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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절 논란, ‘의도’보다 ‘결과’가 본질이라면

황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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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6월 16일 신경숙 작가의 「전설」이 표절이라는 이응준 작가의 문제제기에서 출발한 논의는 이후 표절 규정의 문제, 신경숙 문학에 대한 평가와 비평 일반의 문제, 문학권력과 문단제도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여러 갈래로 펼쳐지며 진행되었고, 계간지 가을호들에서 각각의 쟁점에 관해 다양한 견해가 제출되었다. 논의가 풍부해지는 과정에서도 ‘창비’는 대체로 일관되게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는데, 여기에는 이 문제를 서둘러 덮으려 한 최초의 보도자료가 남긴 파장이 여전히 크게 작용하고 있다고 보인다. 창비는 곧바로 대표이사가 사과했지만 그것이 비난을 잠재우지는 못했다. 사과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앞으로의 변화와 실천으로 감당할 과제가 그만큼 크다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표절 논의가 안겨준 과제를 엄중히 새기기 위해서라도 이 시점에서 몇가지 사실을 짚어보고 확인하는 일이 필요하다. 일단 여기서는 「전설」 문제와 직접 관련된 사실에 한정하겠다. 이 문제에 있어 창비를 두고 제기된 비판은 ‘표절 부인(혹은 외면)과 표절 작가 감싸기’로 요약될 수 있다. 계간 『창작과비평』은 여기에 대해 가을호 머리글을 통해 “무의식적인 차용이나 도용도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표절이라는 점이라도 신속하게 시인하고 문학에서의 ‘표절’이 과연 무엇인가를 두고 토론을 제의하는 수순을 밟았어야 했는지도 모릅니다”라는 말로 사실상 ‘결과적 표절’을 인정했다. 다만 “작가가 ‘의식적인 도둑질’을 했고 출판사는 돈 때문에 그런 도둑질을 비호한다고 단죄하는 분위기가 압도하는 판에서 창비가 어떤 언명을 하든 결국은 한 작가를 매도하는 분위기에 합류하거나 ‘상업주의로 타락한 문학권력’이란 비난을 키우는 딜레마를 피할 길이 없었기에 저희는 그동안 묵언을 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라고 그동안 ‘의도적 베껴쓰기’가 아니라는 입장을 지키는 데 집중한 까닭을 해명했다.

 

‘표절=의식적인 절도’ ‘신경숙=상습절도범’이라는 프레임

 

표절 논의에 관여한 분들 중에는 스스로 ‘단죄’하는 입장이 아니었을 뿐 아니라 그런 분위기가 ‘압도적’이었다는 판단에도 동의하지 않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표절 작가를 감싸기 위한 핑계라고 봐야 할 정도로 과연 이 판단이 근거 없는 과장이고 억측이었는가. 표절 논의가 재개되는 데 결정적 계기가 된 이응준의 글은 신경숙이 “청탁을 받아 쓰고 있는 중인 단편소설 「전설」의 원고에 「우국」의 그 한 부분을 거의 그대로 옮겨 타이핑”하는 장면을 머릿속에 그려보자는 제안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의식적으로 도용(盜用)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튀어나올 수 없는 문학적 유전공학의 결과물인 것이다”(허핑턴포스트코리아 6월 16일자)라는 단언이 이어진다. 그보다 앞서 최초로 문제제기를 한 당사자이며 이번의 논의에도 적극 참여한 정문순 평론가의 발표문(7월 15일자 「신경숙 표절 글쓰기, 누가 멍석 깔아주었나」)에는 “실력이 달리는 작가가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서 의도적으로 기획되고 전략적으로 띄워진다면 과부하를 견뎌내기 힘들 것”이므로 “신씨가 상습표절을 저지르는 ‘괴물’이 될 때까지 문학인들은 적극적으로 동조하거나 방조해온 셈”이라는 구절이 등장한다. 이밖에도 일일이 거론하기 힘든 많은 예가 보여주듯이 문제제기의 출발점에 ‘표절=의도적인 절도’ ‘신경숙=상습절도범’이라는 프레임이 분명 있었으며, 한동안의 논의와 보도에서 이런 프레임이 과도하다는 지적이나 이를 바로잡으려는 시도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 프레임에서 슬그머니 빠져나오면서도 그것이 이제껏 발휘한 효력 자체는 조금도 교정할 생각이 없는 최근의 ‘출구전략’은 압도적인 분위기가 어떠했는지 역설적으로 입증해준다. 수차례 표절 논의를 보도하고 칼럼으로도 의견을 표명한 한겨레신문의 최재봉 기자는 9월 10일자 칼럼에서 “표절 현장을 목격한 것처럼 묘사한 이응준의 고발 글이 과한 것은 사실이지만, 사태의 본질이 표절의 ‘의도’ 여부에 있지 않음은 분명하다”고 이야기한다. 이보다 조금 앞선 9월 1일자 한겨레신문 사설 「‘신경숙 파문’을 넘어 문학 풍토의 쇄신을 바란다」 역시 “작가의 주관적 의식 영역에 해당하는 문제를 놓고 의도적 베끼기라거나 그것이 아니라거나 어느 한쪽으로 주장하자는 것은 핵심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런 대목들은 표절과 관련한 논점의 전환을 내비치고 있는바, 결과로서 발생한 문자적 유사성이야말로 표절의 핵심 혹은 본질이라는 말로 짐작된다. 그런데 표절을 의도적 절도로 환원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이야말로 창비가 줄기차게 제시해오던 것이었다. ‘무의식적인 차용이나 도용도 포함하는’ 결과로서의 표절이라면 진작 인정할 수 있었을 거라는 내용이 창비 머리글에도 담겨있지만, 사실 그 점에 관해서라면 경향신문 인터뷰를 통해 “모두 제 탓입니다. 습지가 없는데 왕골이 돋아나겠어요. (…) 「전설」을 읽고 또 읽으면서 쇠스랑이 있으면 내 발등을 찍고 싶은 심정이었어요”라고 한 신경숙 자신이 먼저 인정하지 않았는가. 심지어 이 작품을 자신의 작품목록에서 빼겠다고 했으며 출판사는 곧바로 「전설」이 실린 소설집의 출고를 정지했다.

 

무차별적 단죄를 넘어 깊이있는 논의로

 

의도적 절도로서의 「전설」이나 상습범 신경숙을 단정했다가 그간의 논의를 통해 ‘의도’를 가정한 비난이 부적절하다는 점을 새삼 발견한 것이라면 스스로 그러한 비난에 얼마나 동조했는지도 솔직히 밝히는 게 옳다. 또한 그동안 신경숙의 ‘의도적 베껴쓰기’를 인정 안한다고 창비에 퍼부은 공격은 어찌되는 것인가. 창비가 다른 많은 것을 더 했어야 한다는 비판은 마땅히 감수해야 하겠지만 창비의 ‘묵언’과 ‘입장표명’은 ‘의도’에 대한 단정을 근거로 한 작가를 매장하는 일에 가담할 수 없다는 것이 아니었던가. 신경숙의 사과에 대해 대다수 비판자는 의도적 베껴쓰기를 자백하지 않았으므로 진정한 사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공격을 계속했으며 창비의 머리글이 계속해서 비난받은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최재봉의 칼럼은 의도적 베껴쓰기의 프레임을 제시한 이응준의 고발을 과했다고 평가하면서도 그런 프레임에 대한 창비의 문제제기 역시 일축하는 납득할 수 없는 논법을 구사하고 있다. 마치 그 프레임이 영향을 발휘한 적이 없고 본인이 거기에 동조한 적도 없다는 모르쇠의 제스처가 아닌가.

 

덧붙여 말하면 박민규 작가는 (신경숙과 달리) 표절혐의를 인정했다는 주장도 부정확하다. 논란의 중심인 「낮잠」에 관해 박민규가 인정한 것은 표절대상으로 지목된 『황혼유성군』을 다시 찾아보니 “읽은 기억이 있다는 것”이고 그래서 읽은 적이 없다는 생각에서 그 문제를 제기했던 평론가들을 비난한 데 대해 사과한 것이었다. 오히려 신경숙이 결과적인 표절을 인정하고 사과한 데 비해 박민규는 “객관적으로 비슷한 면이 확실히 있는 것 같”으니 “다시 한번 검토해보”겠다는 (그 나름으로 합리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박민규가 말했듯이 “뚜렷한 규정은 물론 가이드라인조차 없는 상황”을 확인하게 해준 점에서 「전설」의 표절혐의 제기는 의미있고 중요한 작업이었다. 무차별적 단죄의 태도로 한국문학의 폐허를 끝없이 증언하거나 사실관계의 분명한 확인 앞에서 슬쩍 빠져나가는 무책임한 자세를 넘어, 표절에 관한 한층 자유롭고 정확하며 깊이있는 논의를 이어가는 길이 그 작업의 의의를 충실히 살리는 길이라 믿는다.

 

황정아 / 문학평론가, 한림대 한림과학원 HK교수, 계간 『창작과비평』 편집위원

2015.10.7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