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르 르메트르 장편소설 『오르부아르』

백상웅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는데?”
-피에르 르메트르 장편소설 『오르부아르』

 

 

kyuku도네프라델 중위는 전쟁이 끝나면 보잘 것 없는 존재로 전락될까 전전긍긍했다. 그는 독일군이 진짜 철수하고 있는지를 밝히려고 정찰대를 보낸다. 이윽고 세발의 총성이 울리고 정찰대 둘은 사망한다. 도네프라델은 이를 빌미로 전투를 시작한다. 전투가 한창일 때, 한 병사가 사건이 조작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도네프라델은 진실을 감추기 위해 그 병사를 죽이려고 한다. 불행하게도 진실을 알게 된 병사의 이름은 알베르, 그저 애인과 결혼하고 평범한 은행원으로 복귀하고픈 소시민이었다. 알베르를 구한 병사의 이름은 에두아르, 수 세대에 걸친 유복한 조상들을 둔 것도, 전쟁에서 살아남은 것도 단지 운이 좋아서라고 여겼으나, 마지막 전투에서 부상을 당한다. 단 한차례, 운이 나빴을 뿐이다. 『오르부아르』(임호경 옮김, 열린책들 2015)는 마지막 전투를 조작해 일으키고, 그것을 알게 되고, 진실을 안 사람의 목숨을 구하게 된, 세 참전용사의 이야기다.

 

문제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

 

앙리 도네프라델 중위는 “제대하자마자 남는 군수품을 매입하여 되파는 사업에 뛰어들었다.”(177면) 때마침 “공동묘지를 만든다는 도의적이고 애국적인 대사업”(179면)이 시작된다. 돈 냄새를 맡은 그가 인맥을 동원해 따낸 사업은 전쟁 당시 아무렇게나 묻힌 전사자를 발굴해 새로 조성될 군사묘지까지 옮겨 다시 매장하는 일이었다. 그는 가문을 일으켜 세우고 가문의 성을 재건하고 싶었다. 싸구려 관에 시신을 넣으면 먼 길을 이동하다가 파손될 가능성이 크다는 목공소 사장의 이야기를 듣고도 뻔뻔하게도 “여기서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는데?”(268면) 하고 반문한다. 목공소 사장은 도네프라델을 겨우 설득하여 좋은 관을 구입하게끔 했지만, 도네프라델은 모든 관을 1.3미터짜리로 통일하여 오히려 단가를 낮춘다. 장군이며 장관 등 각계각층의 고위직을 등에 업은 그에게 이러한 일은 큰 문제가 아니다. 큰돈을 벌 수 있고, 그 돈으로 다시 뇌물을 먹일 수 있으니까.

 

문제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

알베르가 유감스럽게 여긴 것은,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110프랑짜리 ‘국민복’을 내놓은 정부가 이와 동시에 5프랑짜리 모르핀 ‘국민 앰플’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또 ‘국민 빵’, 혹은 ‘국민 석탄’, ‘국민 신발’, ‘국민 월세’, 그리고 심지어는 ‘국민 일자리’도 내놓을 수 있지 않았을까……? 알베르는 이런 식으로 생각하다가 결국에는 빨갱이가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은행은 그를 다시 받아주지 않았다. 국회의원들이 이 나라는 ‘우리의 소중한 병사들에게 경의와 감사의 빚을 지고 있노라’고 가슴에 손을 얹고 선언하던 시절은 이미 저만치에 있었다. (205면)

“한 명은 편집증이고 한 명은 장애인인”(255면) 두 남자, 알베르와 에두아르는 도네프라델 중위가 이끌었던 마지막 전투에서 겨우 살아남았다. 에두아르는 알베르를 구하려다가 부상을 당해 장애를 얻었고, 신분을 위조해 살아갔다. “알베르는 친구의 불행을 지극히 가슴 아파했고” 에두아르는 “알베르가 두 사람의 삶을 혼자서 짊어지느라 얼마나 힘들까”(258면) 생각했다. 어느날, 에두아르가 묘안을 냈다. 나라 전체가 전사자들에게 바치는 기념비를 갖고 싶어한다는 기사에서 착안한 아이디어였다. 조각상 스케치 몇장으로 전 국민을 상대로 사기를 치겠다는 말을 듣고 알베르는 친구가 돌아버린 게 아닐까 생각했으나 그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알베르는 에두아르와 기념비 조각상을 팔겠다는 광고 전단을 만들어 스케치를 배포한다. 돈이 들어오면 물건을 보내지 않고 도망가겠다는 심보였다. 물론 이 모든 일은, 마지막 전투에서 도네프라델 중위가 알베르를 죽이려 들지 않았다면 생기지 않을 수도 있었다.

 

전쟁이 끝나리라 믿었던 사람들

 

『오르부아르』에는 한가지 허구와 한가지 역사적 사실이 절묘하게 엮여 움직인다. 알베르와 에두아르의 전사자 기념비 사기와 앙리 도네프라델의 착복 행위가 바로 그것이다. “이렇게 하나는 역사적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허구이지만, 그 반대의 경우였다 해도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역자의 말’ 667면) 이 두가지 사건이 주는 서스펜스가 670면이 넘는 이 책을 끝까지 읽게 하는 힘이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 여기저기에 궁금증을 자아내는 장치를 심어두어 추리소설을 보는 듯한 긴장감까지 돈다.

 

전쟁이 끝난 직후, 형편없이 변해버린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그러니까 문제가 무엇인지 모르는 척하거나 모르는 사람들은 갈수록 사회·경제적 지위를 높여갔고, 문제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은 무기력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으니까. 이를 소재로 삼아 『오르부아르』가 주는 긴장감은 단순하다. 과연 악인은 벌을 받을 것인가, 주인공들은 성공할 것인가, 결말은 도대체 어떻게 끝날 것인가. 물론 “이 전쟁이 곧 끝나리라 믿었던 사람들은 모두가 오래전에 죽었다.”(11면) 그리고 두 부류만 남았다. “군장을 꾸려 놓고 느긋이 앉아 담배를 피우거나 편지를 쓰면서 전쟁이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싶은” 사람들과, “마지막 남은 시간 동안 조금이라도 더 독일놈들과 치고받고 싶어 안달하는 이들”(12면)만이 세상에 남았다. 선거 때만 되면 ‘북풍’을 일으키거나, 핵실험을 하고 로켓을 쏘아 체제를 강화하는 부류가 여전히 있고, 현실을 뻔히 아는 소시민들조차 머리 아픈 일이 끝나기만을 바라게 만들고 있으니 권력집단의 체제유지 수단은 1차 세계대전 때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크게 없다.

 

이야기를 ‘재밌게’ 만들 줄 아는 작가

 

지난해 말, 이 책의 저자 삐에르 르메트르(Pierre Lemaitre)가 방한했다. 매체는 주로 그가 55세에 늦깎이 등단을 했다는 점과 『웨딩드레스』 『실업자』 『알렉스』 등 발표한 모든 작품이 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점, 특히 추리소설의 장인이라 불리는 그가 이례적으로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공꾸르상을 수상했다는 점을 강조하여 보도했다. 사실적인 보도지만, 소설을 ‘재밌는 소설’과 ‘재미없는 소설’로 명료하게 나누는 나로서는 ‘이례적’이라는 말이 걸리기는 한다. 굳이 대중작가와 본격문학 작가의 경계를 나눴어야 했을까 싶다. 물론 국내 언론 탓만 할 수는 없다. 공꾸르상 자체가 이른바 ‘본격문학’에만 주어지는 보수적인 상이었으니 ‘이례적’일 수밖에 없다는 건 이해한다. “이것은 스티븐 킹이나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어느 날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로 선정되었다는 것만큼이나 놀라운 사건”(‘역자의 말’ 672면)임은 분명하다.

 

나는 작품의 장르성이 문학성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소설의 첫번째 덕목은 ‘재미’라고 생각한다. 어떤 소설의 소개나 서평 등에서 장르와 본격문학의 경계를 느낄 때마다 나는 본격문학 혹은 순문학이란 무엇인가를 스스로에게 되묻고는 한다. 늘 답은 나오지 않는다. 어쨌든 나에게 삐에르 르메트르는 읽기 벅차 보일 수 있는 분량의 장편소설을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게 만들어 마지막 페이지까지 ‘재밌게’ 안내하는 작가이고, 그럴 수 있기에 유럽 전역의 추리소설상을 휩쓸고 공꾸르상까지 수상한 작가이다. 『오르부아르』 외에 『웨딩드레스』 『실업자』를 번역한 임호경 선생의 말대로 “숨 막히는 서스펜스, 충격적인 반전, 술술 읽히는 재미 등 추리소설의 덕목들을 갖추고 있을 뿐 아니라, 이런 종류의 소설로는 보기 드문 문학성”(‘역자의 말’ 671면)까지 느껴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오르부아르』에도 이러한 장점이 그대로 담겨 있다. 여기에 더해, 시대가 지나도 변하지 않은 권력의 부패와 진실 은폐 등 권력자의 행태, 소시민의 처지를 읽으며 분노하다가도 제법 통쾌할 수 있으니, 앞뒤로 꽉 막힌 요즘 같은 세상과 참 어울리는 소설이라 할 수 있다.

 

 

백상웅 / 시인

2016.2.24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