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여성을 위한 모임 『내 안의 여성 콤플렉스 7』

백영경

한국 여성의 내면에 드리워진 여전한 불평등의 그림자
– 여성을 위한 모임 『내 안의 여성 콤플렉스 7』

 

 

‘김치녀’에게 물어봤어?

 

소위 ‘여성혐오’ 현상을 분석한 얼마 전의 MBC <PD수첩> ‘2030 남성보고서 그 남자, 왜 그녀에게 등을 돌렸는가’ 편에 대한 반응이 크게 엇갈렸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방송은 더 비싼 명품가방을 요구하며 남자친구에게 화를 내는, 누가 봐도 어이없어 보이는 상황의 ‘김치녀’ 동영상으로 시작한다. ‘남성보고서’라는 제목에 걸맞게 <PD수첩>은 방송의 상당부분을 할애하여 온라인에 만연한 여성혐오적인 공격이나 유명인들의 여성비하 발언의 원인을 남성의 입장에서 설명한다. <PD수첩>은, 과거 누렸던 특권을 상실했음에도 군복무와 데이트나 결혼비용 면에서 여전히 과중한 부담을 지고 있는 한국 남성들의 박탈감이 여성혐오 현상의 근원에 있다고 보면서, 역차별에 분노하여 ‘양성평등’을 요구하게 된 남성들의 입장을 친절하게 변명한다. 방송 이후 <PD수첩> 자체가 여성혐오를 전파하고 있다는 반발이 거세게 터져 나왔지만,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방송이 김치녀에 대한 공격을 대놓고 옹호한 것은 아니다. <PD수첩>은 혐오는 강자를 대상으로 하지 않으며, 여성혐오란 사실 여성을 포함한 사회적 약자들에게 자신의 불안정하고 불안한 감정을 투사해서 해소하고자 하는 욕망이라는 지적을 잊지 않았다.

 

그렇다면 나름 균형을 잡으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PD수첩>의 시선이 여성혐오를 대변하는 것으로 느껴지는 건 왜일까? 그것은 여성혐오적인 발언을 친절하게 추적하던 방송 어디에서도 ‘김치녀’들을 이해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담으려는 노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언론이 김치녀 현상을 다루건 최근 공공장소에서 버릇없는 아이들을 방치하는 ‘버러지’ 같은 엄마들, ‘맘충’(mom蟲) 논란을 다루건 간에, ‘개념 없다’고 이미 낙인찍힌 여성들에게는 스스로를 설명할 수 있는 기회가 그들을 노골적으로 비하하고 혐오하는 집단에 주어지는 만큼조차 허락되지 않는 게 현실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남자보다 낫다는 알파걸과 골드미스부터 슈퍼맘과 성형중독 인조미인들까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이 시대 한국 여성들의 내면심리는 무엇일까? 당신은 성공신화나 비난 외에 여성들의 속내에 대해 얼마만큼 알고 있는가? 『내 안의 여성 콤플렉스 7』 (휴머니스트 2014)은 많은 사람들이 욕할 뿐 그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는 한국 여성들의 심리상태를 그들의 콤플렉스라는 키워드를 통해 볼 수 있도록 해주는 책이다.

 

지난 20년, 여성들의 삶에 일어난 변화

 

『내 안의 여성 콤플렉스 7』은 사실 지난 1992년 발간되어 착한 여자 콤플렉스, 신데렐라 콤플렉스, 슈퍼우먼 콤플렉스, 맏딸 콤플렉스 같은 용어를 유행어로 만들어냈던 『일곱 가지 여성 콤플렉스』의 저자들이 다시 모여 펴낸 후속작이다. 여성들이 스스로를 억압하는 심리적인 기제들에 대해 이를 그저 개인적인 특질로만 간주하던 당시 상황에서 저자들은 서양의 여성과도 다른 한국 여성의 심리적 특징은 가부장적인 억압과 여성이 처한 불평등한 현실의 결과물임을 주장해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그로부터 20여년이 흐른 지금, 저자들은 설문과 인터뷰를 통해 다시 한국 여성들의내면심리를 면밀히 들여다봄으로써 그간 여성의 삶은 어떻게 변화하였으며 과연 남성과 여성은 평등한 삶을 살고 있는지, 그리하여 한국의 여성들은 전보다 콤플렉스에서 벗어났는지를 묻는다.

 

이 책은 오늘날 한국 여성의 삶에서 변화한 것과 변화하지 않은 것을 짚어간다. 우선 가장 크게 변화한 것은 여성들의 삶의 시간표이다. 한국 여성들은 대학진학률이 남성을 앞설 만큼 학업성취에서 차이가 없어지면서 교육 불평등에서 벗어난 것으로 보인다. 또한 결혼과 가정보다는 직업적 성취에 대한 열망이 높아졌을 뿐 아니라, 실제로 점점 더 많은 여성이 고용시장에 뛰어들면서 여성과 남성의 생애주기는 더욱 비슷한 양상으로 변화하고 있다. 결국 교육현장과 노동시장에서 여성과 남성은 평생에 걸쳐 동료이자 경쟁자가 되면서, 기존의 성역할 구조는 무너져가는 것이다. 하지만 여성들은 계급과 계층에 따라 일, 복지, 가족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양극화된 삶을 살고 있다. 남성의 영역에서 성취를 이룬 여성이 늘어난 동시에 여전히 불안한 일자리, 여성적인 일자리에서 빈곤을 벗어나지 못하는 여성들이 존재한다. 자녀가 있는 직장 여성들은 여전히 사회생활과 육아 사이에서 줄타기를 할 수밖에 없으며, 결혼과 성에 대한 이중적인 관념은 더욱 은밀하고 세련된 형태로 여성의 삶을 옭죄고 있다. 바람직한 배우자 상이나 연애관계 등 이성애 관계에서 작동하는 남녀의 불평등은 노동세계의 그것보다 훨씬 후진적이고 은밀하며 끈질기다는 것이 『내 안의 여성 콤플렉스 7』의 저자들이 지적하는 바다.

 

우리 시대의 남과 여

 

사실 많은 것이 변한 것 같아도, 남녀에 대한 고정관념 속의 현실에서는 여성의 성취가 성취가 아니게 되는 상황은 매우 낯익은 것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남성이 대체로 여성에 비해 학력이 높고 직업이 나아서 여성 배우자를 고르는 위치에 있었다면, 이제는 여성의 사회적 성취가 남성에 대등해지니 결혼할 만한 잘난 남자가 귀해진 결과로 그들은 여전히 귀한 몸이다. 많은 가정에서 아들과 딸을 차별하지 않게 되었다고 하지만, 엄마는 시집간 딸의 뒷바라지로, 딸은 친정 부모의 노후까지 맡아 서로 팍팍한 인생인 경우도 많다. 결혼시장에서는 여전히 남성은 직업, 여성은 외모와 나이가 중요하게 취급되며, 딸은 가족으로부터 독립하기가 어렵다. 과거보다 나아진 것 같은데 나아지지 않은 이러한 상황에서 여성들은 실질적인 차별이 감소되긴커녕 오히려 안팎으로 더 고달파졌다고 느끼는 반면에, 같은 상황에 대해 남성들은 여성들의 삶이 과거보다 얼마나 나아졌는지를 들먹이며 요즘 여성들의 성공으로 자신의 입지가 좁아졌다고 느끼곤 한다.

 

『내 안의 여성 콤플렉스 7』은 이러한 상황에서 요즘의 한국 여성들은 착한 여자가 되고 싶지는 않지만 필요하다면 착한 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자신이 가진 젊은 몸이나 여성스러움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한다고 말한다. 남성에게 생계를 의존하기 어려워진 시대다보니 이제 여성은 스스로의 경제적 독립에 큰 가치를 두며, 조건 좋은 남자가 아니면 결혼은 안하는 게 낫다는 현실적 판단을 내려버린다는 것이다. 특히 성공은 자기 하기에 달렸다는 신자유주의적 시대정신 속에서 여성들 역시 성취에 대한 큰 압박을 받게 되자, 이들은 이제 자신이 가진 여성적인 특질을 콤플렉스라기보다는 전략적 자원으로써 어떻게 활용할지에 골몰하게 된다. 그런데 여성들은 자신의 전략적 선택을 남녀 사이에 여전히 존재하는 불평등의 결과라고 보는 데 반해, 남성들은 여성들이 타산적이고 이중적인 태도로 이득을 보고 있다며 분노를 보이기도 한다. 이렇게 차별받는 존재로서의 여성에 대한 상반된 시각이 남성과 여성을 갈라놓고 있다는 게 이 책의 지적이다.

 

차별에서 혐오로. 불평등은 지속된다

 

『내 안의 여성 콤플렉스 7』이 결론으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지난 20년간 표면으로 여성이 이룬 것처럼 보이는 평등에 가려진 이면에 존재하는 강고한 불평등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언뜻 보기에 모순되어 보이는 현대 한국 여성들의 행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들의 내면심리를 구조화하고 있는 바로 이 불평등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20여년을 돌이켜볼 때 호주제가 폐지되고 남녀차별 금지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는 등을 통해 제도적인 영역에서 여성에 대한 명시적인 차별이 점점 감소하는 추세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일 테지만, 여성에게 나타나는 어떤 특질을 일반화하여 여성들 전체를 공격하고 비하하는 여성혐오는 차별의 감소에도 불구하고 혹은 차별의 감소 때문에 더더욱 기승을 부리는 중이다. 동시대를 살아가면서도 남성들은 과거와 비교해서 점차 여성에게 유리해지는 현실을 보는 반면, 여성들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한 불평등을 읽어내니 갈등이 빚어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렇듯 여성에 대한 명시적 차별이 감소한 자리에 여성에 대한 혐오가 만연한 현실은 여성에 대한 차별적 관념이 얼마나 강고한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이러한 고정관념 자체가 불평등을 만들어내는 기제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따라서 이 책의 저자들은 남성과 여성에 대한 기존의 관념을 그대로 두고 거기에 얽매인 채 여성적인 특성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것만으로는 여성의 현실이 나아질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보다는 현재 여성들이 보이는 심리적 특질들이 이 사회의 구조 속에서 만들어진 것임을 자각하고 사회가 강요하는 여성다움과 남성다움의 속박에서 벗어나야만 한다는 것이 저자들의 주장이다.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찾아서

 

이러한 결론은 어떻게 보면 딱히 새로울 것이 없다고 느껴질 수도 있고, 현대 여성들의 콤플렉스에 대한 이야기 역시 조금은 익숙하다 느낄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특히 지난 20년간 늘어난 이성애적 결합 바깥의 성적 실천에 대한 내용이 담기지 않은 것은 이 책의 아쉬운 부분이다. 그럼에도 이 책에는 비슷한 듯 서로 달라져버린 각 세대 간의 생각이나 어느새 오래된 과거로 느껴지기도 하는 그간의 변화를 찬찬히 추적하는 미덕이 있다. 무엇보다 책을 따라 읽다보면 20년 동안 남성과 여성의 삶이 그렇게 많은 변화를 겪었음에도 여성다움과 남성다움이라는 게 무슨 자연적이고 불변하는 가치인 양 서로 고집하는 것 자체를 우스워 보이게 하는 힘이 있다. 우리 시대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의 덫에 걸린 여성과 남성 들은 이미 현실에서 이루기 어려운 여성다움과 남성다움을 상대방에게 요구하면서 서로의 삶을 충분히 어렵게 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내 안의 여성 콤플렉스 7』은 우리 시대 여성뿐 아니라 남성들이 처해 있는 곤경을 생생하게 드러내주는 책으로서, 남녀가 함께 평등한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찾는 데 작은 길라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백영경 / 한국방송통신대 교수, 문화인류학

2015.8.19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