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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악범죄, 인권, 민주주의

조효제

조효제 / 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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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문제가 사회 전반을 뒤흔들더니 정치로까지 번졌다. 성폭력과 아동대상 성범죄에 대한 분노가 하늘을 찌른다. 인권 탓에 강력범죄가 늘었다는 주장마저 나돈다. 그런데 이런 여론을 무조건 탓할 수는 없다. 일반인의 불안심리는 그 자체가 우리 시대의 병리를 징후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또한 보수정치인들과 일부 언론이 이런 분위기에 편승하여 사태를 선정적으로 단순화하고 증폭하는 현실도 감안해야 한다.

 

민주화가 이루어진 후 민주주의가 진행되면서 범죄율도 함께 증가하는 것은 국제적으로 잘 알려진 사실이다. 브라질, 남아프리카, 아르헨띠나 등 여러 포스트-민주화 국가들의 사례가 이를 입증한다. 크게 보면 한국도 이런 추세에 속하는 경우다. 왜 민주주의의 진전과 범죄율 사이에 일종의 상관관계—인과관계가 아닌—가 존재할까?

 

민주주의의 진전과 범죄율 간의 복합적인 관계

 

우선 권위주의 시절엔 강압적 통치방식이 정치적 자유와 일반 범죄를 동시에 억눌렀다는 가설을 기억하자. 그런데 민주화가 된 이후에는 공권력을 둘러싸고 두가지 현상이 나타난다. 한편으로 구시대와 빨리 결별해야 한다는 ‘청산심리’가 대세를 이루면서 더이상 권위주의적 방식으로 공권력을 동원하지 못하게 된다. 다른 한편으로 민주체제에 걸맞은 합법적이고 정당한 방식으로 치안을 확보하기에는 자신감이 부족하고 경험도 적다.

 

특히 경찰은 딜레마에 빠진다. 옛날식으로 하면 독재라고 비판받고, 민주적으로 하면 무능하다고 손가락질 당한다. 인권운동도 마찬가지다. 정치적 탄압에 반대하여 인권을 옹호할 때엔 국민의 지지를 받기 쉬웠지만, 이제 범죄와 관련해서 인권을 옹호하면 오히려 국민의 지탄을 받기 십상이다. 민주주의의 역설이다.

 

시장숭배-경쟁만능식 경제정책도 큰몫을 했다. 사회양극화가 극심해지면서 실직, 박탈, 열패감으로 자포자기에 빠진 잠재적 가해자들이 양산되었다. 사회안전망이 무너지면서 가정과 학교와 지역사회의 지지망 바깥에 놓인 잠재적 피해자들 역시 엄청나게 늘어났다. 이런 배경에서 가해자의 확산, 심각한 범행양상, 피해자에 대한 연민, 범죄자의 인권만 소중하냐는 식의 반감이 겹쳐져 대중의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이런 악순환에 대한 책임은 정부가 져야 마땅하다. 이명박 대통력의 선거공약과 취임사 어느 구석에도 범죄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그 흔한 약속 한마디 없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 국가의 일차적 책무인데 이제 와서 범죄와의 전쟁 운운하는 건 ‘너무 늦고 너무 작은’ 조치에 불과하다.

 

마지막으로 인터넷과 모바일 기술의 발전으로 한국이 착취적 음란물의 생산과 소비에 관한 한 이미 ‘강대국’ 반열에 들어선 점을 빼놓을 수 없다. 이렇듯 민주주의와 범죄율은 복합적으로 이해해야 하는데도 마치 민주주의와 인권이 범죄의 직접 원인인 양 몰아가는 건 무지하거나 악의적인 태도가 아닐 수 없다.

 

흉악범죄, 자유민주주의체제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옳은가

 

일부 강력범죄에 대해 대중이 특히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세계적으로 공통된 현상이다. 예컨대 체제변화 이후 범죄문제로 몸살을 앓았던 우크라이나의 경우, 강도-강간-아동과 관련된 살인범을 극형에 처하라는 요구가 대단히 강했다. 전체 살인사건 중 강도-강간-아동관련 살인이 3.5%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이처럼 범죄의 실상과 범죄에 대한 대중의 인식 사이에는 큰 격차가 있다. 재범자에 대한 관리 부실을 시정해야 한다는 건 백번 맞는 말이지만, 그것만으로 강력범죄를 줄이기는 불가능하다.

 

강력범죄로 인해 시민의 불안이 커질수록 공권력에 의한 강경책이 등장할 여지도 커진다. 그리고 이런 조치가 여론의 지지를 얻을 경우 감시와 처벌의 수준이 전반적으로 상승한다. 이때 일상적 사회통제(가령 불심검문)의 수준도 함께 상승할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다른 수단에 의한 권위주의’가 재림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사형제에 대해 언급한 것이 좋은 예다. 아버지가 유신체제라는 명분으로 ‘북괴’의 위협에 맞서 정치적 경찰국가를 만들더니, 자식은 국민행복이라는 명분으로 ‘범죄’의 위협에 맞서 사회적 경찰국가를 만들겠다는 말처럼 들린다.

 

민주주의는 여러 차원을 거치며 발전한다. 87년체제가 정치민주화의 서막을 연 이후, 최근 들어 경제민주화 논의가 활발한가 싶더니, 범죄문제를 계기로 ‘사회민주화’를 둘러싼 논쟁까지 촉발되었다. 사회민주화란 각종 사회문제를 민주적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일체의 노력과 움직임을 뜻한다. 따라서 성범죄자의 고환을 제거하자는 사람은 사회민주화의 반대자이고, 사회문제의 뿌리를 제거하자는 사람은 사회민주화의 지지자라 할 수 있다.

 

최근의 무상급식 논쟁이 복지담론에 큰 영향을 준 것처럼, 흉악범죄 논쟁도 사회문제에 있어 민주시민들에게 중요한 학습효과를 주었다. ‘자유민주주의’체제에서는 범죄문제도 자유-민주-인권 원칙의 테두리 내에서 다루어야 옳다. 또한 장기적 사회정책을 중심에 놓고 치안대책이 그것을 보완하는 방식이 진정한 자유민주적 범죄 대응이다. 바로 이것이 ‘자유민주주의’체제의 강점이자 자랑이 되어야 한다. 이번 논란에서 얻은 정치적 교훈이 있다면 사회민주화에 대한 태도로써 진정한 자유민주주의자와, 자유와 민주의 탈을 쓴 잠복성 권위주의세력을 확실히 구분할 수 있게 된 점이다.

 

2012.9.12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