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해빙 국면을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김창수

2·13합의와 남북관계 전망

김창수 | 민화협 정책실장, 통일맞이 정책실장

지난 2월 13일 6자회담에서 ‘9·19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초기조치’가 합의되었다. 북한 핵문제는 90년대 초반부터 15년 넘게 한반도 정세를 긴장시켜온 핵심사안인데, 이번 2·13합의를 통해 그 평화적 해결을 위한 구체적인 조치가 마련됐다는 점은 큰 의미가 있다. 물론 그동안 94년 제네바합의, 2000년 북미공동선언, 2005년 9·19공동성명 등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노력이 성과를 거두기는 했지만, 이 약속들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기에 2·13합의에 거는 기대는 클 수밖에 없다.

북핵문제가 불거진 이후 지금까지 문제해결을 위해 취해진 조치의 핵심은 ‘북한의 핵폐기(비핵화)와 북미관계개선’이다. 하지만 그동안 핵폐기 절차와 북미관계개선 방안을 놓고 어떤 순서로 어떻게 진행할지는 미결인 채로 남아 있었다.

북핵문제 평화적 해결을 위한 경로

2·13합의는 북핵폐기의 절차로 핵폐쇄→핵불능→핵폐기의 3단계를 설정했다. 60일 이내에 완료되는 초기단계에서 북한은 핵폐쇄를 실행하고, 미국을 비롯한 관련국들은 이에 상응하는 조치를 이행해야 한다. 이처럼 초기단계를 설정하고 그에 따르는 행동조치와 일정을 구체적으로 밝혀놓아 이행을 쉽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이전의 여러 합의와는 다르다.

60일 이내 초기단계 조치를 이행한다면 다음 단계로 발전하는 추진력은 생길 것이다. 하지만 2단계 핵불능, 3단계 핵폐기에 상응하는 조치들은 아직 합의되지 않았다. 1단계 조치의 이행여부와 2단계 핵불능과 에너지 지원, 3단계 핵폐기와 북미 국교정상화에 대한 합의에 따라 북핵문제의 향방이 좌우될 것이다. 2·13합의 이후 일시적인 해빙 분위기는 조성되겠지만 길게 보면 아직 여러모로 불확실한 상황이다.

이번 합의는 북핵실험 이후 미국 공화당의 중간선거 패배를 배경에 깔고 있다. 중간선거 결과 이라크전과 대북정책에 대한 미국 내부의 비판여론에 대응하기 위해 부시행정부가 북한과 전격적으로 합의했다는 것이 유력한 분석이다. 지난 1월 중순 미국은 북한이 요구해온 북미 양자회담을 베를린에서 개최했다. 여기서 방코델타아시아(BDA) 해제를 약속하고, 한미합동군사훈련에 대해서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반도 정세, 오랜만에 순풍을 맞나

이같은 미국의 대북정책 전환이 중장기적으로 지속될 수 있을지는 불분명하다. 그러나 부시행정부가 지난 6년간 추진해온 대북정책을 ‘전술적으로’ 전환했다 하더라도 짧은 시간 안에 과거의 강경책으로 되돌아갈 가능성은 높지 않다. 오히려 합의사항 이행이 지체되면서 북핵문제 해결의 속도가 늦추어질 것으로 보인다. BDA 해제의 범위와 위폐문제에 대한 미국의 입장, 핵무기와 고농축우라늄의 핵프로그램 신고대상 포함 여부, 한미합동군사훈련 중단 논란, 일본의 납북자 문제제기 등 이행의 걸림돌이 한둘이 아니다. 초기단계조치 이후 열릴 예정인 6자 외무장관회담은 바로 이런 장애물을 처리할 장치이기 때문에 중요하다.

한편 북한이 핵폐기를 목표로 하면서 그 전단계에서 핵폐쇄와 핵불능을 수용한 것도 2·13합의의 성과를 예상보다 두드러지게 만든 요인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애초에 미국은 북한이 취할 조치로 영변 핵시설 가동중지, 핵사찰 수용, 모든 핵프로그램 신고, 핵실험장 폐쇄 등 4개 사항을 준비했다고 한다. 북한은 핵실험장 폐쇄를 빼고 미국의 요구를 모두 받아들였다. 이에 대해 핵실험장 폐쇄가 검증하기가 어려워 부담만 큰 사안이라는 한국정부의 주장을 미국이 수용해서 처음부터 북에 제기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어쨌든 북한은 미국의 요구를 사실상 전폭적으로 수용한 셈이다. 이러한 점도 이번 합의와 관련해 향후 북한의 태도를 가늠하게 해준다.

남북관계 진전의 든든한 초석으로 삼아야

2·13합의로 남북관계는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미국의 정책전환으로 남한사회 내부에서 대북정책의 동력이 생기고 있다. 초기조치에서 미국의 요구를 수용한 태도로 볼 때 북한은 대남정책의 행보도 빠르게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2·13합의 이행의 걸림돌들은 남북관계 진전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단기적으로는 남북관계에 봄볕이 내리쬘 것이다. 이같은 유화국면을 맞아, 앞으로 예상되는 여러 장애물을 뛰어넘을 수 있는 힘을 마련해야 한다. 2·13합의 과정에서 나타난 북한의 태도를 볼 때 2월 27일부터 평양에서 열리는 20차 장관급회담에서 남북관계를 진전시킬 카드를 꺼낼 가능성이 높다. 우리 통일부도 상황에 영향을 받아 남북관계가 역진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장관급회담을 비롯한 각종 남북회담 정례화와 상호 신뢰회복을 위한 인도적 지원 등 회담준비에 만전을 기하고 있으리라 믿는다.

2·13합의의 초기단계가 완료되는 시점은 4월 13일이다. 그후에는 북핵문제 해결과 남북관계가 병행발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북핵문제에 걸림돌이 생기더라도 남북관계는 3월의 봄볕 아래 뿌린 씨앗들이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경작을 계속해야 한다. 미국이 제시한 핵프로그램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해체'(CVID)가 아니라, 민족화해를 완전하고 돌이킬 수 없게 진전시키고 냉전체제를 검증 가능하게 해체해야 한다.

남북정상회담과 3자정상회담의 전망

북핵문제 해결과 남북관계를 병행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남북정상회담이 필요하다.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남북관계를 진전시키고 북핵문제와 한반도 평화문제에 대한 최소한의 기본조치를 마련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정부가 6자회담에서 맡을 역할도 커질 것이며, 정상회담 의 성과를 바탕으로 6자회담이 나아갈 동력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2·13합의 이후 남북정상회담의 전망이 밝기만 한 것은 아니다. 남북한 당국의 의지가 불분명한데다, 국내에서는 정상회담이 지나치게 정치쟁점화되어 있어서 추진하기 쉽지 않다. 또 성사된다고 하더라도 대선용 아니냐는 시비에 휘말려 합의사항 이행에 어려움이 생길 수도 있다.

남북정상회담과 함께 합의국면을 발전시킬 다른 요인으로 예상할 수 있는 것이 남·북·미 3자정상회담이다. 작년 11월 18일 부시 대통령이 제안한 것으로 알려진 3자 정상의 한국전쟁 종전선언은 북핵의 폐기를 전제로 하는 것이지만, 그 취지와 내용이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은 상태다. 그러나 2·13합의 이행과정에서 힐 차관보와 김계관 외무성 부상의 교차방문, 6자 외무장관회담 개최, 라이스 국무장관 방북 등이 이루어진다면 3자정상회담을 위한 실무준비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셈이다.

북한 핵폐기 과정에서 발생할지 모를 걸림돌을 정치적으로 미리 해결하는 것도 필요하다. 3자정상회담이 열린다면 북핵폐기, 북미수교, 종전과 한반도 평화선언 등이 주요의제가 될 것이다. 한편 6월에 평양에서 열리는 6·15통일대축전에서 남북당국이 만나는 것도 향후 남북관계를 발전시킬 주요변수로 주목해볼 만한 일이다.

2007.02.20 ⓒ 김창수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