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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민 B. 카파이 외 『코딩의 귀환』

김태권

내년부터 학교에서 코딩을 배운다던데?
―야스민 B. 카파이 외 『코딩의 귀환』, 디뷰북스 2017

 

 

rjrjm2“어린 시절 부르던 노래들, 가사가 무섭지 않아?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랄지, ‘무찌르자 공산당’이랄지.”
“그럼. 난 ‘산수 시간’ 노래가 특히 끔찍했어.” 아내가 대답했다.
“어, 그 노래 몰라. 무슨 노랜데?”
“우리 동네에서는 고무줄 할 때 불렀어. ‘산수 시간 돌아왔다 종아리 걷어라 / 한대 두대 세대 네대 다섯 여섯 대 / 선생님 아파요 고만 때리소 / 이 녀석아 무슨 말이 그리 많으냐.’”
처음 듣는 노래였다. “그게 뭐야, 어허허.” 나는 실없이 웃다가 오금에 힘이 풀려, 마치 내가 종아리라도 맞은 듯 주저앉았다.

 

두들겨 맞는 산수 시간 대신 이런 수업은 어떨까. 초등학교 4학년 학생이 코딩(coding,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익혀 3학년한테 ‘분수’를 설명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만든다. 학습 게임을 기획하고 만들기도 한다. ‘교학상장’이라 했던가.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분수의 개념에 익숙해진다. 『코딩의 귀환』(최윤희 옮김) 3장에 소개된 미국 초등학교의 일화다.

 

그랬구나. 코딩을 배우면 수학 공부에 도움이 되긴 하겠다. 다른 교과도 마찬가지고. 물론 코딩을 배우면 코딩 실력도 늘 것이다. 그러나 오해 마시길. 코딩을 가르치는 진정한 목적은 다른 데 있다. 아이들이 왜 코딩을 배워야 하는가? 이 책에 따르면, 사고력을 키우기 위해서다. 친구들에게 보여줄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아이들은 엔지니어처럼 사고하는 법을 익힌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왜 코딩을 배우게 됐나

 

한때 미국은 아이들에게 코딩을 가르쳤다. 한국 일부 학교도 따라했다. 그때 접한 ‘베이직’ 프로그래밍을 기억하는 분들이 아직도 있을 것이다. 한동안 흐지부지했는데, 이제 미국이 다시 코딩을 가르치고 있다(이 책은 그 공을 씨모어 패퍼트Seymour Papert라는 교육자에게 돌린다). 그래서일까. 한국도 2018년부터 코딩 교육이 정규 과정으로 채택된다고 한다.

 

미국사회에서 코딩 교육은 무슨 의미인가? 코딩 교육 때문에 한국사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궁금하다. 그래서 나는 『코딩의 귀환』을 읽었다. 이 책 2장과 7장은 페퍼트의 교육철학을 정리한다. 3장, 4장, 5장, 6장은 본론이다. 각각 ‘새로운 개인적, 사회적, 문화적, 실체적 요소’를 다룬다고 한다.

 

글쎄, 무슨 이야기인지 솔직히 모르겠다(저자도 걱정인지 똑같은 설명을 반복한다). 여전히 감이 오지 않아 이 책을 천천히 읽어보았다. 분수 학습 프로그램의 예를 보자. 아이들의 수학과 코딩 실력만 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은 사고하는 법을 배웠다(3장). 혼자서 코딩할 때보다, 친구들을 위해 친구들과 함께 코딩할 때, 커뮤니티 안에서 아이들은 더 발전했다(4장). 커뮤니티의 몸집이 커지며 새로운 문제가 생긴다. 특히 저작권 문제에 주목해야 한다(5장).

 

그리고 6장, 로봇이나 신기한 전자 장치. 첩보영화나 SF영화에서 보던 꿈만 같은 물건들을 아이들이 직접 구상하고 만든다. 예를 들어 ‘마인드스톰’을 이용해서 말이다. 조립하면 로봇이 되는 레고 블록. 마인드스톰은 탐나는 물건이다. 문제는 가격. 레고도 비싸고 로봇도 비싸다. 레고에서 나온 로봇이니 오죽할까. 교과 과정에 이러한 내용이 들어가면 빈부격차가 생기지는 않을까.

 

이 책의 저자들도 이런 문제가 걱정이다. 계층 격차는 이미 미국에서 지적된 문제다. 옛날에는 중산층 아이들만 컴퓨터를 만질 수 있었다. 접근성의 격차. 그래서 학교마다 컴퓨터를 깔아주었다. 어떻게 됐을까? 이제 모두가 컴퓨터를 만지기는 한다. 그러나 유복한 아이들이 코딩을 익히는 (즉, 사고력을 키우는) 동안, 가난한 아이들은 바로 취업해 써먹을 사무용 프로그램을 익힌다나. 젠더와 인종 문제도 마찬가지. 잘사는 집 백인 남성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아이들에 비해 질적으로 좋은 교육을 받는다. 코딩 교육 외에도 그렇지만 말이다.

 

장밋빛 미래? 문제는 코딩이 아니다

 

그래도 희망을 버리지 말자고 이 책은 주장한다. 기술이 문턱을 낮춰주리라 기대하자. 어려운 환경의 아이들도 쉽게 코딩을 접할 수 있다. 기술이 발전하면 코딩도 쉬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 가운데 하나다.

 

이 책에 따르면 미래는 장밋빛이다. 적어도 미국의 교육현장에서는 말이다. 한국사회에서는 어떨까. 코딩 교육이 정말로 사고력을 키우는 좋은 방법이고, 기술의 발전으로 누구나 양질의 코딩 교육을 받을 상황이 된다고 쳐도, 좋은 뜻으로 시작한 일이 ‘헬조선’에서 열매를 맺을 것인가. 걱정되는 일 몇가지를 적어본다.

 

우선 세대 격차. 이 책은 기술 발전이 코딩 교육의 계층 격차를 줄일 수 있다고 본다. 사례도 풍부하다. ‘로고’와 ‘앨리스’, ‘스크래치’ 등의 쉬운 랭귀지로 ‘루프’와 ‘서브루틴’ 등의 개념을 익혀 ‘애플리케이션’뿐 아니라 ‘아두이노’와 ‘마인드스톰’을 누구나 쉽게 구동한다는 것. 잠깐, “누구나”라고? 이 이름들을 듣고 안심할 사람이 나이 든 세대에 몇이나 있을까? 그러잖아도 세대 격차가 큰 사회다. 노인 문제가 커질 수도 있다.

 

교육의 내용과 방식도 문제다. 취지야 어떻든, 정규 교과 과정이 되면 결국 ‘대학 입시’에 직결된다. 내신, 줄세우기, 과열, 사교육, 스펙…… 무시무시한 말들이 뇌리에 스친다. 애초에 한국사회에서 코딩이 상징하던 바가 무엇인가. 한때 ‘IT 벤처 열풍’이 불던 시절에는 돌잡이 때 잡으라고 돌상에 마우스를 올려두기도 했다. 지폐 옆에 나란히 말이다. 이 책 한국어판 띠지도 수상하다. 스티브 잡스, 오바마, 빌 게이츠, 일런 머스크 네 사람 얼굴이 띠지에 찍혀 있다. 한때나마 코딩으로 날렸던 사람은 빌 게이츠 한명뿐이다(세간의 오해와 달리 스티브 잡스는 코딩으로 유명해진 사람이 아니다). 네 사람이 한국사회에서 가지는 공통된 의미는 딱 한가지다. “성공한 미국남자”라는 것. 하지만 “코딩은 성공의 지름길”이라는 이러한 생각은, “코딩은 사고력”이라는 이 책의 원래 취지와는 거리가 멀다.

 

나는 지금 코딩 교육을 하지 말자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코딩이 아니라 한국사회다. 결국 교육의 문제는 그 사회의 문제가 반영된 것이기 때문이다. 입시니 성공이니 이런 귀찮은 이야기는 잠시 잊고, 우리 아이들에게 컴퓨터와 로봇을 장난감처럼 만지작거릴 시간을 주면 어떨까? 우리 어린 시절 줄넘기 하던 때처럼 말이다. 요즘 같은 세상에 철없는 소리라고 욕을 먹을지 모르겠지만. 

 

김태권 / 만화가

2017.6.28. ⓒ 창비주간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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