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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외를 정당화하는 고전적인 방식

황정아

예외를 정당화하는 고전적인 방식

-영화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황정아

황정아

*본문에 영화 「시카리오」의 결말부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탈옥을 두번이나 한 바 있는 멕시코 ‘마약왕’의 체포 소식이 주초에 주요 해외뉴스로 여기저기서 소개되었다. 그가 자기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고 싶어했으며 배우 숀 펜이 비밀리에 그를 인터뷰했다는 사실이 이 소식을 더 흥미진진하게 만들었다. 범죄자와의 인터뷰에 연루된 도덕성 문제가 새삼 거론되기도 했다. 현재 국내 상영 중인 드니 빌뇌브 감독의 2015년작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가 다룬 ‘마약과의 전쟁’에도 멕시코 마약 카르텔이 표적으로 등장한다. 몇년 전 개봉한 이 감독의 영화 「그을린 사랑」(2010)이 폭력에 관한 탁월한 텍스트였다면 이 영화는 오늘날 이른바 ‘법질서’가 놓인 상황을 잘 보여주는 텍스트다.

 

지키기 위해 위반한다는 논리

 

법의 부패나 무능을 그린 영화는 숱하게 있었고 사적 응징이 법질서의 빈자리를 채우는 이야기도 무수했다. 타고나기를 올곧고 유능한, 혹은 어쩌다 정의감이나 복수심에 휩싸인 개인이 법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떠맡는 식이다. 법질서를 대표하는 인물들이 은밀히 저지르는 불법에 대한 폭로도 중요한 요소로 포함될 때가 많다. 「시카리오」가 그런 식의 전개를 벗어나는 지점은 쉽게 포착된다. 여기서 법질서의 공식 집행자들은 부패와 거리가 멀고 무능하다고도 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그들 일부가 불법행위를 저지른다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합법행위가 감당하지 못하는 법질서 유지를 위해서,라고 되어 있다. 음지에서 고든 형사를 도우며 고담시를 지킨 ‘다크 나이트’ 배트맨이 한 일이 이런 게 아니던가. 하지만 「시카리오」에서 ‘불법적으로 법을 지키는’ 일은 사적 개인(들)에 의해 행해지지 않으며 특별히 음지에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실상 이 영화는 법에 관한 텍스트로 읽어줄 것을 드러내놓고 요구한다. 여기서 합법과 불법 사이의 경계는 끊임없이 환기되고 또 끊임없이 무너진다. 영화 초반에 영문도 모른 채 상부에 호출된 FBI 요원 케이트와 레지는 자신들의 임무수행이 ‘규정대로’(by the book)였는지 재차 자문한다. 마약 카르텔이 무참히 살해한 시신 수십구의 발견을 계기로 구성된 작전팀에서 케이트가 줄곧 반복하는 문제제기는 작전수행 방식이 불법적이라는 점이다. 이 대립구도는 결말까지 이어진다. 불법 사실을 보고하겠노라 공언한 케이트에게 시카리오 곧 암살자로서 불법행위의 핵을 담당한 알레한드로가 찾아와 총을 겨누며 이 작전이 ‘규정대로’ 진행되었다는 서류에 서명하게 만든다. 알레한드로는 여기서 이러지 말고 아직 법이 존재하는 어느 구석에나 가보라고 점잖게 조언함으로써 이미 굴복한 케이트를 ‘두번 죽이고’ 떠난다.

 

「시카리오」에서 법을 준수하고자 애쓰는 유능한 요원 케이트는 작전에 참여한 이후 어리둥절하거나 무력하거나 심지어 보호받는 대상으로 급격히 전락하는 반면, 작전팀이 행하는 불법은 매우 조직적이고 공공연하며 목표를 효율적으로 달성하는 듯 보인다. 애초에 케이트를 합류시킨 이유가 ‘형식상으로’ 규정을 준수하기 위해서였다는 것, 또 부득부득 그녀의 서명을 받아 ‘서류상으로’ 합법절차를 구비하는 데서도 법집행 시스템 안에 엄연히 들어와 있는 불법임이 확인된다. 팀의 소속이 어딘지 묻는 케이트에게 작전 책임자 맷은 법무부라고 했다가 국무부라고도 하고 때로 국방부라며 되는 대로 주워섬기지만 딱히 어디라고 말할 수 없다 해도 정부조직의 라인을 벗어나 존재하는 팀은 분명 아니다. (이런 식의 조직운영은 이제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온 데 간 데 없어진 진짜 문제들

 

조르조 아감벤은 ‘예외상태’를 설명하면서 그것이 “법률의 적용은 정지되지만 법률 자체는 효력을 갖는 영역을 창출”(『예외상태』, 김항 옮김, 새물결 2009, 65면)한다고 했다. 스스로는 법을 위반하지만 그렇다고 무법상태를 만들어내는 것도 아니라는 이야기다. 이 영화에서 불법이라는 예외가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방식은 케이트의 확신을 서서히 무너뜨리는 형태로 나타난다. 마약 카르텔이 저지른 범죄의 끔찍한 참상이 계속 등장하고 첫 임무 지역인 (미국 법의 관할권도 아닌) 멕시코 후아레즈가 밤마다 총과 폭탄의 불꽃놀이가 벌어지는 혼란의 소굴임이 강조된다. 맷은 망설이고 항의하는 케이트에게 이 작전이 ‘진짜 책임자’를 잡을 수 있는 유일한 방도라고 강조하며 이런 식이야말로 ‘미래’니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으리라 일갈한다.

 

법의 위반을 정당화하는 ‘합법적’ 논리는 이렇듯 늘 법질서 안정이니 민주주의 수호니 국가 보위(최근에 추가된 항목으로 ‘혼의 정상화’)니 하는 명분을 들먹인다. 그런 논리가 전제하는 바는 법질서나 민주주의나 국가 혹은 우리의 혼이 피치 못할 불법행위를 통해 긴급히 보호해야 할 정도로 연약하고 무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시 아감벤을 인용하자면 “긴급하고 예외적인 상황이란 어디까지나 긴급하고 예외적이라고 선언되는 상황일 뿐”(62면)이다. 이 영화에서 케이트가 급격히 무력해지는 시점은 작전팀에 들어가는 그 순간부터다. 맷과 알레한드로가 행하는 법질서 수호는 바로 그 법질서에 대해 어떤 마약 카르텔보다 큰 타격을 입힌다. 그렇게 해서 고작 달성하는 바는 특정 마약 카르텔의 압도적 우위를 보장하여 상대적으로 덜 시끄럽게 만드는 일이다. ‘진짜 책임자’를 처벌하는 목표 따위는 애초에 안중에 없다. 현상유지에도 못 미치는, 현상유지처럼 보이는 현상을 유지하는 데 불과한 것이다.

 

그러니 진짜 무력한 것은 어느 쪽인가. 법질서의 안정은 법질서보다 무력하며 민주주의의 수호는 민주주의보다 무력하며 혼의 정상화는 혼보다 무력하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목표로 내건 바를 결코 수행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가 아무리 심각하고 근본적인 해결이 아무리 요원해 보이더라도 야금야금 잠식하는 예외상태를 우리의 미래로 받아들여서는 안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봐, 케이트, 그들의 허세에 넘어가지 말라고.

 

 

황정아 / 문학평론가, 한림대 한림과학원 HK교수

2016.1.13 ⓒ 창비주간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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