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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열망의 한없는 연대기

정홍수

정홍수 / 문학평론가

역사의 진보란 무엇일까. 최근 김연수가 펴낸 장편소설 『밤은 노래한다』를 읽고 나면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질문이다. 1930년대 일제 강점기 동만주 간도에서 식민지 조선의 해방과 혁명을 꿈꾸며 싸우다 죽어간 젊은이들의 이야기. 그들은 살아서 천국을 보고자 했으나 그들이 결국 본 것은 지옥이었다. 그들은 그 지옥에서 서로가 서로를 죽였다.

1930년대 초반 동만주 항일유격 근거지에서 벌어진 ‘민생단 사건’이 소설의 역사적 배경이다. 해제를 쓴 한홍구 교수에 의하면 “이 참담한 사건을 통해 희생된 항일혁명가의 숫자가 최소한 500여명”이며 “일제의 자료조차 토벌에 의해 희생된 숫자보다 혁명조직 내에서 서로가 서로를 의심해서 죽고 죽인 숫자가 훨씬 더 많았다고 인정하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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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는 코민테른의 일국일당 원칙에 따라 중국공산당의 지도와 통제를 받아야 했던 당시 간도 조선인 혁명세력의 조건을 비롯, 복잡한 역사적 요인들이 뒤얽혀 있다. 그 요인들을 하나하나 객관적으로 추적해 들어가면 어느정도 사태의 진상에 접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떤 과학적 분석도 조선과 중국의 혁명에 목숨을 건 견결한 공산주의자들이 단 한순간의 호명으로 일제의 주구 민생단 간첩으로 탈바꿈되는, 그리하여 소설에 나오는 대로 “6개월에 걸쳐 60여명의 간부 중 단 한사람만 살아남고 모두 처형되는 피의 숙청”, 그 지옥도의 광기를 남김없이 해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온통 솟구치는 질문으로 뒤덮일지언정, 문학의 도전 영역이 있다면 아마도 이런 대목이리라.

「작가의 말」에 따르면 김연수는 소설가 등단 전후부터 비슷한 주제의 작품을 구상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조선왕조 부활을 꿈꾸며 무장투쟁에 나섰던 복벽주의자 전덕원 부대의 이야기가 그것인데, 공화주의자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게 된 이들의 움직임이 결국 항일독립군 내부의 유혈투쟁으로 이어지는 500매 분량의 소설 초고가 씌어진 게 1995년이었다. 최초의 구상이 실패로 돌아간 뒤에도 작가의 머리를 떠나지 않고 있던 이 주제는 이후 동만주 항일유격구 내부의 ‘반민생단 투쟁’을 다룬 국내외 연구성과들과 만나면서 좀더 구체화되고, 작가는 2003년 연변 현지로의 취재 및 집필 여행을 감행하기에 이른다.

『밤은 노래한다』가 단순한 취재형 역사소설이 이를 수 없는 깊은 실존적 울림을 낳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그 울림은 1970년생 작가 김연수의 세대의식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소설적 진정성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그런만큼, 1930년대 동만주 간도 항일유격 근거지에서 벌어진 이해하기 힘든 역사적 참극의 시간을 소설로 온전히 복원하고 재구성하는 일은 『밤은 노래한다』의 최종 목표가 될 수 없었다. 김연수는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자문하고 있다.

“이게 다 뭔가? 더 좋은 세상을 만들자고 맹세했던 사람들끼리 결국에는 서로 죽이는 이야기라니. 이런 얘기를 책으로 묶어내서 뭣하겠는가. 내게 소설을 쓰게 만들었던 최초의 의문은 결국 마지막 순간까지도 해결되지 않았던 것이다. (…) 나는 고치다 만 원고를 던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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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완성된 형태로 읽고 있는 『밤은 노래한다』는 무엇인가. 그 던져버린 원고인가. 연인이자 지하 혁명가였던 이정희의 죽음을 계기로 걷잡을 수 없는 역사의 격랑 속으로 빠져드는 소설의 주인공 김해연. 그는 소설이 시작되는 1932년 9월에는 조선인 신분으로 용정에 파견 나온 만철 측량기수(技手)였지만, 소설이 끝나는 1941년 8월에는 또 한명의 공산주의 혁명가가 되어 용정으로 돌아온다. 그는 동만주 간도의 항일유격 근거지에서 벌어진 광기 어린 반민생단 투쟁의 참극을 현장에서 겪고 목격했다. 그는 지금 연인 이정희를 죽게 한 혁명의 변절자 최도식이란 인물을 찾아 피의 복수를 감행하려 하고 있다. 최도식과 이정희는 한때 함께 세상을 바꾸자고 맹세했던 혁명의 동지 아니었던가. 시종 김해연을 1인칭 화자로 두고 진행되어온 소설의 시점은 이 장에 이르러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바뀌어 있다. ‘나’ 김해연은 이제 ‘그’가 되어 저만큼 떨어져 있다.

그렇게 해서, 최도식의 집 앞에서 기다리던 김해연이 최도식을 만나 과거의 죄를 추궁한 뒤 외투 주머니에서 총을 꺼내려는 순간, 문이 열리면서 두명의 남자아이들이 뛰어나온다. 작가는 이렇게 적어놓았다. “아직 열살도 넘지 않은 게 분명한, 최도식의 아들들이었다. 자신의 아버지가 한때 어떤 사람이었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송어들처럼 힘이 넘치는 새 시대의 아이들.”

2004년 연길에서 완성한 소설의 초고가 못내 마음에 들지 않아 출판을 망설이고 있던 작가는, 그 찜찜함의 이유가 정희를 죽인 자들을 김해연이 복수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생각하고 김해연이 최도식을 죽이는 것으로 결말을 고쳤다고 한다. 그런데 그렇게 고치고 보니 더더욱 소설을 출판해서는 안될 것 같았다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그 이유가 앞서 인용한 「작가의 말」의 대목이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소설은 그렇게 ‘던져버린 원고’를 다시 고쳐 초고의 결말로 되돌아가서 완성한 것인 셈이다. 그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작가는 두가지 이야기를 들려준다. 『밤을 노래한다』를 묵혀놓은 상태에서 또다른 장편소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2007)을 쓰며 얻은 나름의 대답이 그 하나. “왜 우리가 간절히 열망하는데도 이 세계는 조금도 바뀌지 않는가?” 이십대에 세상을 보면서 품었던 이 의문에 대해, 김연수는 열망은 결과와 무관하게 열망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 “열망은 단지 열망하는 그 순간에 원하는 모든 것을 얻을 뿐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야기는 올해 촛불시위 현장에서 목격했던 한 장면. 5월 31일 효자동 입구까지 밀고 들어간 시위대와 함께 전경들 앞에 연좌했을 때 89학번 김연수를 엄습해온 것은 공권력에 대한 무의식적인 공포였다. 그 순간 남총련 깃발을 든 학생들이 시위대 앞으로 나왔다. 그런데 그 학생들은 전혀 뜻밖에도 대중가요를 부르며 춤을 추는 게 아닌가. 이것은 분명 “어제와 다른 세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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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을 맺자. 역사의 진보란 무엇인가. 좀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인간의 열망이 즉각적인 응답을 얻으며 그 실현에 이른 적은 없었다. 1927년 간도 용정에는 식민지 조선의 해방과 세상의 혁명을 꿈꾸었던 네명의 중학생이 있었다. 안세훈, 박도만, 최도식, 이정희. 그러나 그들의 열망은 철저히 짓밟히고 찢겼다. 그들은 서로를 죽였고 그렇게 역사에서 가뭇없이 사라졌다. 그러나 “자신의 아버지가 한때 어떤 사람이었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송어처럼 힘이 넘치는 새 시대의 아이들”은 언제 어디서나 태어나며, 역사라는 괴물은 그들과 함께 시침 뚝 떼고 앞으로 간다. 그 새로운 세상은 용정 영국더기 언덕 아래에서 네명의 중학생이 꿈꾸고 열망했던 세계는 아닐지언정, 그들의 짓밟힌 열망과 무관한 세계도 아닐 것이다. 그것은 가령 김해연이 영국더기 언덕에 올라 바라본 해란강의 잔물결과도 같은 것은 아닐까. 소설의 끝, “잔물결은 하나의 햇살을 무수히 많은 빛으로 나누고 있었다”고 작가는 김해연의 시선을 빌려 기록하고 있는바, 그 무수히 많은 빛 하나하나에서 가뭇없이 사라지고 다시 이어지는 인간 열망의 한없는 연대기를 본 것은 나만의 착각은 아니리라.

2008.11.12 ⓒ정홍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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