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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유학의 손익계산서

이일영

이일영 / 한신대 교수, 경제학

작년 한해 연구년을 맞아 미국의 한 대학에서 지내다 귀국했다. 돌아오기 전 그리고 돌아온 후 자주 들었던 인사말이 “아이들도 함께 귀국하(했)는가”였다. 아이들만 남겨두고 돌아오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 없었는데, 일가족이 고스란히 귀국하는 경우가 통상적이지는 않은 상황이 되어버린 모양이다. 보도에 의하면, 해외로 유학을 떠나는 조기유학생이 한해에 3만명 정도라고 한다. 교육비와 생활비를 송금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중산층 이상의 가정에 한정해서 생각한다면, 상당히 많은 숫자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혹자는 조기유학 현상을 ‘미친 사회’의 표징으로 읽기도 한다. ‘기러기 아빠’를 굳이 광인으로까지 치부하지는 않더라도, 우리 사회의 교육의 실패와 지성의 빈곤을 상징하는 것으로 말하기도 한다. 일리가 있고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시각이다. 그러나 “그러면 어찌해야 할까”라는 물음에는 다시 무력해지고 만다. 이제 전혀 드물지 않은 ‘기러기 아빠’를 그저 멍텅구리로 보아 넘기기도 어렵다. 무엇보다도 섣부른 비판과 계몽으로 그들의 판단과 행동을 바꾸기가 쉽지 않다. 이러한 점을 감안해서 문제를 다시 생각해보자.

높아진 조기유학의 기대이익

조기유학에는 비용이 발생한다. 직접적인 송금액뿐만 아니라 단란한 가정생활을 포기해야 하는 기회비용이 만만치 않음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보유자산이 많은 ‘독수리 아빠’에게는 그러한 비용이 크지 않을 것이나, 보유한 자원이 더 희소한 그래서 제약조건이 더 빠듯한 ‘기러기 아빠’나 ‘펭귄 아빠’에게는 대단한 압박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그들이 자녀들의 조기유학을 선택했다면, 그것은 그들이 그 선택에서 발생하는 이익을 높게 평가했기 때문이다.

우선 ‘탈출’의 이익이 작지 않다. 중산층 이상이 선호하는 세칭 일류대학의 입학 기회가 점점 좁아지고 있는 것이 직접적 요인이 될 것이다. 그리고 너무 경쟁적이고 주입적인 교육환경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가 매우 큼에 틀림없다. ‘영어’의 이익도 있다. 영어 구사력과 국제경험이라는 측면에서 영어권에서의 교육경력이 우대받고 있는 것은 비단 한국만의 상황이 아니다.

나아가 교육의 ‘질’에 대한 문제도 있다. 필자는 작년 어느 전문가와 아이들의 ‘수학적으로 생각하기’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는, 미국에서는 ‘한 문제를 깊이 다각적으로 생각하기’에 중점을 둔다면, 한국에서는 ‘많은 문제를 빠르게 풀어 정답을 내기’에 목표를 둔다고 말했다. 이런 사정 때문에, 미국 대학원의 교과목 이수과정에서는 한국 출신 학생들이 뛰어난 성적을 내지만, ‘새로운 것’을 내놓아야 하는 논문 쓰기에서는 상대적으로 부진한 성과를 보인다는 것이다. 어떻게 학위과정은 마치더라도 장기적으로 해외에서 생존하는 비율은 더 떨어진다고 한다. 의사소통능력이 결정적인 분야에서는 물론, 비약과 혁신이 중요한 부문에서 한국의 교육씨스템이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이는 매우 근본적인 문제인데, 국내 대학들의 영어강의 소동은 문제를 더 악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조기유학의 불확실성과 불평등한 이익배분

조기유학의 기대이익이 크게 높아진 데는, 갑자기 접하게 된 교포 2세나 유학파 금융인들이 크게 기여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외환위기 직후의 한국처럼 어수룩한 상대로부터 특별한 이익을 올릴 수 있는 기회를 찾기는 이제 쉽지 않다. 고액연봉, 최고급 승용차, 호텔 스위트룸을 차지하는 것은 해외에서도 한국에서도 선망의 대상이다. 그러나 과거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이러한 성공은 그리 흔한 일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투입되는 비용의 크기와 견주어봐야겠으나, 어쨌든 조기유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기대이익 수준이 높아진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단, 보통의 한국인들의 열광적인 교육열 뒤에는 상당한 ‘위험 선호’의 기질이 숨어 있는 것 같다. 보통의 경우 기대이익이 높아지면 그에 따라 위험의 크기도 증가한다고 볼 수 있다. 국내에서 공부할 경우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정보가 비교적 풍부하지만, 사람들은 이러한 확실성의 세계에 높은 가치를 매기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 대신 실패 사례도 많고 미래 소득의 변동성이 큰, 조기유학이라는 불확실성의 세계에 쉽게 매력을 느끼는 것이다.

또 한가지 덧붙일 점은, 조기유학으로 기대이익이 커진다고 해도 그것은 총량의 문제이지 이익의 분배구조까지 말해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가족 내에서 조기유학으로 누가 가장 큰 이익을 누릴까? 비용의 상당부분은 ‘기러기 아빠’의 몫이다. 교육투자의 효과는 학생에게 내장되겠지만, 어쨌든 어린 학생 자신에게는 인생을 담보로 한 모험이다. 자녀를 동반하는 엄마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손실은 적고 이익은 커 보인다. 한국의 여성들이 일상적으로 느끼는 결혼과 가족제도의 질곡에서 벗어남으로써 얻는 해방감은 계량하기 어려울 정도인 것 같다. 어찌 보면 ‘기러기 아빠’ 현상은 한국 가부장제에 대한 통렬한 복수이기도 하다.

곰곰 생각해보면, 조기유학은 우리나라 상류층과 중산층이 생각하는 미래의 기대수익과 위험을 반영하는 흐름이다. 물론 이러한 흐름이 ‘완전히’ 합리적인 것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당한 이유가 없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이런 문제를 거칠게 다루면 생각지도 못한 결과가 나오게 된다.

문제 속에 숨은 인쎈티브 구조를 찾아야

노무현정부 시기의 일인데, 정부는 관행적으로 허용되던 조기유학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취하기 시작했다. 교육당국의 허가를 받은 해외이주나 파견동행을 제외하면, 모두 불법·부당유학으로 간주하여 무단결석 처리하고 국내 학력으로 인정하지 않기로 했다. 뒷얘기를 들어보니, 당시 여권 일부에서 조기유학에 대한 비판여론과 국부 유출에 따른 우려를 정부에 전했다고 한다.

그러면 이러한 조치 이후 어떠한 일이 일어났을까? 몇가지 짐작되는 바가 있다. 3~12개월의 장기연수는 억제되었을 것이고, 이 압력은 3개월 이하의 단기연수를 증가시키는 힘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해외이주나 파견동행의 합법 형식을 취하기 위한 암시장이 형성되거나, 아예 국내 학교로 복귀하는 것을 포기하고 장기유학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을 가능성도 추측해볼 수 있다. 조기유학 총비용의 증감 여부를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제도 변경과 이에 대한 적응과정에서 새로운 비용이 생긴 것은 분명하다.

법과 행정력을 동원하는 것은 강제적이고 위압적인 수단으로 처음 제기된 문제에 직접적 영향력을 미친다. 그러나 그것이 꼭 전체적인 상황과 흐름을 극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지렛대, 즉 인쎈티브 구조를 발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여기에는 신중한 자세와 치밀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는 비단 조기유학 문제뿐만 아니라 수능등급제, 영어몰입교육 등 논란이 되었던 교육문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어찌 보면 세상의 많은 일이 다 그렇다고 할 수 있다. 관련해서 로널드 코즈라는 경제학자의 충고가 생각났다. “필요한 것은 상상력에 의한 재건축이라는 행동이다. 그러나 이는 구체적인 지식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

2008.4.15 ⓒ 이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