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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여성을 장식으로 삼는 사회?

김영희

김영희 | 문학평론가, 한국과학기술원 교수

어쩌다 외국 여행을 할 때면 한국 항공사의 비행기보다 외국 항공사의 비행기가 더 편하다는 느낌을 종종 받는다. 써비스니 친절이니를 두고 하는 말은 아니다. 써비스라면 IMF 이후 대폭 개선된 것 같으며 요즘 와서 별 불만을 느껴본 기억도 없다. 그보다 외국 항공사 비행기에는 직접 승객을 돌보아주는 승무원들 가운데 대개 나이 지긋한 여성이나 남성이 섞여 있는 데 반해, 한국 항공사 비행기에는 젊은 여성들 일색인 점이 영 마음에 걸려서다. 복장도 겉보기에 아름다울지 몰라도 움직이기에는 그리 편한 것 같지 않다.

이게 단순한 인상만은 아닌 모양이다. 근자에 기혼 여성 승무원이 대폭 늘어나기는 했다지만, 관련 연구자료나 지난 11월 인권위가 내린 응모연령 제한 개선권고를 보면 한국 항공사가 여전히 여타 국적 항공사보다 더 낮은 연령을 요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이 무슨 동양과 서양의 차이는 아니다. 가령 같은 아시아권에서도 홍콩의 캐세이퍼시픽 항공이나 아랍에미리트 항공은 신규 채용시 연령 상한선이 아예 없고, 말레이시아 항공은 28세, 비교적 낮은 편인 타이 항공도 26세이다. 그런데 한국 항공사들은 23~25세 이하로 한정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체격요건에서도 아시아 국적 항공사는 물론이고 서구의 항공사(대개 160cm)보다 더 큰 키(162cm)를 요구한다.

대중매체에서도 마찬가지다. 기혼 여성 앵커의 비율이 높아진다든가 여성 앵커의 역할이 커지는 등 달라지는 조짐이 여기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아직도 주요 시간대의 뉴스 진행자는 나이 지긋한 남성 앵커와 단정한 외모의 젊은 여성 앵커로 구성되는 것이 정석이며, 남성 앵커가 기자 출신인 반면, SBS를 제외한 공중파 방송사의 여성 앵커는 대개 아나운서 출신이다.

뉴스 전달에서도 성에 따른 역할 분담이 뚜렷하다. 남성 앵커가 톱뉴스를 포함하여 주요 뉴스인 정치, 국제관계 등 경성(硬性) 뉴스를 전하는 사이, 여성 앵커는 전혀 비치지 않다가 10여분 뒤에 등장하는 포맷이 전형적이다. 요 며칠간 한 방송사의 9시 뉴스를 보면, 여성 앵커가 아시안게임 소식을 전할 때가 돼서야 비로소 등장하도록 구성되어 성별 전환이 더욱 도드라진다. 뉴스마다 편제는 좀 다를 것이나 남녀 앵커의 역할 구분만큼은 큰 차이가 없는 듯하다. 외국에 나가면 가급적 그 지역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눈요기라도 해두는 편인데, 거기서는 여성 앵커들의 연령이 다양하며 남녀 앵커간의 역할 구분도 우리보다 덜하고 서로 자연스럽게 대화하고 소통한다는 인상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 사회에서 유독 이런 현상이 두드러지는 것일까. 이런 현상 뒤에는 돌봄의 역할이나 이른바 ‘감성노동’이 여성에게 더 적합하다는 고정관념이라든가 여성들의 ‘장식적’ 가치를 극대화하여 활용하려는 발상이 자리하고 있음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물론 이런 경향이 비단 우리 사회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같은 아시아권에서조차 우리의 이런 면이 더 심한 편이라면, ‘보편적’인 성별 고정관념의 타파를 지연하는 우리 사회 특유의 어떤 성향이나 기제 같은 게 있지 않은가 싶다.

무슨 명확한 답이 있지는 않으나, 우리가 유독 급속하고 압축적인 근대화를 밟아왔다는 점이 우선 떠오른다. 그 과정은 폭력적이기도 해서 일체의 이견이나 비판을 억누른 채 진행되었으며, 여성들의 목소리는 그 아래로 잠복할 수밖에 없었다. 여성 노동력이 동원된 것도 남녀차별을 타파한 결과라기보다 오빠나 남동생을 공부시키기 위해 딸이 희생하여 공장에 나가는 식으로 전통적인 성별 역할이 새롭게 관철된 결과였다. 남녀가 좀더 평등하고 다양한 관계를 맺어나가는 성별관계의 ‘근대화’는 폭력이 동반된 물질적 근대화의 물결에 밀려 정체되고 왜곡되었다. 근대화를 위에서 급속히 추진해나갈 때 이런저런 이데올로기가 활용되게 마련인데, 우리의 경우 이를 더욱 용이하게 만든 것은 물론 분단이라는 조건이었다. 진보적인 여성운동 역시 반체제적인 것과 동일시되며 오랜 단절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문제의 진원은 단순히 근대화의 속도만은 아닐 성싶다.

남한이 민주화로 접어든 지 이미 오래지만, 민주화가 전지구적 자본주의 체제로 더 깊숙이 편입되는 것과 맞물리면서 진정한 삶의 다양성이 꽃피기보다는 부와 성공이라는 물신의 지배가 더 심해지는 것 같다. 이 물신은 남한 사회에서 그야말로 획일적인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데, 그런 획일주의는 분단 속의 근대화가 낳은 권위주의의 자장에서 우리가 아직도 온전히 자유롭지 못함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여성문제의 제기나 해결이 여전히 지체 상태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 항공사 여승무원 채용에서의 자격요건은, 가령 과거에 고속버스 여승무원을 모집할 때와 근본적으로 달라 보이지 않는다.

여성들에게 전문성 이외에 여성 특유의 ‘장식적’ 요소, 이를테면 젊음과 용모 등을 요구하는 것은 결국 여성의 노동을 ‘정규노동’과 다른 무엇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런 근무 외적 요소를 강조하는 채용조건이 실제로 근무와 승진에서 남녀차등과 직결됨은 물론이다. 그렇다고 뉴스 캐스터나 행사 사회자 가운데 젊은 여성을 찾아보기 힘든 북한의 경우도 그리 바람직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 나름의 권위주의를 드러낼 뿐 아니라, 여성을 나이로 차별하기는 마찬가지라는 점에서 남한의 거울상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나이와 성별, 용모에 상관없이 자질과 경험에 따라 채용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난다면, 그것은 곧 남북 모두 그만큼 더 살 만한 사회에 접근했다는 중요한 표징이 되지 않을까.

2006.12.12 ⓒ 김영희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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