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롭지도 민주적이지도 않은 역사교과서 개정작업

홍석률

홍석률 / 성신여대 교수, 한국현대사

 

사용자 삽입 이미지교과서 개정 작업을 두고 다시 한국현대사 논쟁이 재연되었다. 이번에는 교과서에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하느냐, 아니면 과거 교과서에도 그러하듯이 그냥 ‘민주주의’로 하느냐가 논란이다. ‘자유민주주의’를 주장하는 측에서는 ‘민주주의’로 하자는 측을 대한민국 정체성을 부정하고 은연중에 ‘인민민주주의’ 같은 것도 수용하는 불온한 사람들로 몰아가는 프레임을 만들어냈다. 이렇게 된다면 앞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민주주의를 이야기할 때 항상 앞에 ‘자유’라는 두글자를 붙이지 않으면 불온해 보일 수 있다. 이것이 과연 자유롭고 민주적인 사회인지 의문이다.

 

어떤 단어가 실제 내포하는 의미는 한 사회에서 그 단어가 쓰였던 역사적 맥락과 무관할 수 없다. ‘자유민주주의’라는 단어는 과거 일부 민주화운동세력도 사용했지만 냉전과 분단의 과정에서 공산주의와 대비되는 반공주의를 의미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또한 반공, 반북을 빌미로 권위주의 정치체제를 옹호하는 말로 사용되기도 했다. 과거 독재정권기 집권세력은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수호한다는 명목으로 민주화운동을 탄압했다. 자유민주주의가 이러한 의미를 여전히 내포하고 있다면 이것이 교과서에 왜 부적합한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역사 속 민주주의는 부단히 확장되어온 개념

 

물론 ‘자유민주주의’를 주장하는 측은 이것이 현재 민주주의 국가에서 일반화된 ‘리버럴 데모크라시(liberal democracy)’를 의미하는 것이라 주장할 것이다. 그래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역사 속의 민주주의는 그 자체가 부단히 변화하며 확장되어온 개념이다. 근대 초기의 민주주의는 재산이 많은 사람, 백인, 남성에게 국한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후 주권자의 범위가 확대되고, 민주주의의 내용도 정치적 권리뿐 아니라 사회경제적 권리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확대되어왔다. 민주주의 앞에 특정 접두사를 붙여 그 의미를 한정하고, 이것을 역사교육에서 배타적으로 강요하면 다양한 차원으로의 민주주의의 확장과 상상은 제약될 수밖에 없다.

 

21세기 새로운 역사적 전환을 모색해야 하는 시점에서 이는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사실상 이러한 논쟁이 발생하게 된 경위를 보면, 불행하게도 21세기 민주주의의 새로운 진보를 모색하기 위한 진통과 갈등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이는 20세기 한국사회에서 피땀 흘려 성취한 민주주의를 그야말로 제대로 보호하고 지키느냐[保守]의 문제에 가깝다.

 

교과서 개정작업의 경위

 

올해 2011년 1월 교과부는 2009년 12월 시작된 교육과정 개편작업을 연내에 마무리하고, 한국사교육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교과부는 2011년 2월 역사교육과정 개정방향과 교과서 개발에 대한 검토 및 자문을 위해 관련 교수, 교사, 교과부 직원으로 구성된 ‘역사교육과정개발추진위원회'(추진위)를 만들었다. 한편 교육과정 개발을 맡은 국사편찬위원회(국편)는 추진위의 방향제시와 검토를 받아 구체적인 역사교육과정안을 작성하는 ‘역사교육과정개발정책연구위원회'(정책위)도 만들었다.

 

정책위는 추진위의 방향제시와 검토하에 교육과정안을 만들어 6월 30일 공청회를 거쳐 이를 확정했다. 정책위의 교과과정안은 7월 15일 교과부 산하의 공식적인 최종 심의기구인 ‘사회과 교육과정심의회'(심의회)에 제출되어 심의되었다. 이때까지는 ‘민주주의’라는 용어가 큰 논란 없이 사용되었다. 그런데 교과부가 마침내 8월 9일 공식 고시한 사회과 교육과정에는 ‘민주주의’라는 용어가 모두 ‘자유민주주의’로 수정되어 있었다. 이같은 수정이 이루어진 데는 한국현대사학회의 문제 제기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한국현대사학회는 2011년 5월 창립한 학회이다. 현재까지 주로 역사교과서와 관련된 학술발표 모임을 두번 개최하였다. 주류 보수신문들은 이 학회의 창립과 활동을 이례적으로 대서특필했다. 현대사학회는 7월 4일 국편에 보낸 공문에서 “대한민국의 국가적 정체성이 ‘자유민주주의’체제라는 사실을 분명히 명시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그후로도 국편에 이를 포함해 여러가지 수정을 요구했다. 결국 교육부와 국편이 이들의 요구를 일부 수용함에 따라 확정 고시된 교과과정에 모두 ‘자유민주주의’라는 표현이 사용된 것이다.

 

추진위와 정책위 활동과정에서 민주주의 용어 문제는 크게 논란이 되지 않았고, 공식적으로 자유민주주의로 결정된 바도 없었다. 당연히 두 위원회의 많은 위원들이 교과부의 처사에 반발했고, 이 과정에서 대거 사퇴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반면 교과부는 교과과정안의 최종 결정은 자신들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교과과정안 공시는 합법적이라 주장하고 있다.

 

이것이 민주적이고 자유주의적인 것인가

 

위와 같은 과정이 합법적일지는 모르겠으나 민주적이라 하기는 어렵다. 그렇게 교육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할 것이라면 기획위, 정책위는 왜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또한 현대사학회의 의견이 과대 대표되어 교육과정안에 반영되는 상황은 어떻게 이해될 수 있을까? 현대사학회는 창립한 지 수개월밖에 안되는 단체다. 아직 학회지 한번 내지 못했고, 교과서 문제를 제외하고 전문적인 학술활동도 제대로 한 적이 없다. 이들은 자유주의를 강조하는 사람들인데 이런 행태가 과연 거기에 부합되는지 의문이다.

 

자유주의라 함은 국가의 간섭을 배격하고, 사회 각 부분의 자율성을 강조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현대사학회는 학계에서 학술활동을 통해 자기 주장의 정당성을 확산시키는 방식이 아니라 보수언론의 후원하에 교과부와 국편에 압력을 가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견해를 관철시켰다. 자유주의를 표명하는 사람들이 국가권력에 의존하여 무리하게 자신의 견해를 사회에 확산시키려 하는 것이다. 이러한 행태를 볼 때 이들이 주장하는 ‘자유민주주의’가 과연 리버럴 데모크라시인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2011.11.9 ⓒ 창비주간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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