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연재

43회

   “아예 출판계를 떠난다는 거야?”
   “응. 일년은 채우자고 생각했었거든. 우리 일 시작한 지 벌써 일년이야, 지향아. 믿어지니? 집에 내려가서 한동안 좀 쉬면서 앞으로 어떻게 살지 고민해보려고.”
   종업원이 커다란 쟁반에 밑반찬과 차가운 맥주 한병을 내왔다. 나는 병따개로 뚜껑을 따는 언니의 손놀림에 멍하니 눈길을 주고 있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하나 언니는 지금껏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악바리인 축에 속했다. 인턴교육생 프로그램에 참석하려고 대구에서 무작정 올라와 혼자 고시원에서 지낸 사람이 아닌가.
   언니가 맥주를 가득 채운 차가운 컵을 내밀었고, 우리는 가볍게 잔을 부딪쳤다. 언니의 표정은 환했다. 아쉬움이나 착잡함이 느껴지지 않는 차분한 얼굴이었다.
   “직접 해봤으니까 후련해. 해보지 않았으면 평생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이게 아닌데, 생각하며 살지 않았을까? 난 만족해.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않아. 인생은 길잖니.”
   하지만 나는 그 말에 맞장구를 쳐줄 수가 없었다. 목구멍이 뜨거운 것으로 꽉 막힌 기분이었다.
   “언니, 정말 잘 생각해본 거야?”
   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너무 큰 기대를 갖고 있었던 것 같아. 책도 결국 물건이고 상품인데. 난 그동안 마케팅 부서에서 일했잖아. 신간이 나오면 어떻게 홍보할지 아이디어 내고, 가방에 책을 몇권씩 넣고 서울로 가서 온라인 서점 사무실을 돌면서 MD들에게 설명하는 게 일이었거든. 전에 의류회사 마케팅 부서에서 일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랑 크게 다르지 않았어.”
   ‘물건’이라는 단어를 들으니 며칠 전 영인 선배와 회의실에서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언젠가부터 책이 판매를 위한 물건으로 보인다고 말하던 선배의 골똘하게 생각에 잠긴 옆얼굴도.
   “우리 회사는 이제 편집자도 편집자라고 부르지 않는대. 명함에서도 아예 편집자라는 명칭을 없앨 거래.”
   하나 언니의 말을 듣고 나는 깜짝 놀랐다.
   “그럼?”
   “북 코디네이터라고 바꾼대.”
   순간 대형병원의 코디네이터가 떠올랐다. 언젠가 미용실에서 패션잡지를 뒤적이다 새롭게 떠오르는 직업군을 소개한 짤막한 기사를 읽었는데, 병원 코디네이터가 하는 일이란 접수대에서 환자와 상담하는 것부터 치료 후 주의사항 설명, 사후 관리까지 포함된다고 했다. 그런데 코디네이터라니.
   “전부터 우리 회사 대표님은 편집 과정을 최소화하고 그보다 원고를 어떻게 매력적인 상품으로 포장할지 콘셉트를 잡는 데 주력하라고 했었거든. 내 생각에도 그게 맞는 것 같아. 맞는 게 아니라고 해도, 결국 그렇게 바뀌어가지 않겠어? 근데 그런 거라면, 나는 고향에 내려가서 다른 걸 팔아도 될 것 같아서.”
   언니의 말을 듣는데, 영인 선배와 대화를 나눈 이후 머릿속을 떠돌던 생각들이 조금씩 한군데로 모여드는 걸 느꼈다. 그러나 덩어리를 이루기 시작했다는 것만 느낄 수 있을 뿐, 그게 어떤 모양의 질문이 될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질문이 마침내 형태를 갖추게 되었을 때 하나 언니는 이곳에 없으리라는 사실이 발을 구르고 싶을 만큼 안타까웠다.
   저녁을 먹고 나와서 나는 건너편 정류장 벤치에 언니와 나란히 앉아 서울로 가는 버스를 기다려주었다.
   “언니가 없는 출판단지는 상상할 수가 없어.”
   나는 언니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중얼거렸다.
   “그러게. 널 두고 어떻게 가니.”
   언니가 특유의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말했다. 곧이어 어둠 속에서 환하게 불을 밝힌 2200번 버스가 나타났고 우리는 벤치에서 일어났다. 나는 언니가 버스에 올라 좌석들 사이를 지나서 뒤쪽으로 이동하는 모습, 창가에 앉아 내게 손을 흔든 다음 이어폰을 꺼내 양쪽 귀에 꽂는 모습을 착잡한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

 

   6월 마지막 날, 네권의 책이 인쇄소에서 무사히 나왔다. 눈에 띄는 오점 없이. 이를테면 하자 없는 상품으로.
   7월 1일 금요일, 나는 휴가를 내고 아침 일찍 서울로 향했다. 하나 언니가 서울을 떠나는 날이었다. 원룸에 가보니 커다란 캐리어와 잡동사니를 쑤셔넣은 숄더백이 현관에 놓여 있었다. 짐은 대부분 택배로 부쳤다고 했다. 언니가 집주인과 서류를 주고받고 가스와 수도계량기를 확인하기 위해 들락날락하는 사이 나는 바닥을 비로 쓸고 자잘한 쓰레기들을 모아 쓰레기봉투에 담았다.
   오전 11시가 되기 전에 모든 절차가 끝났다. 우리는 좁은 골목을 걸어 합정역으로 나왔다. 언니는 지하철을 타러 서울역으로 가야 했다. 나는 커다란 캐리어를 든 하나 언니와 합정역 대로변에서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언젠가 대구 올 일이 있으면 꼭 연락해야 해. 알았지?”
   “내가 대구에 갈 일이 있을까? 언니가 서울 올 때 만나는 게 더 빠를지도 몰라.”
   “왜, 계명대학교 교수 책을 내게 될지도 모르잖아.”
   그 말을 들으니 피식 웃음이 났다. 우리는 서로 마주 보며 미소 지었다.
   “언니, 만약 우리가 일을 시작할 때, 일년 뒤에 우리 둘 중 한 사람이 출판도시를 떠난다는 얘기를 들었다면, 언니가 아니라 나일 거라는 데 돈이라도 걸었을 것 같아.”
   “나도 그랬을 것 같아. 하지만 내가 떠나고, 네가 남게 되었어. 내 몫까지 열심히 해.”
   볕이 쨍한 날이었다. 파란 하늘에 선명한 뭉게구름들이 떠 있었다. 푹신푹신하게 부풀어오른, 솜사탕 같은 질감까지 선명하게 보이는 구름들이었다. 언니를 배웅하고 나서, 나는 2200번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으로 향했다. 출근 시간이 훨씬 지난 시각이었지만 몇사람이 줄을 서 있었다.
   왜 나는 이곳에 있는 걸까. 왜 언니가 아니고 나일까. 맨 뒤에 줄을 서서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면서, 그건 이제 막 구름처럼 모여들기 시작한 질문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 때문에라도 아직은 이곳에 머물러야 한다고. 그때 햇볕을 받아 앞유리가 눈부시게 빛나는 2200번 버스가 다가왔고, 나는 파주로 돌아가기 위해 버스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