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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만들기, 오래된 전략의 새로운 출발

김연철

김연철 /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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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가 흔들리고 있다. 북한의 핵실험 이후, 이제는 해결이 어렵겠구나 하는 절망감, 한반도 비핵화선언이 깨져버렸다는 낭패감, 남북관계를 너무 쉽게 생각하지 않았나 하는 자괴감이 번지고 있다. 그렇게 흔들려도 될까? 바람에 잎사귀가 일 수 있지만 뿌리가 흔들려서는 안된다. 정세가 악화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한반도 평화 만들기라는 시대의 과제는 변하지 않았다.

 

북핵실험 이후 우리의 선택은 세가지다. 첫째는 핵을 핵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핵무장론이나 전술핵 재배치 주장이다. 논의할 가치가 없다. 이미 김장수 국가안보실장 내정자가 한마디로 일축했다. 정책적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그런 주장은 극우 보수인사들의 세상물정 모르는 얘기에 불과하다. 현재의 한미관계에서 그것이 가능하겠는가?

 

북핵실험 이후 우리의 선택은

 

둘째는 북한의 핵을 사실상 인정하면서 남북관계를 관리하자는 주장이다. 북핵 폐기를 목표로 했던 과거의 협상전략에서 벗어나 비확산에 주력하자는 주장은 임기응변일 수 있으나 지속 가능하지 않다. 이미 파키스탄의 칸 박사를 중심으로 하는 국제적 확산 네트워크가 작동된 바 있다. 핵이 있는 이상 확산의 위험성은 존재한다. 동시에 핵문제의 현실과 별개로 남북관계를 관리할 수 있는가? 김대중, 노무현정부 때도 그런 적이 없다. 핵문제와 남북관계를 병행 해결한 적은 있지만 분리한 적은 없다. 북한이 핵실험을 계속하는데 교류협력이 정상적으로 진행될 수 있겠는가?

 

결국 우리의 선택은 핵 협상과 남북관계 개선을 병행적으로 추진하는 셋째 방법밖에 없다. 그것은 1991년 12월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추진했던 노태우정부의 구상이다. 당시 전술핵 부재 선언은 형식이지만 노태우정부가 주도했다. 물론 부시 행정부의 전술핵 철수 방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미국은 소련이 해체될 위기상황에서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각지에 배치된 핵무기를 안전하게 관리하기 위한 선제적 조치가 필요했다. 노태우정부는 미국의 의도를 읽고 적절하게 대응했다. 핵문제를 남북한이 주도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핵통제공동위원회를 구성하고, 동시에 병행적으로 남북기본합의서를 채택했다.

 

오래된 전략이다. 물론 새로운 출발이 필요하다. 확실한 것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포기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 끈을 놓아버리면 우리에게 남는 것은 군비확산 밖에 없다. 군비확산의 고통을 짊어질 만큼 우리 재정에 여유가 있는가? 물론 북핵 협상이 복잡해지고 어려워졌다. 북한의 핵능력만큼이나 협상의 형식이나 내용이 새로워져야 할 것이다. 금방 가시적인 성과를 낼 수도 없다. 그러나 협상의 시작 자체가 효과가 있다. 냉전시대 미소 양국의 오랫동안 지지부진하면서도 중단되지 않은 핵군비통제 협상의 성과는 단순히 감축한 무기의 숫자가 아니다. 바로 핵무기의 투명성을 높이고 불확실성을 낮추었다는 점이다.

 

제재와 봉쇄는 핵무장 명분만 제공할 뿐

 

박근혜정부가 최소한 노태우정부에서 배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현재의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한국정부의 전략이다. 북미협상이 가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북한을 설득할 수 있는 한중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노태우정부는 북핵문제에 제재와 봉쇄로 대응하지 않았다. 제재와 봉쇄는 결국 북한의 핵무장 명분만 제공할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공세적 외교, 한국의 역할에 관한 확고한 인식, 그리고 지역전략에 대한 균형감각이다. 그런데 현재 발표된 새로운 외교안보팀을 보면서, 과연 노태우정부의 철학, 정세인식, 그리고 해결의지를 기대할 수 있을까? 20년의 세월 동안 보수의 퇴행과 수준 저하가 참으로 안타깝다. 그래도 북방정책의 정반대로 가지는 말기를 바란다. 미사일방어망(MD) 참여같이 비용대비 효과가 의심되고, 미국의 군산복합체 이익에 복무하며, 중국과 러시아의 강력한 반발에 직면할 잘못된 선택만은 하지 말았으면 한다.

 

평화 만들기는 평화를 바라는 사람들의 몫으로 남겨졌다. 흔들리는 민심에 휩쓸려 식상한 양비론 혹은 실체가 없는 기계적인 중간에 미혹되지 말았으면 좋겠다. 문제는 위치가 아니라 해법이다. 여론에 편승하는 것은 순간이다. 그러나 결국 문제를 해결하는 의지와 실력을 보여주어야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

 

평화의 공간을 고수하고, 공감을 최대한 확장해야 한다. 국내적으로는 바람직한 국가이익의 방향을 판단할 수 있는 합리적 보수까지를 포함해야 한다. 그리고 한반도 주변국의 비핵 평화세력과의 협력도 중요하다. 미국의 핵 없는 세계에 관한 철학을 공유하는 인사들과 공감대를 넓히고 일본의 평화세력과도 연대해야 한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지금 시작해야 한다. ‘평화 만들기의 광범위한 연대’를.

 

2013.2.20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