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승용차 2부제와 ‘선진화’된 교통정책

이필렬

이필렬 / 방송통신대 교수, 과학사

지난 7월초 촛불집회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와 거의 같은 시기에 미국산 텍사스유 가격도 사상 최고인 배럴당 150달러에 도달했다. 잦은 실정으로 사면초가이던 이명박정부는 황급히 비상대책을 내놓기 시작했고, 7월 중순에는 1단계 대책을 실행에 옮기기까지 했다. 정부가 내놓은 비상대책 중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가장 많이 끈 것이 승용차 2부제이다. 승용차 2부제는 이미 공공기관에서 1단계 대책으로 시행되고 있고, 두바이유 가격이 배럴당 150달러를 넘어서면 2단계 대책으로 전국의 모든 승용차에 적용된다.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한 것이기는 하지만 승용차 2부제를 실제 시행했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 그리고 시행 첫날 총리가 2km 이상 거리를 걸어서 출근하고 서울시장이 지하철을 갈아타면서 출근한 것도 전시용이라고 폄하할 일만은 아니다. 과연 이명박정권은 청계천 수로건설에서 시작해 대불공단 전봇대 옮기기, 걷거나 지하철 타고 출근하기같이 당장 눈에 보이는 일을 실천하는 데는 탁월하다. 집권 초 배럴당 20달러이던 유가가 집권 말기에는 100달러로 올랐는데도, 유가상승의 원인을 대부분 국제정세의 불안과 투기자본 탓으로 돌리면서 유가가 곧 떨어질 것이라고 강변하던 노무현정권과는 차이가 있다.
[#M_ more.. | less.. |
민주주의에 반하는 승용차 2부제 강요

사실 모든 국민이 자발적으로 호응해주기만 한다면, 승용차 2부제는 석유소비를 5% 이상 확실하게 줄일 수 있는 아주 효과적인 제도이다. 그런데 여기서 핵심은 전국민이 자발적으로 호응할 것인가이다. 정부에서 각종 매를 때리면서 2부제를 아무리 강요한다고 해도, 국민의 자발적 참여가 없다면 이 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는 경제원리로는 시장경제가, 정치원리로는 민주주의가 지배하는 사회이다. 민주주의는 각성한 시민의 자발적인 참여에 기초하고 있다. 그러므로 다수 시민들이 즐겁게 참여하거나 동의하지 않으면 어떤 좋은 제도라도 실패하게 되어 있다.

2부제를 피할 수 있는 길은 많다. 이미 차를 두세대 보유한 부자들에게 2부제는 별다른 의미가 없다. 번호가 다른 차를 번갈아가며 타면 되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 모범택시를 예약해 타거나 아예 택시 한대를 전세 내는 것도 이들에게는 또 하나의 선택지가 될 수 있다. 그 정도의 경제적 여유는 없지만 큰 차를 한대 가지고 있는 사람은 경차를 두대 굴리거나 일반택시를 타는 방법이 있다. 경차 한대 정도 겨우 가지고 사는 서민들은 별 뾰족한 수가 없겠지만, 이들도 제도를 무시하고 급기야는 집단저항까지 하면서 피할 길을 찾을 것이다.

전국민에게 이틀에 한번씩만 승용차를 타라고 강요하는 것은, 광우병 발병가능 쇠고기의 전국적인 유통을 허락하는 것보다 훨씬 반민주적인 것이다. 지난 정권 때는 집권당에서 전국의 수돗물에 불소를 섞어서 공급하는 반민주적인 일을 추진했는데, 2부제의 반민주성도 이에 못지않게 크다. 석유를 훨씬 많이 소비하는 부자들이 아니라 오히려 서민들에게 고통을 준다는 면에서도 2부제는 민주주의 원리에 반한다.

승용차 2부제는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승용차를 버리고 대중교통과 도보와 자전거로 옮겨가지 않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자발성은 강제에 의해서는 생겨나지 않는다. 그 행동이 의미있고 즐거움을 줄 때만 나온다. 그것은 대중교통과 자전거를 타는 것이 편안하고 즐거울 때, 승용차가 아닌 다른 이동수단을 선택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화석연료 소비를 줄이고 그럼으로써 기후변화를 막는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을 때, 그렇기 때문에 자기 행동에 대해 일종의 자긍심을 갖게 될 때 발휘될 수 있을 것이다.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는 외국의 대중교통정책

소위 선진국 중에서 석유소비를 줄이기 위해 승용차 2부제 같은 강제적 제도를 도입한 나라는 하나도 없다. 그렇지만 그들이 그런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보다 훨씬 더 열심이다. 그들이 2부제든 10부제든 ‘네거티브’식 조치를 도입하지 않는 이유는 분명하다. 국민을 수동적인 존재로 만들고, 국민의 자발성을 죽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머무르고 있는 곳은 오스트리아의 포알베르크라는 인구 40만의 자치주이다. 이곳에서 나에게 다른 무엇보다 강한 인상을 남긴 것은 대중교통 씨스템이다. 넓이는 제주도의 두배 정도인데, 전지역이 하나의 대중교통 씨스템으로 연결되어 있다. 표 하나만 사면 끝에서 끝까지 80km가 넘는 거리를 모든 종류의 기차와 노선버스를 타고 이동할 수 있다. 초고속열차(ICE)까지 탈 수 있다. 요금도 그리 비싸지 않다. 주 전체를 하루종일 돌아다닐 수 있는 일일권은 19,000원 정도이다. 일주일권, 일개일궐, 일년권을 사면 요금은 그 순서대로 크게 떨어진다. 일년권은 원화로 환산하면 약 90만원, 한달에 75,000원 꼴이다. 부부가 함께 구입하면 한 사람은 절반만 내면 된다. 학생들에게는 학교 왕복 차비가 공짜이다.

자전거도 아주 타기 편하게 되어 있다. 기차에 자전거를 실을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자동차 통행이 뜸한 길을 제외한 대부분의 길에는 자전거도로가 있다. 자전거와 보행자만 다닐 수 있는 길도 많다. 아마 지역 끝에서 끝까지 자동차의 방해를 거의 받지 않고 자전거로 이동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개인수송에서 자전거가 차지하는 비율은 14%에 달한다. 전세계 최고수준이다.

이 지역 사람들도 물론 석유소비와 국제유가에 예민하다. 주정부에서는 석유소비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시민들이 설립한 에너지연구소와 함께 각종 정책을 개발하여 시행하고 있다. 그중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파씨브하우스(Passivhaus) 보급정책과 승용차 이용 감소정책이다. 파씨브하우스는 난방에너지를 보통 건물의 10% 정도밖에 소비하지 않는 건물이다. 포알베르크는 자전거 수송분담률뿐만 아니라 파씨브하우스의 밀도도 전세계에서 가장 높다.

승용차 이용을 줄이기 위해 주정부에서 도입하는 정책은 특별할 것이 없다. 대중교통과 자전거를 더 편리하게 탈 수 있도록 만들고, 그것을 이용하는 데 자부심을 갖도록 여러 매체를 통해서 홍보하는 것이다. 최근에 이곳에서는 자전거 수송비율을 더 높이기 위한 캠페인을 시작했다. “거리의 영웅을 찾습니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펼쳐지는 이 캠페인은 9월까지 자전거로 100km 이상 달린 시민을 대상으로 제비뽑기를 해서 상을 주는 것이다. 여기에는 20개의 도시와 4개의 큰 기업체가 참여하고 있고, 4천명 이상이 신청했다.

20개의 도시는 각각 시민들을 상대로 다양한 홍보활동을 펼치는데, 그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스위스와 리히텐슈타인 바로 옆에 있는 펠트키르히(Feldkirch, 인구 3만 2천명)라는 도시의 활동이다. 이곳에서는 올해를 대중교통과 자전거 이용하기의 해로 정하고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데, 그 덕인지 시에서 운영하는 버스 이용자 수가 작년보다 10% 이상 증가했다. 시내 곳곳에 세워져 있는 홍보포스터들도 꽤 재치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선진화’는 2부제로 달성되지 않는다

포알베르크에서는 2015년까지 승용차 이용률을 14% 줄이려고 한다. 반면에 자전거 이용률은 20% 이상 늘리려 한다. 아주 야심찬 계획이지만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강제적인 제도는 도입할 계획이 없다. 자전거길을 더 늘리고 더 안전하게 만들고 대중교통수단을 더 편안하게 만듦으로써,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승용차를 떠나도록 하려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선진화’는 2부제를 강요해서는 달성되지 않는다. 시민들의 자발성을 끌어낼 수 있는 다양한 제도가 도입되고, 시민들이 그것에 즐겁게 호응할 때에만 ‘선진화’는 이루어질 수 있다.

2008.8.20 ⓒ 이필렬

Latest posts by changbi (see a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