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의 세계화

윤지관

무엇을 번역할 것인가

윤지관 | 한국문학번역원 원장. 덕성여대 교수, 영문학.

세계화라는 말은 이제 더이상 전문용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일상적인 단어가 되었다. 지금이 세계화의 시대라는 표현은 너무 흔해서 오히려 의미를 상실할 지경이고, 심심치 않게 눈에 뜨이는 동남아출신 노동자나 때때로 맛보는 퓨전요리로 그 명제가 구호만은 아님을 실감하기도 한다. 문학에서도 세계화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문인들의 해외방문이 잦아졌고 그 경험은 그들의 작품 속에 직간접적으로 반영된다. 세계화의 현실에 적극 대응하고 활로를 모색하려는 작가들의 시도가 전에 볼 수 없던 문학계의 풍경을 낳는다.

망명기간 동안 미국과 독일을 전전했던 소설가 황석영은 수년째 런던과 빠리를 생활공간으로 삼아 말 그대로 문학인의 코스모폴리타니즘을 실천하고 있고, 작가회의의 젊은 문인들이 베트남을 비롯한 아시아와의 소통을 본격화하고 있는 것도 한 예이다. 한국문학을 세계화한다는 것이 문단이나 사회의 과제가 되어 있지만, 따지고 보면 우리 문학의 내용 속에는 세계화의 양상들이 이미 틈입해 있다. 얼마 전 한국문학번역원에서 주최한 토론회 ‘한국문학의 세계화의 현실과 전망’에서 소설가 오수연이 “이미 한국문학의 내용적 세계진출”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한 것도 이런 취지에서일 것이다.

문제는 작가의 이어진 지적대로 “외국어로 번역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내용적 세계성마저 인정받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잦다는 점이다. 한국문학의 세계적 가치는 실상 그 내용의 보편성이 구현될 때 실현되는 것이지만, 한국어를 이해하는 세계의 인구는 너무나 적다. 결국 한국문학 세계화는 번역이라는 통로를 거치지 않을 수 없으니, 번역은 우리 민족어를 통해 도달된 창조적 성취가 세계문학의 일원이 되는 데 관건인 셈이다. 문학에서도 우물 안 개구리를 벗어나야 한다고 하면 어폐가 있겠으되, 세계화가 하나의 대세로 자리잡은 시대에 번역을 통한 해외소개 확대는 현단계의 한국문학이 마주한 도전이자 기회라고 할 수 있다.

한국문학의 중요한 성취들이 다 외국어로 번역된 것도 아니고, 번역이 많이 되었다고 해서 세계적인 작가가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외국 독자나 문단에 접근하는 길은 번역밖에 없으니 아무리 훌륭한 작가라도 번역이 되어 있지 않으면 해외에서는 존재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점도 엄연한 현실이다. 그렇다고 모든 작가의 모든 작품을 모든 외국어로 번역할 수는 없는 일, 결국 어떤 작가의 어떤 작품을 번역할 것인가의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게 된다.

지난 토론회에서 한국문학이 체계적으로 번역 소개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주장이 잇따라 제기된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이는 지금까지 한국문학의 중심적인 성취들이 제 모습대로 번역되지 않았다는 반성과 비판과도 맞물려 있다. 그간 번역대상이 되는 작품선정은 자유로운 공모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소수 번역자들의 선호에 따라 번역작품이 결정되는 추세도 없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한국문학의 해외소개에 어떤 편향성이 나타나거나, 아니면 꼭 번역되어야 할 작품이 지원대상에서 밀려나는 문제들이 생겨났다. 한국문학의 체계적 소개에 대한 요구는 진작부터 있어왔지만, 이번 토론회에서 표면화된 구체적인 문제제기들은 한국문학의 세계화가 문단의 첨예한 화두로 떠올랐음을 말해준다.

한국문학번역원은 이런 요구에 부응해서 내년부터 번역 지정과제를 공시할 계획이다. 지정과제를 결정하는 일이 수월하지만은 아닐 것이다. 한국문학의 해외소개가 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대의를 부정할 사람은 별로 없을 터이나, 우선적으로 번역되어야 할 문학작품이 무엇인지 묻는 순간부터 각양각색의 주장들이 터져나올 것임은 불 보듯 뻔하다. 소설이냐 시냐, 고전문학이냐 현대문학이냐라는 넓은 범위의 논의에서부터 현대문학 가운데서도 식민지시대와 해방 이후 중 비중을 어디에 어떻게 둘 것인가, 해방 이후에서도 연대별로 어느 시기를 더 중시할 것인가의 논란이 따를 법하다.

나아가 어떤 작가 혹은 어떤 작품이 우선적인 번역대상인가의 영역까지 들어서면 문제는 한층 심각해진다. 이 논란은 비교적 최근에 등단하여 활동하고 있는 젊은 작가들을 두고서는 더욱 첨예해질 것이다. 마치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처럼 번역의 문제는 한국문학의 지형을 둘러싼 논쟁에 다시 불을 붙여 결국 아무도 감당할 수 없는 혼란을 초래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같은 정황은 문학의 ‘탁월성’을 논하는 것 자체를 구시대의 유물로 돌리는 탈정전(脫正典)주의자들의 목소리에 힘을 보탤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랜 속담대로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글 이유는 없다. 오히려 해외에 소개할 한국문학의 번역대상 작품이 무엇이냐를 둘러싼 토론은 우리 평단으로서 중요한 전기가 될 수도 있다. 현단계에서 한국문학사를 구성하게 될 정전에 대한 논의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문학에 대해 함께 논의하는 과정에서 한국문학의 전통과 정체성, 특수성과 보편성, 질적 성취도와 현대문학의 진로, 외국문학과의 비교를 통한 자기점검과 영역의 확장과 심화 등 문학논의의 중심적인 질문들이 개별 작품에 대한 평가와 더불어 재론될 수 있을 것이다.

번역을 계기로 한국문학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세계와의 교통에 대한 새로운 전망을 여는 일은 의미가 모호한 대로 한국문학의 세계화라는 명제에 부응하는 길이기도 하다. 결국 문학의 세계화란 민족문학의 창조적 성취가 없이는 무의미한 것이며 세계문학도 각 민족어로 도달한 성과들의 상호관계를 통해서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2006.08.08 ⓒ 윤지관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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