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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연재

1회

사회자는 그를 이렇게 소개했다. 밤마다 여동생에게 자장가를 불러주고, 받아쓰기에서 늘 만점을 받고, 고물상을 하는 할아버지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아이였다고. 그는 스튜디오에 걸려 있는 흑백 사진들을 보았다. 세살짜리 여동생을 업고 있는 진구가 보였다. 사진을 보자 포대기 끈이 가슴을 조여 숨 쉬기 힘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여동생 역을 맡았던 아이가 시도때도 없이 칭얼거렸던 것도. 부뚜막에 앉아 고구마를 먹고 있는 진구의 사진도 보였다. 동생과 눈사람을 만들고 있는 진구. 할아버지의 리어카를 밀고 있는 진구. 삼십팔년 전의 사진 같지가 않았다. 오십년, 아니, 백년 전의 사진처럼 보였다. “저 아이는 진구죠. 제가 아니라.” 그는 사진 속의 진구를 가리키며 말했다. 진구로 살았던 일년 팔개월 동안 사람들은 그를 기특한 아이라고 불렀다. 길을 걷다보면 사람들이 머리를 쓰다듬으며 한마디씩 했다. 니가 진구구나. 아이고, 기특하기도 하지. 어린 그는 그 말이 좋았다. 착한 아이도 아니고, 대견한 아이도 아니고, 기특한 아이라니. 기특이라고 발음해보면 자신만이 독특한 존재가 된 것만 같았다. 그는 스튜디오 중앙에 걸려 있는 대형 사진을 가리키며 다시 한번 말했다. “동생에게 자장가를 불러주던 그 기특한 아이는 제가 아니죠. 저기 저 사진 속에 있다고요.” 고물상 입구에 할아버지와 큰 형이 서 있고 그 앞에 진구와 동생인 민지가 앉아 있는 사진이었다. <형구네 고물상>이라는 현판도 보였다. “그렇죠. 지금은 진구가 아니라 박형민씨니까요.” 사회자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는 사회자가 자신의 말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아 실망스러웠다. 그는 지금 와서 진구를 사진 밖으로 불러내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묻고 싶었지만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뭐하러 토크쇼엔 나가는데? 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중학생이 된 뒤로 딸은 그를 볼 때마다 따지듯 물었다. 도대체 머리는 왜 그렇게 자르는데? 술은 왜 마시는데? 아빤 그게 웃기다고 생각해? 그렇게 물을 때마다 그는 늘 똑같은 대답을 했다. 그러게. 그는 딸에게 변명을 하던 것처럼 그 말을 중얼거려보았다. “그러게요.” 사회자가 네? 하고 되물었다. “그러게요. 지금은 박형민이니까요.” 그렇게 말을 하고 나니 그는 사회자가 자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게 아니라 자신조차도 스스로 말하고 싶은 것이 명확하게 무엇인지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출연 제안을 들었을 때만 해도 할 말이 많을 것만 같았는데, 수십년 전 찍은 흑백사진들을 보니 진구는 사진 속에 갇혀 영원히 자라지 않은 아이였다는 사실만이 다시 떠올랐다. 그 자라지 않는 아이를 끌어안고 십대 시절을 통과하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던가. 그는 사회자 얼굴을 바라보면서 그 시절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지 말자고 마음속으로 다짐을 했다.

“그럼, 시간을 삼십팔년 전으로 되돌려볼까요? 어떻게 아역배우가 됐죠?” 사회자가 물었다. “PD님이 어머니 가게 단골손님이었어요.” 정확히 말하면 그가 아역 배우가 된 뒤로 단골손님이 된 것이지만 그는 그렇게 대답했다. “제 기억에는 당시 PD의 아들이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던 것 같아요.” 사회자가 말했다. 그 소문은 오랫동안 그를 따라다녔다. PD의 아들이다. 아니다, 아들은 아니고, 엄마가 PD의 숨겨진 애인이다. 뭐 그런 소문들. 어느 잡지에서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그의 어머니를 인터뷰하기도 했지만 소문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별 볼 일 없는 아이가 갑자기 주연을 맡으니 그런 소문이 돌았겠죠. 아버지도 없고.” 사회자도 당시 이런저런 소문을 들었다고 대답했다. “유명 정치인의 숨겨진 자식이라는 소문도 있었죠?” 사회자의 말에 그가 고개를 끄떡였다. 사회자는 그 소문을 아버지에게 들었다. 사회자의 아버지는 방송국 앞에서 작은 잡화점을 운영했다. 말이 잡화점이지 실상은 담뱃가게에 가까웠는데 담배를 사러 온 방송국 직원들이 가게 입구에 있던 커피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먹으면서 이런저런 수다를 떨곤 했다. 그래서 사회자의 아버지는 방송국에 떠도는 이런저런 소문들을 쉽게 접할 수 있었고, 집에 돌아와선 가족들에게 그 소문들을 사실인 양 전해주곤 했다. “부끄럽게도 저도 오랫동안 정치인의 아들이라는 소문을 믿었어요.” 사회자가 말했다. 어린 시절 사회자는 아버지에게 들은 소문을 반 아이들에게 전달하곤 했다. 진구가 재선을 한 국회의원의 아들이란 이야기는 조회시간이 끝나기도 전에 반 아이들이 모두 알게 되었다. “괜찮아요. 심지어 주인집 할머니도 그 소문을 믿었다니까요. 아마 어머니가 술집을 하지 않았다면 그런 소문이 돌지 않았을지도 몰라요.” 그는 말했다. “저라도 그런 소문을 믿었을 거예요. 그런데, 어머니가 술집을 차린 이유는 사람들이 짐작한 것과 달라요. 음식 솜씨가 없어서 다른 식당을 차릴 수가 없었던 거예요. 어머니는 마른안주와 과일안주만 팔았거든요.”

<형구네 고물상>을 공동 연출했던 김PD가 그의 어머니 가게에 들른 것은 가게 앞에 세워놓은 입간판 때문이었다. 거기에는 ‘술 마시는 손님에게 무료로 손금 봐드립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술집은 지하에 있었는데 입구가 건물 뒤쪽에 있어서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았다. 그래서 손님을 끌기 위해 그런 간판을 세우게 되었다. 공장 화재로 남편을 잃고 그 보상금으로 차린 술집이었다. 과부가 된 여자가 술집을 차렸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했다. 가게 앞 입간판을 보고 김PD가 한 생각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 손금을 봐주면서 남자들을 유혹하는 꽃뱀 같은 여자가 주인일 거라고 짐작했던 것이다. 하지만 짐작과는 달리 평범한 아주머니가 서빙을 하고 있어서 놀랐다고 김PD는 어머니에게 종종 말하곤 했다. <형구네 고물상>은 김PD의 첫 연출작이었다. 같이 연출을 하기로 한 박PD의 야비한 성격도 걱정이 되었고, 드라마 작가의 깐깐한 성격도 신경 쓰였다.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할 지경이었다. 어쩌다 깜빡 조는 순간에도 드라마를 실패하는 악몽을 꾸었다. 길을 걷다 우연히 발견한 입간판 앞에 서서 김PD는 자신의 손바닥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그날 술집을 찾아온 김PD에게 그의 어머니에게 아무 걱정할 것 없다고 말해주었다. 걱정은 이십년 뒤에 해요. 그의 어머니의 말처럼 김PD는 그후로 다섯편의 드라마를 연달아 히트시켰다. 그리고 이십년 뒤 제작사를 차려 영화를 만들었고, 실패했다. 공금횡령과 주연배우 성추행 사건까지 겹쳐 다시는 재기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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