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명에서 142명쯤

김중혁

김중혁 / 소설가

소설을 한편 끝내고 나면 꼭 혼자서 술을 마시며 영화를 보게 된다. 이제는 일종의 공식 같은 게 돼버렸다. 출판사에 원고를 보내고 방안에 혼자 앉아 하이네켄이나 호가든 같은 맥주를 홀짝거리면서 주성치나 빌 머레이가 등장하는 코미디영화를 보고 있으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무엇보다 몇시간 전까지 끙끙대며 썼던 소설의 내용을 깡그리 잊어버릴 수 있어서 좋다. 첨예한 정치적 문제를 다루거나 전지구적 환경문제 같은 걸 소설로 쓰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소설을 쓴다는 것은 꽤 머리를 써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원고를 마칠 즈음이면 한꺼번에 피로가 몰려오게 마련이다. 그럴 때면 코미디영화만큼 좋은 게 없다. 얼마 전에는 소설 한편을 끝내고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게 됐는데 코미디영화보다 더 웃긴 장면을 만나는 행운을 잡았다.

다큐멘터리의 제목은 〈No Direction Home〉이었고, 뮤지션 밥 딜런의 삶과 음악을 다룬 마틴 스콜씨지 감독의 작품이었다. 제목으로 보나 감독으로 보나 밥 딜런의 음악 스타일로 보나 우스운 장면이 전혀 등장하지 않을 영화처럼 보였지만 한창 전성기를 구가하던 밥 딜런의 인터뷰 장면은 보는 내내 배꼽을 쥐어틀게 만들었다. 기자회견장에 모인 기자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질문을 하고, 밥 딜런은 시종일관 시큰둥하게 장난을 친다. 이런 식이다.

기자 : 당신의 노래에 나오는 오토바이는 뭘 의미하나요?
밥 딜런 : 오토바이를 좋아해요. 모든 사람들이 오토바이를 좋아하잖아요.
기자 : 당신이 분류되는 걸 싫어하는 건 알지만 30세가 넘은 사람들을 위한 당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말씀해주시겠습니까?
밥 딜런 : 우선 전 30세 이하로 분류되고요. 제 역할은 가능한 여기서 오래 버티는 거죠.

밥 딜런은 농담을 좀 아는 사람이었다. 그가 답변을 할 때마다 여기저기서 킥킥대는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그중에서도 가장 압권인 대답이 있었다. 나는 이 장면을 보다가 뒤로 넘어갔다.

기자 : 당신이 걷고 있는 그런 음악 분야의 사람들은 얼마나 되며 저항가수, 즉 자신의 음악을 통해 사회를 비판하는 음악가는 몇명이나 됩니까?
밥 딜런 : 몇명이나 되냐고요? ……136명쯤 있어요.
기자 : 정확히 136명이라는 겁니까?
밥 딜런 : 한 136명에서 142명쯤?

이런 걸 두고 ‘우문농답(愚問弄答)’이라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진지하게 대답하는 밥 딜런의 표정이 볼 만했다. 하기야 그 기자의 고충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좀 멍청한 질문이긴 했지만 그 기자는 정말 그게 궁금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정확한 숫자가 나오면 기사 쓰기가 훨씬 쉬워질 테니까 말이다. 어쩌면 다음날 신문에 〈특종, 현재 미국의 저항가수는 총 136명에서 142명 사이, 밥 딜런의 충격 고백〉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을지도 모르겠다. 역시 코미디가 따로 없다.

숫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나는 지독하게 숫자에 약한 편이다. 무언가를 어림짐작했을 때 그 수를 맞혀본 경우가 거의 없다. 대학시절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 “오늘 손님 많았나? 몇명이나 왔어?”라고 사장이 물어보면 “글쎄요, 한 오십명?”이라고 대답을 했지만 실제 전표상의 손님은 2백명이 넘는 경우가 허다했고, 상암 축구경기장에 처음 갔을 때는 ‘축구장이 뭐가 이렇게 작아? 이래 가지곤 1만명도 못 들어오지 않겠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 수용 관중수는 6만명이 넘었다. 계속 이런 수모를 당하다보니 어느 순간부터 어림짐작을 포기하게 됐다. 그리고 어떤 숫자를 듣게 돼도 귓등으로 반사시켜버리는 경우가 많아졌다. 올해 명절의 총 귀성객 수는 1천7백만명이랍니다. 많네요. 올여름 해운대에는 50만명의 피서객이 모였답니다. 역시, 많네요. 중국의 명절 귀성객은 20억명이랍니다. 좀, 많네요.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이 개봉 21일 만에 1천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는 뉴스를 들었다. 자꾸만 관객 동원 1천만이 넘는 영화들이 등장하다보니 1천만이라는 숫자에도 둔감해진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어마어마한 숫자다. 대한민국의 총인구가 4천8백만 정도니까 그중에서 실제 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사람을 추려내고, 영화를 두번 본 사람을 빼고, 영화를 보다가 뛰쳐나온 사람을 빼면, 실제 〈괴물〉을 본 사람은…… 내가 계산해낼 리가 없다. 어쨌거나 어마어마한 숫자일 것이다. 어째서 그 많은 사람들이 똑같은 영화를 봐야 하는지, 꼭 봐야 하는 건지, 왜 보고 싶어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조금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관을 독점했다든지, 다른 영화들의 가능성을 막고 있다든지, 그런 말을 할 생각도 없고 입장도 아니지만 가끔씩 그 1천만이라는 숫자가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그건 이미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숫자가 아닌 것이다. 그건 이미 숫자가 아닌 것이다. 그런 상상도 해본다. 내 소설을 1천만명이 읽는다면? 아마도 너무 부끄럽고 송구스러울 것 같다. 그런 숫자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혹은 장르는, 따로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이태원의 재즈클럽 ‘올댓재즈’에 놀러갔다 왔다. 정말 오랜만에 가보는 재즈클럽이었다. 금요일 저녁이어서 퓨전재즈 밴드 ‘웨이브’의 공연이 있었는데 2시간 30분 동안 지루할 틈이 없었다. 좁은 클럽에 사람들이 빼곡하게 들어찼다. 서 있는 사람도 많았다. 관객의 숫자는 아마도 136명에서 142명쯤 됐던 것 같고, 모두들 신나게 재즈를 즐겼다. 정말 연주를 잘하는 밴드였다. 그중에서도 기타리스트 한현창의 연주와 표정이 인상깊었다. 기타리스트의 표정이 아직도 눈앞에 생생하다. 그는 관객을 보지 않고, 기타도 보지 않고, 자신의 손가락도 보지 않고, 먼 곳을 바라보면서 기타를 연주했다. 자신의 기타 소리를 느끼는 그의 표정이 재미있어서 나는 공연 내내 기타리스트의 얼굴을 보았다. 공연 도중 기타줄 하나가 끊어지는 사고가 있었지만 기타리스트와 밴드 모두 재미있어했다. 관객들도 재미있어했다.

공연이 모두 끝났지만 관객들은 앙코르를 외쳤다. 앙코르를 외치는 136명에서 142명쯤 되는 그 사람들과 함께 나도 앙코르를 외쳤다. 뭔가 함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그건 관객의 수가 136명에서 142명쯤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오랜만에 느낀 짜릿함이었다. 다음부터는 소설을 끝내고 나면 공연장을 찾아가볼 생각이다. 집에서 먹는 것보다 맥주값은 좀더 들겠지만 세상에는 코미디영화보다 더 재미있는 것들도 많으니까 말이다.

2006.08.29 ⓒ 김중혁 2006