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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힐링’, 누구를 치유하는가

김현미

김현미 /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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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의 예능 프로그램 <힐링캠프>에 정치인들이 출연의사가 쇄도한단다. 이 말이 어느 정도 진실인지 모르지만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같은 이른바 유력 대권주자들이 줄줄이 출연해 지지율을 상승시킨 프로그램이니 다른 정치인들이 공평을 주장하며 ‘출연의 권리’를 요구할 만하다. 온전히 50분을 한 인물의 스토리텔링에 주목하는 이 프로그램은 정치인들이 TV를 통해 자신의 퍼스낼리리티를 완성시킬 기회를 제공한다. 이들이 고백하는 일상적 습관, 취향, 남모를 고통과 불행, 실수, 연애담, 그리고 때로는 자기비하적인 농담까지 이들에게 거리감이 있던 시청자들의 감정을 ‘낚는’ 데 제격이다.

 

TV 퍼스낼리티는 정책이나 정치적 입장보다는 동일시나 감정이입을 통해 특정 정치인과 대중을 결속시킨다. 정치인들이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건조한 정치를 ‘연성화’시켜 인간적인 모습을 부각시키겠다는데 특별히 반대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우리는 미디어 소비자로서 정치인을 ‘즐길 권리’를 획득해가는 것처럼 보인다. 기성 정치판의 ‘적대’와 ‘단순함’에 피곤해진 시청자들은 인간적으로 취약해 보이기까지 하는 대권주자들의 모습에서 말 그대로 ‘힐링’을 체험할지 모른다. 기존의 정당정치가 행사해왔던 정치적 도구들이 국민의 관심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소진되거나 작동하지 않는 현재의 상황에서 정치인들은 TV를 통해 대중과 만나야 생존할 수 있다.

 

정치인의 ‘스타 흉내’가 위험한 이유

 

대만 자이퉁대학(交通大學)의 천 꽝싱 교수는 《한겨레》 칼럼을 통해 이러한 현상을 분석한 바 있다(<‘문화대혁명’과 선거> 2011.12.3 ). 그에 따르면, 정치인들이 예능 프로그램에 나오는 것은 한편으로는 실제로 이들이 더이상 높은 지위에 있는 인물로서의 광채를 상실했기 때문이다. 정치인으로서 누렸던 권력과 영향력은 사라지고 점차 국민의 냉소와 오락거리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점을 방증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짧은 시간에 강한 임팩트’라는 상업주의 전략이 정치인에게 절실한 것은 정치의 목적이 장기적인 정책을 세우고 집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목전의 선거에서 이기는 것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들이 <힐링캠프>를 욕망할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정치인의 ‘스타질’이나 스타 흉내는 위험하다. 적어도 스타들의 이미지 변신과 퍼스낼리티의 구축은 대중의 삶을 그렇게 파괴하지 않는다. 그러나 정치인들이 스타 흉내 내기에 익숙해지면 골치 아픈 사회적 문제를 회피하고 방기하는 데도 익숙해진다. 선거에서 이기겠다는 목적을 위해 구축된 정치인의 TV 퍼스낼리티는 꼬드김과 일시적 바람에 의존하기 때문에 파편적이다. 이명박정부가 지난 대선에서 내세운 경제성장 공약은 결국 5년 만에 국민을 생존의 위기로 내몰았다. 시장 상인과 서민을 포옹하는 TV 속 이미지와 MB정부의 실제 정책은 아무 관련이 없었다.

 

‘원칙’이란 말만 되풀이하는 박근혜의 자기선전은 어떤 정치적 퇴행을 몰고 올지 모른다. 문재인의 ‘대한민국 남자’는 진보인사의 성인지(性認知) 감수성의 낮은 수준을 환기시킨다(최근 그는 이 슬로건에 반대가 많아 폐기했다고 한다). 안철수의 정답주의는 책으로 배운 공부와 복잡한 현실의 간극을 어떻게 메울 수 있을지 걱정하게 한다. 이들은 <힐링캠프>를 통해 지지를 얻어냈는지 모르지만, 그 프로그램을 빠짐없이 본 나는 더욱 곤경에 빠졌다. <힐링캠프>가 더 많은 알 권리를 제공하는 것인지, 아니면 대선주자들의 ‘정치력’ 없음의 불안을 위로해주는 프로그램인지 모호하기 때문이다.

 

시청자의 권리와 시민의 권리

 

정치적 의제가 충분히 개발되지 않는 상태에서 특정 정치인이 무엇을 먹고, 무슨 색깔을 좋아하고 무슨 혈액형인지 아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모든 시청자를 평균적으로 만족시키기 위해 기획된 오락 프로그램은 ‘정치적인 것’을 구성해내는 장이 아니다. 우리는 시청자의 권리를 획득하고 있지만 삶의 위기에 대처할 시민의 권리는 잃어가고 있다. 누가 신자유주의적 승자독식이 야기한 극심한 사회적 불평등 문제를 국가의 정책 아젠다로 구성해낼 수 있을까?

 

이런 문제를 편안한 오락 프로그램으로 즐길 수 있다는 착각은 하지 말자. 진지한 토론의 과정에 조금은 고통스럽게 참여하는 투표권을 가진 시민이 되자. 향후 대선주자들이 자신의 정치적 능력을 제대로 보여주는 ‘장’에 나와 이미지가 아닌 그들의 정치적 실존을 증명해내길 바란다.

 

2012.8.1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