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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연재

11회

“자, 그럼 다시 진구에게로 돌아갈까요?” 사회자가 방청객 맨 앞에 앉아 있는 작가를 힐끔 쳐다보았다. 작가는 ‘영상’이라고 적은 종이를 들고 있었다. 사회자가 스튜디오 한쪽 벽의 스크린을 가리켰다. 어디선가 본 듯한 사내가 화면에 나타났다. 누구더라. 그가 이마를 찡그렸다. ‘배우 이정수’라는 자막이 지나갔다. 그러고 보니 드라마에서 본 적이 있는 것 같았다. 주인공의 친구나 친척으로 등장하곤 했다. 배우 이정수가 손을 흔들었다. “진구야, 안녕.” 그는 자기도 모르게 화면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안녕.” 그는 들릴락 말락 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사회자의 귀에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소리였다. “나 기억나니? 우리 같은 반이었잖아.” 배우가 말했다. 그는 이정수의 말이 진짜 같은 학교를 다녔다는 뜻인지 아니면 진구랑 같은 아역 배우였다는 말인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늘 궁금했어요. 어디서 무얼 할까 하고요.” 배우가 갑자기 존댓말로 말투를 바꾸었다. 존댓말을 듣자 그제야 그는 같은 반이었다는 말이 드라마 속이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동구국민학교였어요. 일학년 일반이었을 거예요, 아마.” 배우가 흑백사진 두장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한장은 교문 앞에서 여러 아이들이 단체로 찍은 사진이었고, 다른 한장은 그와 둘이 어깨동무를 하고 찍은 사진이었다. 그보다 이정수의 키가 머리 하나는 더 컸다. 그는 두 사진 모두 찍은 기억이 없었다. 물론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카메라가 교문 앞에서 단체로 찍은 사진을 가까이서 찍었다. 배우가 집게손가락으로 누군가를 가리켰다. “이게 저고요, 진구는…… 여기 있네요.” 아이들 중에서 그의 키가 가장 작아 보였다. 배우의 말에 의하면 그 사진은 종영하기 며칠 전에 찍은 사진이라고 했다. 같이 출연한 아역 중에 사진관집 아들이 있었는데, 그 아버지가 종종 촬영장에 와서 사진을 찍어주었다고 했다. 어째서 그 사진이 자신에게는 전달되지 않았는지 그는 의문이 들었다. 아마 다른 아역들과 어울리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는 친하게 지낸 친구들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늘 자신이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곤 했다. “<형구네 고물상>은 제 데뷔작이었어요. 사람들이 거의 기억을 못해서 그렇죠. 진구의 뒷자리에 앉아 있었죠.” 그는 뒷자리에 앉은 아이가 연필로 등을 찌르곤 했다는 걸 기억해냈지만 그게 이정수인지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기억에 남는 일이 있나요?” 카메라 너머 누군가가 이정수에게 질문을 했다. 이정수는 팔짱을 끼고는 오랫동안 말을 머뭇거렸다. “저도 워낙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거의 없어요. 어젯밤 앨범에서 사진을 찾다 몇가지가 어렴풋이 기억나는 게 있긴 한데요.” 한참 뜸을 들인 배우가 입을 열었다. 촬영은 연기를 하는 시간보다 기다리는 시간이 더 길었다. 서너시간씩 기다리는 일은 아무것도 아니었고, 기다리기만 하다 돌아가는 날도 많았다. 겨울이 되고 날이 추워지자 항의하는 부모들이 늘었고 촬영장에 나타나지 않는 아이들이 조금씩 생겼다. 그때마다 촬영장 인근에 사는 아이들이 급하게 섭외되곤 했다. “지금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긴 하죠.” 이정수가 말했다. “암튼, 그때 우리들은 촬영을 기다리면서 주로 딱지 따먹기를 했어요. 동그란 딱지 있잖아요. 모두들 주머니가 볼록하도록 그걸 넣고 다녔죠. 그 딱지 따먹기를 진구가 제일 잘했어요. 진구 별명이 딱지왕이었어요.” 진구에게 딱지를 잃고 우는 아이들도 있었는데, 그중 어느 아이가 딱지를 돌려주지 않으면 촬영을 하지 않겠다고 감독에게 고자질을 했다. 감독이 돌려주라고 하자 진구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딱지는 진구가 딴 게 아니에요, 제가 딴 거예요,라고. “제 기억이 맞다면 그날 이후 딱지치기도, 구슬치기도, 모든 놀이가 다 금지되었어요.” 그는 자신이 딱지왕이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한편으론 딱지를 잃는 아이가 아니었다는 사실이 뿌듯하기도 했다. 이정수가 그의 이름을 다시 한번 불렀다. “진구야.” 그러더니 다시 이렇게 말했다. “아니 이제는 형민씨인가요? 직접 만나지 못하고 이렇게 인사를 해서 미안해요. ‘과수원길’이라는 노래를 부르는 장면을 여러번 찍었는데 기억나는지 모르겠네요.” 말을 마치고 이정수가 동구 밖 과수원길, 하며 노래를 불렀다. 방청객 몇이 따라 불렀다. 그는 따라 부르지 않았다.

화면이 꺼지고 사회자가 그에게 액자를 건네주었다. 방금 전 화면에서 보았던 사진들이었다. 원본은 아니었는데 원본처럼 오래된 느낌이 났다. 그는 그 사진을 가만 들여다보았다. “사진을 보니 옛 생각이 나요?” 사회자가 물었다. 그는 장난을 잘 치던 몇몇 아이들이 어렴풋이 떠오르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교문 앞에서 찍은 단체 사진에는 어른이 한명 서 있었다. 사회자가 담임선생님이 기억나느냐고 물었다. “담임선생님은 진짜 선생님 같았어요. 그런 기억이 나요.” 그가 말했다. 그는 실제로 촬영 초반에는 담임선생님이 배우가 아니라 진짜 선생님이라고 착각을 했다. 나중에 배우였다는 사실을 알고 크게 실망한 기억이 있었다. “사진을 보니, 선생님이 보고 싶네요.” 그는 사진 속의 선생님 얼굴을 쓰다듬어 보았다. “그래서 저희가 어렵게 모셨습니다. 담임 선생님을요.” 사회자가 다시 스크린을 가리켰다.

스크린에 영상이 떠오르지 않고 목소리부터 들렸다. “안녕하세요.” 그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방송에서 보면 이럴 때 스튜디오로 게스트가 등장하곤 하던데. 그는 선생님이 나오면 포옹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포옹을 하지 않으면 아무 감동이 없는 사람처럼 보일 것 같고 포옹을 하자니 어색할 것 같았다. 그런 고민을 하는 사이 스크린에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의 영상이 나왔다. “안녕하세요.” 노인이 소파에 앉아서 인사를 했다. 목소리가 떨렸다. “내가 담임이었죠.” 노인이 말했다. “반에서 한 아이가 필통을 잃어버리는 사건이 있었는데, 그걸 찍을 때 내가 진구의 종아리를 때렸어요. 진구가 반장이라 대표로 맞았던 걸로 기억이 나는데. 암튼, 흉내만 낸다는 걸 나도 모르게 진짜로. 그때 미안했습니다.” 노인이 그에게 존댓말로 말했다. 그는 노인의 말을 듣자 허리를 펴고 두 손을 무릎에 공손히 올려놓았다. 그러고는 혼잣말로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하고 말했다. 노인은 말을 하면서 계속해서 소파의 나무 팔걸이를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팔걸이는 오랜 세월 동안 노인의 손때가 묻어 반질반질했다. “직접 나가지 못해 미안해요. 다리가 고장 나서요.” 노인은 손바닥으로 허벅지를 두번 쳤다. 담임선생님은 <형구네 고물상>이 끝난 후 일년에 서너편의 드라마에 출연할 정도로 바쁘게 일했다. 주연을 못했어도 조연으로 꾸준한 연기를 펼쳤다. 삼십대 중반에 <하늘 빛>이라는 드라마에 출연한 뒤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적도 있었다. 그렇게 십년 정도 배우로 활동하다 갑자기 은퇴를 하고 산 속에 집을 짓고 홀로 십년을 살았다. 가족도 버리고. 그리고 다시 트럭을 몰고 십년을 떠돌아 다녔다. “그러다 교통사고가 났어요. 그때부터 이렇게 소파에 앉아서 밖을 바라보면서 시간을 보내게 되었죠.” 노인은 지난 삼십팔년의 세월을 그렇게 간단하게 설명했다. 그는 노인을 보면서 지금 이 자리에 나와야 할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 담임선생님이어야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째서 그는 은퇴를 했을까? 어째서 그는 산 속으로 들어갔을까? 어째서 그는 전국을 떠돌았을까? 궁금한 게 많은 삶. 그런 사람이 이 자리에 앉아 있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