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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 정말 대안이 없을까

이필렬

이필렬 / 방송대 교수

 

사용자 삽입 이미지‘원자력, 대안은 없다.’ 얼마 전 한겨레신문 1면 하단을 가득 채운 책 광고 제목이다. 저자는 프랑스의 원자력 전문가라고 한다. 한국의 이름있는 원자력 전문가들도 추천과 감수의 말을 덧붙였다. 이들도 한결같이 원자력 말고는 대안이 없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특히 프랑스에 대해서는. 원자력이 아무리 위험하다고 해도 생활필수품인 전기의 80%를 원자력으로 만들어내는 나라에서 무슨 대안이 가능하겠는가? 원자력을 가지고 원자무기를 만들고, 전기를 생산하고, 수출산업을 육성하고, 수십만개의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프랑스에서, 대안이 있으니 원자력을 폐기하자고 말하는 것은 정신나간 짓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주장은 좌파와 우파, 원자력산업 종사자와 그들의 강력한 노동조합, 발전소 주변지역 주민들의 비난으로 만신창이가 될 것이 틀림없다.

 

프랑스와 독일이 보여주는 원전의 두 미래

 

‘원자력, 대안은 없다.’ 한국에 대해서도 틀린 말이 아니다. 원자력이 전기의 35%를 공급하고, 20년 후에는 60%를 공급하게 될 뿐 아니라, 새로운 성장동력과 수출산업으로 극진히 대접받는 나라에서 그 대안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한가지 위안으로 삼을 만한 사실은 우리 원자력 전기의 공급 비중이 아직 프랑스 수준인 80%에는 크게 못 미친다는 점이다.

 

1998년 독일에서 원자력 폐기를 약속한 사민당과 녹색당이 정권을 잡았을 때 독일의 원자력 전기 비중은 약 30%였다. 지금의 한국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었던 것이다. 이때 그들은 ‘원자력, 대안은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원자력 폐기를 추구했다. 그 결과 원자력의 비중은 지속적으로 줄어들어 2010년에는 18%로 떨어졌다. 그리고 2011년 후꾸시마 사고 후에는 좌파와 우파의 만장일치로 원자력 폐기를 재확인했다.

 

독일의 1998년을 우리의 2011년으로 보면, 우리에겐 아직 희망이 있다. 원자력의 비중이 비슷하고, 따라서 대안의 가능성을 짓밟을 만한 수준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 수십년간 지속적으로 원자력 전기의 비중을 줄여갈 수만 있다면, 원자력 발전을 폐기하고 대안을 실현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런데 10여년 전 원자력발전 폐기를 결정했을 때의 독일과 현재의 우리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당시 독일의 전기소비 수준이 지금 우리의 전기소비 수준보다 훨씬 낮았다는 점이다. 또 한가지 큰 차이는 독일의 전기소비는 1998년 전후 10년간 거의 변함이 없었지만, 한국의 전기소비는 지난 10년 동안 100%가량 증가했고, 앞으로 10년 동안 다시 50% 정도 증가하게 된다는 것이다.

 

전기소비 감소 없다면 원전 폐기도 불가능해

 

지금 같은 추세로 전기소비가 늘어난다면 우리에게 대안은 없다. 현재 우리의 1인당 전기소비는 독일의 거의 1.5배다. 10년 후에는 2배가 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원자력의 폐기가 아니라 신속한 증설이 훨씬 합리적인 선택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는 원자력발전과 원자력 전문가들에게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볼모로 잡힌 채 언제든지 방사능 재앙을 당할 수 있다는 각오를 가지고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우리가 만일 진정으로 대안을 원한다면 무엇보다 먼저 할 일은 전기소비를 줄이는 것이다. 태양광이나 풍력으로 전기를 생산한다 해도 소비 감소가 뒤따라야 효과가 발휘된다. 소비가 지금처럼 가파르게 증가하는 한, 4대강사업을 하듯 전국 곳곳을 파헤쳐서 태양광발전소와 풍력발전기를 세워도 원자력 폐기는 불가능하다.

 

그러면 어떻게 소비를 줄일 것인가? 전기절약운동도 필요하고, 터무니없이 낮은 전기요금을 올리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그러나 이런 방식을 통한 절약은 피동적인 것이어서 오래가지 못하며 원자력 폐기와 에너지전환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어렵다. 원자력 폐기가 이루어지려면 수많은 사람들이 수십년에 걸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혁신적인 방식의 운동이 나와야 한다.

 

혁신적 운동과 시민 참여 있어야

 

원자력 폐기는 독일과 스웨덴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독일에서는 수많은 시민이 수십년 이상 지속적으로 원자력을 공부하고 비판, 감시하며 대안을 실천한 후에야 원자력 폐기가 성취되었다. 스웨덴에서는 이미 1980년에 원자력을 폐기하기로 결의했지만, 이후 시민들이 공부와 감시를 소홀히하고 대안의 실천을 게을리한 결과 30년 후인 2010년에는 원자력 폐기의 폐기라는 반동을 맞고 말았다. 독일에서도 2010년 가을에 원자력산업과 보수정당의 담합으로 위기가 있었지만 대안을 믿는 시민들은 후꾸시마 사고 후 극적으로 반동을 몰아내고 원자력 폐기를 다시 쟁취했다. 반면에 스웨덴 시민들은 여전히 원자력의 부활을 용인하고 있다. 전기의 50%가량을 원자력에 의존하는 그들도 대안이 없다고 체념하기 때문인지 모른다.

 

지금 한국에서 에너지전환을 이끌어낼 만한 혁신적인 아이디어는 보이지 않는다. 녹색당 창당 이야기가 들리지만, 창당이 수많은 사람을 원자력 폐기에 동참하게 만들 수 있을 만큼 혁신적인 것 같지는 않다. 원자력을 적극 반대하는 환경단체들의 활동도 예전보다 조금 활발해진 것 말고는 거의 달라진 점이 없다. 새로운 인물, 새로운 활동이 등장해야 대안의 숨통이 트일 것 같은데 아직 그럴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종종 원자력 폐기와 에너지전환을 정부에 요구한다. 그러나 그것은 정부가 아니라 오직 시민들의 힘에 의해서만 성취될 수 있다. 그러므로 다시 핵심은 많은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는 새로운 움직임이다.

 

2011.7.27 ⓒ 창비주간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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