삶’으로서의 음악을 누리고 싶었던 것이리라. 그런 점에서 뒤샤블의 은퇴선언은 연주의 중단이 아니라 진정한 연주를 향한 출범식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며칠 전 우리 시대의 실천적 지성을 대표해온 리영희 선생이 한 신문사와의 인터뷰에서 일체의 지적 활동을 마감하겠다는 선언을 했다. 선명하고 올곧은 목소리로 현실의 부조리를 질타하던 그분의 글을 접할 수 없게 된 것은 서운한 일이지만, 나는 그런 선택이야말로 리영희 선생의 정신이 아직 젊다는 것을 반증한다고 느꼈다. 선생은 “자기가 할 수 있는 한계를 깨달을 때 이성적 인간이라 할 수 있고, 마치 자기가 영원히 선두에 서서 깨우침을 줄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은 오만”이라고 말했지만, 실제로 자신에게 닥친 한계의 지점을 정확히 알고 그것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정말 드물다. 나이가 들수록 자기확신이 강해지는 반면 반성적 기제는 약해지기 쉽고, 그로 인해 독단에 빠질 위험도 높아지기 마련이다. 그러기에 스스로 멈출 수 있는 힘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게 아니다. 그 힘은 선생이 온몸으로 한국현대사를 헤쳐오면서도 스스로 신화적 존재나 우상이 되는 것을 거부해왔던 역정 속에서 나온 것이다.

대학 은사의 퇴임식에서 들었던 한마디가 문득 떠오른다. 정현종 선생의 퇴임사는 시인의 마지막 인사답게 담박하고 여운이 있었다. 선생은 십여분 정도 말씀을 이어가다가 갑자기 “자, 그만 합시다. 실은 세상의 모든 말은 하다가 마는 겁니다”라고 끝을 맺으셨다. 그 말에 깃들어 있는 침묵의 기운이 오히려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었다. 하다 만 말, 피우다 만 꽃, 타오르다 만 사랑, 듣다가 만 음악…… 세상의 아름다움은 그 채워지지 못한 존재들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선생이 가르치다 만 제자로서 나는 스승의 하다 만 말을 지금도 되새김질하고 있다. 그러면서 아직 먼 일이기는 하지만, 이따금 퇴직 이후를 그려보며 어떻게 황혼의 시간을 보낼까 생각에 잠기곤 한다. 근무하는 대학에서의 퇴직뿐 아니라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다짐하는 몇가지가 있다. 첫째, 다른 사람이나 조건에 밀려나기보다는 스스로 물러나는 용기를 갖는다. 둘째, 더이상 글이 써지지 않는 때가 오면 조용히 펜을 내려놓는다. 셋째, 평생 일하고 쓰느라 고생한 나에게 은퇴 이후에 충분한 자유와 휴식의 시간을 선사한다. 부디 이십여년 후의 내가 오늘의 이 다짐을 기억하기 바라며……

2006.09.12 ⓒ 나희덕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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