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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의 실용외교와 마잉주의 활로외교

백영서

백영서 / 연세대 사학과 교수, 중국사

지난 3월 22일 치러진 타이완 총통선거에서 야당인 국민당 마잉주(馬英九) 후보가 경쟁자를 16.9%나 앞지르고 58.45%의 지지를 얻는 압승을 했다. 우리 언론의 보도를 보면, 그의 승리와 이명박 대통령의 승리가 여러 면에서 유사하다고 강조한다. 두 나라를 장기 지배했던 정당이 각각 10년과 8년간의 야당생활 끝에 민주화세력을 누르고 정권을 재탈환했다는 외형적인 특징뿐만 아니라, 경제를 제일의 공약으로 내걸고 있는 등 여러가지 측면에서 공통점이 거론되고 있다.

사실 한국과 타이완의 현대사를 비교해보면 흥미로운 공통점이 더 많이 드러나는데, 1987년 계엄령 해제 이후의 타이완과 6·29선언 이후 한국의 민주화의 길 20년만 봐도 유사한 점이 참으로 많다. 일본 『아사히신문』 3월 15일자 타이완 선거 관련보도에서는 1980년대 이래 두 나라 민주화과정의 비교표가 실렸을 정도이다.

일본 언론까지 이렇게 두 나라를 비교하고 나선 직접적인 이유는 타이완 선거에서 한국과의 비교가 중요한 쟁점이 되었기 때문이다. 포퓰리즘 정치라고 비판받은 노무현 전 대통령은 천슈이볜(陳水扁) 총통을, 이대통령은 국민당 총통후보 마잉주를 각각 연상시킨 모양이다. 이러한 여론을 의식해 총통후보자 토론회에서 마잉주는 경제발전에서 “한국에 졌다”고 여당인 민진당(民進黨)의 경제실정을 비판해 효과를 거두었다. 일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인 한국에 4천달러 뒤졌다고 불만인 타이완인들의 마음을 잡기 위해 마잉주 후보는 이대통령의 ‘747정책공약’과 유사한 ‘633플랜'(성장률 6%, 국민소득 3만달러, 실업률 3% 이하 달성)을 핵심공약으로 내세우기도 했다.

양안관계 개선에 기여할 활로외교

대외정책에서도 이대통령은 실용외교를, 마잉주는 활로(活路)외교를 내세워 서로 닮아 보인다. 그런데 정말 같은 효과를 내고 있는가.

총통 당선 직후 타이완 독립을 내세워 중국과 갈등을 빚던 전임자와 달리 마잉주가 양안관계 개선의지를 분명히 밝힘에 따라, 대만은 물론 중국도 기대감에 차 있다. 마 당선자는 23일 기자회견에서 “양안 경제협력 강화에 최우선 순위를 두고 먼저 삼통(三通, 중국과의 통상·통항·통신의 자유) 확대에 주력하겠다”고 말했다. 중국정부는 그동안 대만에 삼통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왔으나 대만 독립을 추구해온 천슈이볜 현정부는 이를 거부해왔다.

대만 업계와 시민들은 물론 중국 쪽에서도 마 당선자의 이런 조처를 쌍수를 들어 환영하고 나섰다. 대륙방문 비용과 시간이 획기적으로 줄어들어 관광은 물론 경제관계의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 쪽에서는 특히 대만과 인접한 푸젠성(福建省) 등 동남부 연안지역을 중심으로 ‘대만특수’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

마 당선자는 인적·물적 교류 활성화를 제도적으로 담보하기 위해 중국과의 59년간 적대 관계를 청산하는 평화협정 체결도 적극 검토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들이 나오고 있다. 물론 그는 중국과의 통일에 거부감을 느끼는 본성인(本省人) 출신 다수 타이완인들의 정서를 고려해, 유세과정에서 ‘3불'(중국과 통일을 하지 않고, 타이완 독립을 하지 않으며, 무력을 사용하지 않는다)을 축으로 양안관계의 현상유지를 강조한 바 있었던만큼 통일에의 전망이 결코 낙관적이지 않지만, 양안관계에 혁명적 변화가 올 것으로 기대된다. 더욱이 지난 30일 중국의 원자빠오 총리가 기자회견에서 평화협정을 체결할 의사가 있다고 밝히고 나서 평화체제 구축은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협상이 잘만 진전된다면 단기적으로 타이완 내수시장의 활로를 열고, 중장기적으로는 중화경제권을 새롭게 짜는 추동력을 제공할 것이다.

상대방을 무시하는 실용외교

그런데 마 당선자의 활로외교와 겉보기에 유사한 이명박 대통령의 실용외교는 내용 면에서 큰 차이를 드러낸다. 가장 중요한 점이 분단 상대쪽에 대한 입장이다. 마 당선자는 중국이 3년 전에 증정하겠다고 했으나 당시 정권이 거부한 팬더 두마리를 받아들이겠다고 표명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한국 쪽은 상대방을 무시하는 정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통일부 업무보고에서 91년 남북기본합의서가 향후 남북관계의 기본이라고 천명하고 1·2차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를 인정하지 않았다. 핵문제 해결과 남북관계 진전을 연계시키겠다는 뜻으로 그동안 김대중정부와 노무현정부에서 추진해온 병행발전론에 선을 그은 것이었다. 이대통령의 이런 입장에 부응해 김하중 통일부장관은 “북핵문제가 타결되지 않으면 개성공단 확대가 어렵다”며 북핵문제와 남북경협을 처음으로 연계지었다. 뒤이어 유명환 외교통상부장관은 핵문제와 관련해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고 북한을 협박했고, 김태영 합참의장은 청문회에서 북한이 핵을 갖고 있다고 가정할 때 우리의 대비책을 묻는 질문에 “제일 중요한 것은 적이 핵을 가지고 있을 만한 장소를 빨리 확인해서 적이 사용하기 전에 타격하는 것”이라고 밝혀 선제타격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대통령 당선 이후 침묵하던 북한은 남쪽의 이런 일련의 움직임에 대해 지난 24일 개성 남북경협사무소 남측당국 인원의 철수를 요청한 데 이어, 김합참의장의 발언에 대해서는 29일 전화통지문을 통해 “북남관계 역사에서 일찍이 있어본 적 없는 가장 엄중한 도전이며 공개적인 선전포고와 다름없는 무분별한 도발행위”라고 규정하고, 선제타격 폭언을 취소하고 사죄하지 않는다면 “군부 인물들을 포함한 남측 당국자들의 군사분계선 통과를 전면 차단하는 단호한 조처를 취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합참이 공개적으로 사과하지 않는다면 남북관계는 한동안 경색상태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상황이다.

실용외교의 실체는 무엇인가

타이완의 활로외교와 한국의 실용외교가 초래하는 현실의 변화를 지켜보면서, 과연 어느 쪽이 국가구성원 다수를 위해 더 실속있는 것인지 묻게 된다. 미국의 써브프라임모기지 사태와 원자재가격 상승, 내수 부진 등으로 경제가 살아날 조짐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한국경제의 돌파구가 될 수도 있는 남북 경제교류마저 옥죄는 대북관계 경색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총선을 겨냥한 선거용이 아니라면, 이명박정부가 내세운 실용외교의 실체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명박정부의 구두선(口頭禪)인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도 타이완의 대륙정책을 제대로 살펴볼 일이다.

2008.4.1 ⓒ 백영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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