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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안 가브리엘 바스케스 『추락하는 모든 것들의 소음』

정영수

광기의 시대 뒤에 남은 것
-후안 가브리엘 바스케스 『추락하는 모든 것들의 소음』

 

 

liulyu한동안 누군가가 내게 요즘 무슨 책을 읽고 있느냐고 물었을 때 나는 후안 가브리엘 바스께스(Juan Gabriel Vásquez)의 『추락하는 모든 것들의 소음』(조구호 옮김, 문학동네 2016)이라고 대답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사람들의 반응이 어딘지 이상했다. 그 작품에 대해 처음 들어보았다는 사실에 왠지 모르게 부끄러움 비슷한 반응을 보였던 것이다. 그것은 바스께스라는 이름에서 풍겨져나오는 알 수 없는 아우라 때문인 듯한데, 순전히 이름으로 인해 사람들이 그를 이미 익히 알고 있어야 할 고전 작가라고 지레 생각해버린 것이다. 하지만 사실 그들은 부끄러움을 느낄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꼴롬비아(Colombia)의 소설가인 바스께스는 이제 마흔을 갓 넘긴, 비교적 젊은 작가일 뿐만 아니라 그동안 국내에 번역된 작품이 하나도 없으니 『추락하는 모든 것들의 소음』이 우리나라에서는 사실상 그의 데뷔작인 셈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거장의 향기를 풍기는 그 이름만큼이나 만만치 않은 필력을 뽐내고 있는 이 작가의 ‘국내 데뷔작’을 우리는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내가 이 작가에게 완전히 빠져버린 바람에 필연적으로 일부 배제되고 만 객관성을 감안해 말해보자면, 『추락하는 모든 것들의 소음』은 시대의 비극과 개인의 비극의 교집합을 섬세한 시선으로 포착한 뒤 자칫 지나치게 어둡고 무겁게만 흘러갈 수 있는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고 장대한 서사에 자연스럽게 녹여내 시대에 대한 통찰을 보여줌과 동시에 진한 감정적 여운까지 전달하는, 그야말로 재미있으며 동시에 ‘웅숭깊은’ 작품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는 재미있는 소설을 좋아한다. 거기다 ‘웅숭깊음’까지 더했다면 더이상 뭘 바라겠는가?

 

모든 것이 추락한다

 

소설은 광기와 폭력이 지배하는 20세기말 꼴롬비아의 수도 보고따를 무대로 하고 있다. 법학 교수인 안토니오 얌마라는 당구장에서 우연히 우수에 젖은 얼굴을 하고 있는 리카르도 라베르데라는 늙은 남자를 만나게 된다. 그들은 특별한 친분 없이 그저 가끔 당구나 함께 치는 사이였을 뿐이다. 그런데 안토니오는 (그러지 말았어야 하는데) 리카르도 라베르데에게 왠지 모르게 알 수 없는 호기심을 느낀다. 사람들은 리카르도가 과거에 어떤 일을 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저 오랫동안 감옥에 있었다는 소문만 있을 뿐. 안토니오는 리카르도와 몇마디 대화를 주고받은 결과 그가 크리스마스를 맞이해 미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오는 아내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런데 즐거운 재회에 대한 기대는 갑작스러운 비극으로 산산이 부서지는데, 리카르도의 아내가 탄 비행기가 추락하는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이야기는 여기에서부터 본격적으로 비극적인 방향으로 흘러간다. 리카르도는 그 사건 이후 여기저기에 돈을 구하러 다니고 결국 그 돈으로 어떤 것을 손에 넣게 되는데 그것은 평범하게 보이는 녹음테이프이다. 리카르도가 그 녹음테이프를 들으며 조용히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안토니오가 지켜본 날,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들의 습격으로 리카르도는 살해당하고, 안토니오 또한 총에 맞아 장애를 얻게 된다. 그 일로 일상이 철저히 파괴되어 보고따라는 도시를 두려워하게 된 안토니오는 자신이 리카르도를 만나게 된 사실을 끊임없이 저주하는 한편 아이러니하게도 그에게 광적으로 집착하며 그의 죽음의 원인을 추적해나간다. 그러던 중 그는 리카르도의 딸 마야를 만나게 되고 리카르도의 과거에 얽힌 수수께끼가 조금씩 풀려나가기 시작한다.

 

앞에서 언급했듯 이 소설은 시대적 비극과 개인적 비극의 교집합을 포착해낸다. 마치 개인적 비극처럼 보이는 일도 근본적으로는 시대적인 원인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시선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것이다. 미국에서 온 일레인이라는 여자와 결혼한 리카르도. 단지 행복하게 살고 싶어서 비행기 조종을 배우기 시작한 그는 점차 위험한 물건을 수송하는 일에 손을 대고 끝내는 마약 운반에 개입하게 된다. 조금씩 풍요로워지는 그들의 일상은 위태롭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비극은 한순간에 일어난다. 리카르도의 마지막 비행에서 일어난 비극으로 그들이 꿈꾼 삶은 여지없이 부서져버린다. 리카르도가 맞이하게 된 비극은 시대를 거슬러 안토니오가 맞이한 비극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다. 리카르도의 비극에서 시작된 일은 마야에게로 이어지고, 마야에게로 이어진 비극은 다시 안토니오에게로, 그리고 안토니오의 아내에게로…… 모두에게로 퍼져나간다. 평온해 보이던 보고따에서의 삶은 마치 부서지기 쉬운 성냥개비 탑처럼 한순간에 무너져내린다. 붕괴. 급작스러운 하강. 모든 것이 추락한 것이다.

 

추락한 모든 것들의 침묵

 

리카르도 라베르데가 살아온 20세기말 꼴롬비아는 전세계에서 거래되는 마약의 팔십 퍼센트를 공급하던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지배하던 시대였다. 폭력의 과잉, 전염되는 광기, 모든 이들이 두려움에 떨던 시대. 소설이 시작되는 시점은 에스코바르의 카르텔이 붕괴되고 난 직후인 2009년이다. 소설은 일종의 거대한 동물원인 에스코바르의 ‘아시엔다’에서 도망친 검은 진주색 하마가 죽는 것으로 시작한다. 에스코바르의 아시엔다는 모든 아이들이 놀러 가고 싶어하는, 에스코바르의 번영을 상징하는 공간인 동시에 피 묻은 돈으로 건립되었다는 비난을 받는 아이러니한 공간이다. 소설의 종반부, 리카르도의 생애를 알게 된 안토니오가 그의 딸 마야와 함께 폐허가 된 그곳을 방문하게 되는 장면은 그래서 더욱 인상적이다. 그 어떤 소음도 들리지 않는, 완벽히 고요한 폐허. 그들은 그 폐허 위를 걸으며 한참 동안 유년시절의 추억을 회상하고, 많은 이들의 참혹한 죽음을 떠올린다. 그리고 한 시대가 종결되었음을, 그러나 여전히 그들에게는 결코 지워지지 않을 무언가가 남아 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아이러니는 당연하게도 작품의 무대가 된 꼴롬비아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우리에게도 존재했던 폭력과 광기의 시대를 떠올린다. 그리고 그것이 남긴 것을, 또 그것이 완전히 종결되지 않았음을 생각한다. 물론 나는 21세기를 살아온 세대이고, (완전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평화로운 시대에서 자라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추락하는 모든 것들의 소음』을 읽으며 우리는 모두 그 잔혹하며 아름다운 시대를 통과해왔음을, 우리는 그 폐허 속을 여전히 걷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소설의 마지막에 리카르도가 눈물을 흘리며 듣던 녹음테이프를 안토니오와 마야가 반복해서 듣는 장면이 등장한다. 리카르도의 아내 일레인이 탄 비행기가 추락하기 직전 블랙박스에 녹음된 소리. 평화로운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시작되는 조종사들의 긴박한 외침. 불길한 대화 끝에 그들은 간절한 목소리로 되풀이해 염원한다. “위로, 위로, 위로……” 그리고 들려오는 비명과 충돌음. 소음 속에서 비행기에 타고 있는 사람들이, 일레인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이 소설의 제목처럼 ‘추락하는’ 모든 것은 소음을 낸다. 그러나 추락 이후에는 모든 비명과 소음이 사라지고 오로지 침묵만이 남겨진다. 온전한 고요. 어쩌면 가장 두려운 것은 그 고요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그 소음이라도 그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것이 비명일지라도. 안토니오와 마야가 그 녹음된 테이프를 듣고 또 듣고, 또 듣기를 멈추지 못하는 것처럼.

 

 

정영수 / 소설가

2016.3.16 ⓒ 창비주간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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