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온라인 연재

16회

*

 

   마침내 이사를 하는 날이 되었다. 금요일 밤늦게 부모님이 서울로 왔다. 일을 시작한 이후 처음 만나는 것이었다. 엄마 아빠는 살이 빠진 내 모습을 보고 놀라는 눈치였다. 내 몸무게는 고등학생 때부터 대학시절 내내 일정했는데, 고된 출퇴근 때문인지 아니면 낯선 생활로 인한 긴장 때문인지 5킬로그램이나 빠져 있었다. 퇴근 후 늦은 시각에 싸구려 음식을 잔뜩 먹고 바로 잠드는 날이 많았는데도 그랬다.

   “우리 딸, 짐 잘 싸놨네.”

   방을 둘러보며 엄마가 말했다. 내 소지품이 꽉꽉 들어찬 큼직한 종이 상자 네개가 책상 위에 쌓여 있었다. 침대와 책상, 책장은 이 집에 딸려 있던 가구였고, 내 짐이라고는 옷가지와 책들뿐이었다.

   나와 엄마는 스프링이 삐걱거리는 매트리스에 나란히 눕고, 아빠는 바로 옆 바닥에서 요를 깔고 잠을 잤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움직임에 맞춰 미세하게 삐걱거리는 스프링을 등으로 느끼면서 내일 눈을 뜨면 할 일을 머릿속으로 차례차례 떠올려보았다. 이불과 베개를 챙기고, 지금 입고 있는 잠옷과 드라이기, 세면도구까지 마지막으로 빠짐없이 담아 차에 실으면 된다. 식기는 공용주방에 비치된 것을 사용했기 때문에 주방에는 따로 챙길 물건이 없었다. 짐이 이렇게나 없다는 건, 다시 말해 당장 사야 할 것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기도 했다. 파주의 집에는 가스레인지와 냉장고, 세탁기가 갖춰져 있을 뿐, 당장 앉을 의자 하나도 없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눈을 뜨자마자 창가로 갔다. 잠결에 언뜻 빗소리를 들었던 게 기억났다. 창문을 열고 내다보니 골목은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맞은편 슈퍼의 처마에서 물방울이 똑똑 떨어지고 있었고, 아직 이슬비가 날리고 있었다. 채비를 하고 짐을 옮길 무렵엔 다행히 비가 완전히 그쳤지만, 온도가 급격히 내려가 사방이 냉랭했다. 이따금 부는 바람은 깜짝 놀랄 만큼 차가웠다.

   마지막으로 올라와 놓고 간 것이 없는지 빈방을 둘러보았다.

   “여기가 몇번째 집이냐?”

   뒤에서 엄마가 물었다.

   “두번째냐, 세번째냐?”

   “세번째.”

   “우리 딸은 이사도 잘해.”

   엄마가 빙그레 웃으며 내 손을 잡았다. 다음 세입자를 미처 구하지 못한 탓에 한달치 월세를 내는 조건으로 겨우 짐을 뺄 수 있었지만, 엄마에게 그 말은 하지 않았다. 그나마 대학가여서 그 정도 조건으로 방을 뺄 수 있는 거라고 하나 언니는 말했었다.

   “우리 딸이 추진력이 있어. 다행히 엄마 아빠를 닮지 않았어. 동에 번쩍, 서에 번쩍 그렇게 살아야지.”

   어느 사이에 올라온 아빠가 말했다. 그러고는 내가 대학 신입생 때 일년간 살았던 하숙집 주인 할머니 이야기를 했다. 몹시 신경질적인데다 중풍 증세인지 가만히 있을 때도 온몸을 덜덜 떨던 깡마른 할머니였다. 아이들을 대한다는 게 엄청난 스트레스일 텐데 건강에 해롭게 왜 그런 걸 할까, 아빠는 말하곤 했다. 그 집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장면이 있는데, 옆방에 살던 아이가 이사를 가던 아침, 방문을 열어놓고 마지막 채비를 하던 아이에게 할머니가 짐 보따리를 풀어보라고 말했다. 화장실을 다녀오며 무슨 일인가 힐끗 보니, 그 아이의 짐에서 밥그릇과 국그릇, 접시가 나온 모양이었다. 열린 방문 사이로 언뜻 보인,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아이의 모습―붉으락푸르락하던 얼굴과 꼭 다문 입술이 반성하는 기색이라기보다 짜증스러운 쪽에 가까워보였다─이 떠올랐다. 그때는 찬장에 그렇게나 그릇이 많은데 그중 몇개가 없어진 걸 눈치 채다니 대단하구나 하고 혀를 내둘렀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긴 시간 하숙집을 꾸려나가는 주인의 입장에서 그 정도는 눈에 훤히 보일 법도 했다.

   ─목적지까지는 38킬로미터, 1시간 40분가량 걸릴 예정입니다.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입력하자 안내 음성이 흘러나왔다.

   익숙한 대학가를 천천히 빠져나가, 청량리역이 보이는 횡단보도에서 신호에 걸려 멈춰 섰다. 나는 부모님이 집에서 말려온 곶감을 먹으며 창밖을 내다봤다. 노선별로 여기저기 나뉘어 있는 버스 정류장마다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지하 청량리역 출입구를 통해 들어가고 나오는 사람들,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로 청량리역은 아침부터 혼잡했다. 역 광장 한쪽은 높은 가림막으로 막혀 있었다.

   “아니, 여긴 아직도 공사 중이네.”

   아빠가 창밖을 보며 말했다. 어제저녁 장거리 운전을 하고 왔는데도 피곤한 기색이 전혀 없었다. 아빠는 낯선 장소건 행사건 구경하고 관찰하는 걸 좋아했다. 아마도 손바닥처럼 들여다보이는 소도시에서 태어나 평생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게. 사년 내내 공사하는 것만 보다가 이사 가네.”

   내가 말했다. 사년 전 처음 지상 청량리역에 내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왔을 때, 광장 한쪽에는 웃통을 벗은 뚱뚱한 남자가 맨발에 슬리퍼를 끌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는 웃음 지으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뭐라고 말을 했는데, 온전한 정신이 아님을 보여주는 헤벌어진 입과 얽은 자국이 있던 커다란 얼굴은 내게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 있었다.

   여기가 서울이 맞나. 그때 나는 깜짝 놀랐다. 목포역과 다를 게 없는 풍경이잖아……

   그때만 해도 청량리는 서울이지만 서울 같지 않은 곳이었다. 광장 한쪽은 대낮에도 발을 들여놓기 꺼려질 만큼 지저분한 상가 뒷골목으로 이어졌고, 밤이면 성매매업소들이 영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제는 곧 서울다운 모습으로 탈바꿈하겠지. 결국 완공되는 걸 못 보고 떠나는구나.

   신호가 바뀌고, 차가 다시 움직였다. 제기역을 거쳐 신설동역을 지났다. 커다란 전통시장과 약령시장이 있는 탓에 길에는 노인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신설동역은 동대문도서관 때문에 친숙해진 곳이었다. 학교 도서관에 없는 책을 빌리러 주말 오후 동대문도서관에 가곤 했었다. 근처에 경마장이 있는지 역에서 내려 도서관으로 가는 좁은 길 곳곳에는 간이 테이블을 놓고 경마 잡지를 파는 사람들이 있었고, 도서관 서가 사이에서는 모자를 눌러쓴 아저씨들이 앞에 책도 펴놓지 않고 잠을 잤다.

   동묘를 지나 창밖 거리가 낯설어지자 졸음이 몰려왔다. 나는 물티슈를 꺼내 곶감이 묻은 끈적끈적한 손을 닦고 좌석 시트에 머리를 기댔다.

Latest posts by changbi (see a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