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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드랏 타히믹 감독의 질문과 꿈

정홍수

 

정홍수

정홍수

지난달 한국영상자료원에서 필리핀 독립영화의 대부로 불리는 키드랏 타히믹(Kidlat Tahimik, 1942~ ) 감독의 특별전을 볼 기회가 있었다. 독재자 마르코스, 마닐라 공항에서 암살당한 아키노 상원의원, 1986년 ‘피플 파워’의 시민혁명 등으로 기억에 남아 있을 뿐 오랫동안 별다른 관심을 가져본 적 없던 필리핀이 새삼 가까운 아시아의 이웃으로 다가왔다. ‘제3세계’라는 이제는 거의 쓰지 않는 호명에 대한 추억과 함께 말이다.

 

대항해시대 마젤란에 의해 외부세계에 알려진 이래 필리핀은 400년 가까이 스페인 식민지로 있었고, 20세기 들어 미국의 지배를 받다가, 2차세계대전 시기 일본의 점령을 거쳐 1946년 독립했다. 그러나 1992년에야 주둔한 미군이 철수했을 정도로 필리핀의 경제·외교·군사 전반에서 여전히 미국의 영향력은 크다고 한다.

 

식민의 역사를 성찰하는 몽상과 유머의 시선

 

필리핀 주둔 미군의 휴양도시로 조성된 바기오에서 태어난 키드랏 타히믹 감독은(모친이 바기오 시의 초대 시장을 지냄) 미국 와튼 비즈니스 스쿨을 졸업하고 OECD 연구원으로 독일 뮌헨에 파견되어 근무할 정도로 서구 지향의 제3세계 엘리트 지식인으로 자라났다. 그런데 독일 체류 중 베르너 헤어초크(Werner Herzog) 감독을 만나게 되고, 이 만남은 그의 인생을 크게 바꾼다. 베를린 대학 영화학과 학생들이 쓰고 남은 자투리 필름으로 찍은 첫 영화 「향기 어린 악몽」(1977)은 제3세계인으로 서구에 도착한 바로 그 자신의 운명을 되돌아보면서, 오랜 식민의 땅 필리핀의 역사와 정체성을 몽상과 유머를 버무린 독창적인 시선으로 성찰한다. 사실 키드랏 타히믹 감독의 이름을 처음 접한 나는 ‘필리핀 독립영화의 대부’라는 소개글을 보며 조금은 엄숙하고 딱딱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예상하고 극장으로 향했던 터였다.

 

그러나 ‘지프니’(지프를 개조해 만든 대중적인 탈것) 운전수 캐릭터를 연기하며 등장한 감독 자신의 촌스럽고 우스꽝스러운 모습부터가 정형화된 다큐멘터리의 관습을 가볍게 벗어나 있었다. 머리맡에 붙여둔 미스 유니버스 사진을 보고 잠자리에 들고(그의 꿈은 미스 유니버스 심사위원이 되는 것이다), ‘미국의 소리’ 방송을 들으며 하루를 시작하는 키드랏은 미국 로켓 공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베르너 폰 브라운의 팬클럽 회장이기도 하다(회원은 마을 아이들 몇명이 전부지만).

 

필리핀 시골 마을에서 지프니 운전사로 사는 그에게 달나라로 우주선을 쏘아 올리는 미국은 찬란한 기술문명의 정화(精華)이자 꿈의 땅이다. 운 좋게 미국으로 갈 기회가 주어지고, 도중에 빠리와 독일에 머물게 되면서 그는 개발과 진보, 자본의 망령이 질주하는 서구 근대의 어두운 실상을 보게 된다. 영화의 마지막, 키드랏의 조용한 독립선언이 내레이션으로 흘러나온다. “나는 오늘로 폰 브라운 팬클럽 회장직에서 사퇴합니다. 팬클럽에서도 탈퇴합니다.” 찰리 채플린을 연상시키는 슬프고 우스꽝스러운 키드랏의 몸짓과 행색은 그가 맞닥뜨린 정신없는 ‘모던 타임즈’의 시간과 풍경에 대비되며 제3세계 그 자신의 역사와 시간으로의 새로운 귀환을 예고한다.

 

그런데 1세계니 2세계니 3세계니 하는 구분이 더이상 의미없어지고 자본주의 단일의 세계체제가 지구촌 전체를 포섭하기에 이른 지금의 자리에서 보면, 키드랏의 독립선언은 영화가 전하는 자유롭고 유머러스한 감흥, 어떤 절실하고 순수한 결별과 귀환의 의지에도 불구하고 조금은 순진한 시선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나의 이러한 생각을 불식시켜준 것은 그의 또다른 대표작 「누가 요요를 만들었나? 누가 월면차를 만들었나?」(1982)였다.

 

꿈과 질문들, 그리고 다른 세계의 상상

 

달에서도 요요를 해본 사람이 있을까, 하는 질문에서 시작하는 이 영화는 말 그대로 공상의 기발함과 허황함을 다 가지고 있다. 영화적 형식에서도 중간중간 애니메이션을 집어넣는 등 자유롭기 그지없다. 역시 감독 자신이 분한 주인공 키드랏은 독일의 어느 시골 농장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아폴로의 달 여행에 맞추어 독자적인 달 여행을 계획한다. 물론 목적은 달에서 처음 요요를 해본 사람이 되기 위해서다. 나름 로켓의 역학을 공부하고 설계도를 준비하여 우주선을 만든다. 그 실상이 어떨지는 상상해보시라. 동력원으로는 오랜 고심 끝에 양파가 채택된다(양파는 유럽 성당의 돔 모양을 닮았다. 그의 공상 속에서 달에 최초로 간 사람은 여자이고, 그이의 이름은 ‘마리아’다).

 

그런데 이 허황하기 짝이 없는 프로젝트는 이상하게 진지하고 이상하게 감동적이며 이상하게 아름답다. 요요와 요들송을 연결지은 첫 장면(둘 다 돌아온다. 요들송은 메아리로) 이래로 시종 경쾌하게 영화 속에서 울리는 요들송은 이 공상과 상상의 최고 원군이다. 요들버그 요요협회의 부회장 격인 여섯살 꼬마 고틀렙이 달에 간(어쨌든 아폴로의 카운트다운과 함께 키드랏의 로켓도 어딘가로 솟구친다) 키드랏을 향해 요들송을 불러주러 흰 눈밭을 뛰어가는 장면에서 나는 마치 이 지구가 처음의 시간으로 돌아가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요요는 필리핀인들이 처음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요요라는 명칭이 타갈로그어 ‘오라, 오라’(come, come)의 뜻을 지닌 단어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정리해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질문하고, 그 질문을 통해 꿈을 꾸고 그 꿈을 이행해본다는 사실이다. 지금의 세상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리고 그 질문과 꿈의 씨앗을 키드랏 타히믹 감독은 ‘필리핀’이라는 그 자신의 고유한 역사와 시간, 경험, 언어에서 찾는다. 그는 「투룸바」(1981)에서는 음악을 통해, 마젤란의 노예였던 엔리께의 시선으로 필리핀 식민의 역사를 돌아보는 「과잉개발의 기억」(1982~2014)에서는 비샤아어나 이푸가오어 같은 필리핀인들의 고유 언어에 대한 기억을 통해 그렇게 한다. 그 질문의 차원이 편협한 민족주의나 순진한 반개발주의에 있지 않음은 전근대와 근대, 두개의 시간대를 겹쳐 살고 있는 듯한 감독 자신의 아이러 니한 캐릭터가 충분히 보여준다. 이 경우, 적응과 극복은 분리되지 않는 과제일 테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시작할 것인가, 그리고 어떤 꿈을 꿀 것인가. 아니, 꿈을 꿀 것인가. 키드랏 감독은 절실하게, 그러면서도 시종 자유롭고 즐겁게 묻고 있었다.

 

 

정홍수 / 문학평론가

2014.9.17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