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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절하는 교수, 표절하는 학생

김명환

김명환 | 문학평론가, 서울대 교수

작년 말 온 나라를 들썩이게 했으며 아직도 여진이 느껴지는 황우석 교수의 연구조작 사건에 이어 국민의 심기를 거푸 어지럽힌 김병준 교육부총리 내정자의 연구실적 논란, 최근 EBS 신임사장의 학위논문을 둘러싼 공방을 보노라면 학문 연구의 윤리에 대해 교육계와 학계를 포함하여 우리 사회가 분명하고 확고한 판단기준을 가지지 있지 못함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런데 이처럼 중대한 사안에 차분하게 접근하지 못하고 자주 매스미디어의 선정적인 보도에 휘둘리는 가운데 중요한 문제 하나가 묻혀 있다. 그것은 배우는 학생들이 지켜야 할 학문적 정직성의 문제이다. 황교수가 재직했던 대학의 학위논문에서 여러 편의 부정이 적발되었듯이 윗물이 더러운데 아랫물이 맑을 수는 없다.

나는 기회가 닿을 때 학생들에게 한가지 질문을 던진다. 어느 학생이 한 강좌에서 기말논문을 제출해서 좋은 학점을 받았는데, 다음 학기에 다른 강좌에서 동일한 주제로 기말보고서를 쓸 기회가 생겨 관련된 두 교수에게 알리지 않고 이전 논문을 그대로 내서 다시 학점을 받았다면 이것은 부정행위인가? 학생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선뜻 대답하지 못한다. 영어로 진행하던 어떤 강의에서는 “That student is a smart guy!”라고 불쑥 대답한 수강생마저 있었다. 대략 난감.

서구 대학에서라면 이런 행위는 전형적인 ‘자기표절’ 행위로서 명문규정에 따라 처벌을 받지만, 내가 아는 한 우리 대학 대부분은 학생의 표절행위에 관해 분명한 개념 정의나 처벌 규정을 갖추지 않고 있다. 물론 성실한 교수들이 개별적으로 이 문제에 관해 학생들을 교육시키는 경우는 많지만, 체계적 교육의 부재 등 제도적으로 매우 부실한 형편이다. 실제 명백히 불순한 의도의 부정도 있으나 표절을 비롯한 학문적 부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잘못을 저지르는 학생이 더 많다.

무한복제가 가능한 디지털시대에 학생의 표절문제는 심각하다. 요즘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선생들은 짜깁기 등 갖가지 표절양태에 질린 나머지 점점 논문 과제 대신 시험을 택하는 경향이다. 그러나 글쓰기는 대학교육의 핵심이다. 글쓰기 교육의 중요성이 외면당하고 그 비중이 대학교육에서 미미해진다면 그것은 대학이 근본적으로 무너진다는 말이다. 학부 수준에서 거창하고 심오한 내용의 논문을 바랄 리는 없지만,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는 일의 집약으로서 글쓰기는 고등교육의 요체인 것이다. 석박사과정의 대학원으로 가면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물론 여기서 잊지 말 점은 인터넷 세상의 도래가 지식과 정보의 독점을 무너뜨림으로써 대학의 연구와 교육에 엄청난 긍정적 변화를 가져왔다는 사실이다. 학생들에게 권위를 앞세워 비민주적 행태를 일삼으며 마땅히 전수하고 공유할 지식과 정보를 독점하려는 교수는 종종 학문적 부정을 별로 염려하지도 않고 관심도 없다.

내 경우 개강 첫 시간에 공언하기를, 논문 제출시 휴대전화번호를 명기하고 의심이 드는 경우 호출하면 바로 내 연구실로 출두하여 구술시험을 봐야 하며 논문 내용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즉시 표절로 간주하여 낙제시킨다고 한 적도 있다. (따라서 성적마감까지 지방이나 해외에 가지 마라, 위수지역 이탈을 금한다는 군사문화에 물든 강좌 운영이 되고 만다^^;;) 그러나 영민한 학생들은 표절한 논문의 내용을 숙지할 능력이 충분하며, 내 위협은 표절 의욕을 일정하게 꺾는 정도일 뿐이다. 오히려 담당교수가 표절을 입증하지도 못하면서 임의적인 구술시험의 결과로 낙제시킨다면 문제의 소지가 크다.

어느 외국 대학은 교수가 의뢰한 학생 논문의 표절 여부를 전문적으로 검증하는 도서관 사서를 두기도 한다. 이 사서가 온갖 표절논문 판매 싸이트에 회원가입을 해놓았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사제간이 참 삭막해지는 느낌은 들지만, 석박사논문을 대필하는 전문업체가 번창한다는 흉한 소문마저 은밀히 나도는 오늘의 상황에서 이같은 장치의 도입이 협박과 다를 바 없는 내 방식보다는 한결 합리적이다.

내 생각에 학생윤리의 문제가 방기되는 주된 원인은 세가지이다. 첫째, 교수사회의 학문윤리가 정립되어 있지 않으니 학생에게 그것을 요구할 수도 없고 요구할 의지도 별로 없다. 둘째, 급속하게 기업의 논리가 파고드는 대학의 변화과정에서 창조적 사고력 배양의 필수요건인 글쓰기를 경시하는 경향이 대세가 되고 있다. 만사가 점수로 계량화되면서 진지하게 책을 읽고 토론하며 글쓰는 일은 무시당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르치고 배우는 사제지간이라는 특수성에 덧붙여 대학사회의 미흡한 민주화 탓에 학생의 권리 신장이 여전히 부족하여 그 반작용으로 학생의 의무를 엄정하게 요구하기 어려워진다. 학내에 경찰이 상주하던 군사독재 시절에 비추어 말할 수 없이 좋아지긴 했지만 대학민주화는 아직도 여러 면에서 걸음마 수준이다.

지난주 창비주간논평에서 임형택 선생의 〈산문의 현대적 부활을 제안함〉을 읽고 마치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앞서 풀어주신 듯하여 기뻤다. 그런데 산문의 진정한 부활을 꾀하기 위해서는 방금 말한 세가지에 대한 대책 마련이 필요조건이다. 그것은 학문사회의 민주성과 투명성의 확보, 자본의 논리에서 자유로운 대학의 공공성 강화로 바꾸어 말할 수 있다.

덧붙일 것은, 압도적 다수의 학생들은 순수해서 표절을 꿈도 꾸지 않는다. 다만 자기 생각을 정리해 글로 적는 경험과 훈련이 너무 부족해서 논문과제에 시달리다 ‘OTL‘ 세 글자를 친구에게 문자로 날리는 젊은이들인 것이다. 정녕 디지털혁명의 시대는 우리 자신의 위기인 동시에 기회이다.

2006.10.31 ⓒ 김명환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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